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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뒤흔든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12월 11일 드디어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대선 후보 유슈첸코를 괴롭혔던 의문의 병이 다이옥신 중독 때문이라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를 치료해온 오스트리아 의료진의 정밀 검사에 의하면 그의 몸에서 정상치의 천배가 넘는 다이옥신이 발견됐다고 한다.

다이옥신에 중독되기 전 유슈첸코
다이옥신에 중독되기 전 유슈첸코 ⓒ VOA
다이옥신에 중독된 후 유슈첸코
다이옥신에 중독된 후 유슈첸코 ⓒ VOA




☞ 여기를 가면 중간 오른쪽 편에 사진 세 쌍이 실려 있다.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이 사진들이 유슈첸코 얼굴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간의 사정을 짤막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유슈첸코는 지난 9월 초순 극심한 복통을 며칠째 견디다 못 해 오스트리아의 권위있는 병원(Rudolfinerhaus clinic)에 입원한다. 검진 결과 그의 내장은 엉망진창으로 상했고 설상가상으로 유슈첸코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척추 통증을 느낀다.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을 권유했지만 10월 31일로 잡힌 대선을 앞두고 유세를 지연할 수 없던 유슈첸코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

유슈첸코 진영은 즉각 이 사건이 9월 5일 유슈첸코가 우크라이나 정보국장과 식사를 함께 한 후 발생했고 그 때 그가 먹은 음식에 독극물이 투여된 거라 주장했다.

유슈첸코 반대 진영은 그동안 유슈첸코가 상한 생선회를 먹은 게 잘못 됐다거나, 술을 과도하게 마셔서 그렇게 됐다거나, 유권자의 동정을 사려고 측근이 일부러 꾸민 자해설이라고 말하면서 유슈첸코의 병을 폄하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우크라이나 검찰도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다이옥신은?

다이옥신은 염소를 포함하고 있는 벤젠계 유기 화합물로 맹독성 물질이다. 다이옥신은 대기, 수중, 토양에 널리 존재하지만 주로 음식을 통해 인체에 유입된다. 다이옥신은 생식 기능과 면역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며, 간장과 신장 파손, 말초-중추 신경 발달 장애를 유발한다. 또 각종 암과 염화성 여드름, 피부병의 원인이 된다.

한 예로 베트남 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에 다이옥신이 함유되어 있었다. 이 고엽제 중 대표적인 것이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인데 유셴코의 상징색이 오렌지라는 점을 상기할 때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의 얼굴은 9월 초에는 큰 이상이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손상됐다. 의사들은 그의 몸이 내부에 있는 독극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피부가 손상되는 거라는 소견을 밝혔다.

올해 우크라이나 대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유슈첸코를 조금이라도 안 사람이라면 9월 이후 유슈첸코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유슈첸코가 총리로 재직하던 때 우크라이나에서 그의 인기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올해 그의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싱싱한 매력을 발산하고 호감 가는 얼굴은 잿빛으로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같이 변했다. 총기로 반짝이던 눈은 빛을 잃었다. 그는 걸어 다니는 시체 같았다.

지난 석 달간 의혹이 꼬리를 물고 진작 독살 기도라는 설도 많이 나돌았지만, 의학적 검증을 거친 공식 발표는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소문과 심증만 무성했을 뿐이었다.

12월 11일 그간 유슈첸코를 줄곧 치료해온 오스트리아 의료진의 공식 발표에서도 누가 '유슈첸코를 독살하려 했는지'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의사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 사건은 하나씩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유슈첸코의 얼굴에서 일그러진 우크라이나의 얼굴을 본다. 그의 뒤틀린 얼굴은 바로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이다. 누가 했느냐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의 얼굴은 우크라이나가 무법 지대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회란 것을 보여준다. 또 그 곳에서 정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의사들의 견해로는 유슈첸코의 건강은 곧 회복될 것이라 한다. 그의 얼굴도 예전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그의 얼굴이 뒤틀린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반영하듯이 회복한 얼굴이 나아진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반영하게 되기를 바란다.

유슈첸코는?

1954년생(올해 나이 50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본산인 우크라이나 서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의 고향은 러시아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동부 시골이다. 교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지방 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부터 서방의 경제 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 자본주의를 선호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후 새로 생긴 중앙은행에서 1997년부터 총재직을 맡아 주요 경제 정책을 책임졌다. 1998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경제 대란이 났을 때 그나마 수습을 잘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공로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쿠치마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다. 쿠치마는 처음부터 유슈첸코를 달가와하지 않았으나 경제란을 겪던 우크라이나가 서구에서 더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서구의 호응을 받는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재임시 경제 상황이 호전됐으나 경제 정책이나 정치 노선에서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공산당의 미움을 사 결국 2001년 쿠치마가 배후 조종한 의회가 그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2002년 '우리 우크라이나'연합을 이끌면서 우크라이나 내 가장 유명한 야권 인사로 부상했다. 그리고 올해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출마해 쿠치마 대통령의 후계자 야누코비치와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우크라이나는 11월 21일 있었던 2차 선거가 부정 선거로 대법원에서 판결나면서 12월 26일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 기자가 쓴 12월 12일자 <광장을 뒤흔든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참고.

가족 관계

1998년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아내와 재혼, 둘 사이에 세 자녀가 있다. 막내 타라스는 겨우 8개월된 젖먹이다. 9월 독살 기도가 있은 후 가족 전부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모처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한편 유슈첸코의 아내 카테리나는 미국 국무부와 레이건 시절 백악관에서 일했을 정도로 성공한 여성으로 부모의 조국을 못 잊어 우크라이나 독립 후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신청했으나 정부에서 거부해 아직 공식적으로는 미국인이다. / 윤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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