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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다시 벤처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IT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으며, 연말까지 벤처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강력한 벤처 활성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차례에 걸쳐 벤처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과 문제점, 대안 등을 집중 점검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벤처업계를 이끌고 있는 안철수 사장을 만나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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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과 같은 벤처가 한국엔 없는 이유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 권우성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안철수 사장에게 벤처에 희망을 가져도 되느냐고 물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경제가 대기업 위주로 흘러가고 나머지 중소 벤처기업들은 하청역할로 짜여진 구조로 계속 가는 것이 우리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이다. 때문에 '벤처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물음 이전에 이미 벤처는 이러한 산업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컴퓨터 보안 업계의 리더인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지금 벤처가 정부의 정책 실패, 벤처 내부의 횡령과 비리 사건 등으로 인해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경제의 유일한 대안'임에 틀림없다고 치켜세웠다. 안 사장의 생각은 견실한 벤처가 많이 나와서 산업 구조에 변화를 일으켜야 대기업 몇 개 쓰러지면 나라경제가 거덜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몇해전 벤처붐이 최고조로 달했을 무렵 '국내 벤처들 중 95%는 망할 것'이라며 벤처 거품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쓴소리나 칭찬 모두 국내 벤처업계에 대한 애정 표현이란 점은 같았다.

"정부 정책, 공정한 시장 만드는데 집중해야"

평소 칼럼을 통해 IT와 벤처업계의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안 사장답게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안 사장은 과거 정부의 '퍼주기식' 벤처 지원정책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정부는 벤처 기업을 꽃 피울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 사장은 "산중턱에 좋은 자리가 있으면 정부가 터를 닦고 도로를 만들고 경찰을 배치해 치안을 확보해 주기만 하면 정부가 가게 만들라고 자금을 대주지 않아도 알아서 창업을 하게 돼 있다"며 "벤처 지원정책도 정부가 자금을 대주는 등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는 벤처가 자생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공공부문과 대기업과의 거래 시장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상황"이라며 "벤처기업이 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장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지원정책이 나온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또 정부가 발표한 비전을 뒷받침할 정책의 부재도 꼬집었다. 그는 "과거 대통령은 나서서 지식정보강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관행이 깨지지 않아 일선에서는 외산 소프트웨어와의 역차별 등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죽이고 있었다"며 "지금도 이런 상황에는 변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 사장은 끝으로 벤처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벤처의 인수·합병 활성화, 코스닥 시장 활성화, 벤처 자체의 투명성 강화 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은 안철수 사장과의 일문일답.

"과거 정부 정책 '시장'보다 '기업'에 더 관심둬 아쉬웠다"

ⓒ 권우성
- 과거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에 부작용이 더 많았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정부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물론 순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주로 기업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기업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주체이고 직접 영향력을 미칠수 있어서 (정책을 펴면) 효과도 금방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부는 기업자체에 대한 지원보다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시장에 관심을 둬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정한 시장, 투명한 시장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 현재 시장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인데.
"시장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공부문, 기업부문, 소비자부문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소비자 시장은 그런대로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 부분은 투명하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벤처기업들이 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장 구조, 인프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지원정책이 나온다 해도 다시 망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벤처기업의 숫자는 많았는데 제품을 내다팔 제대로 된 시장이 없어서 다들 망한 것 아닌가."

- 정부가 또 다시 벤처활성화 정책을 연말까지 내놓겠다면서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나.
"기업에 집중된 관심을 시장으로 넓혀야한다. 산중턱에 좋은 자리가 있으면 여기에 가게를 세울 수 있도록 터를 닦고 도로를 만들고 경찰관을 배치해 치안을 책임지는 일이 정부가 할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가게 만들라고 자금만 지원한다면 창업을 해도 도로가 없어서 사람들이 찾지도 않을 것이고 치안이 부재하면 불량배들만 들끓어 돈만 뜯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게를 열어도 망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벤처가 자생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만들어지고 게임의 룰만 공정해 진다면 정부에서 창업자금 지원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회사를 만들 것이다."

- 벤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의 하나로 인수·합병의 활성화가 거론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인수·합병이 필요한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벤처기업 중 기업공개(IPO)되는 업체보다 인수·합병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벤처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크면 회사와 기술을 키워줄 대기업과 인수합병을 하거나 벤처들끼리 시너지를 위해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벤처의 인수·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대기업과 중소벤처간 거래관행상 인수합병이 일어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또 벤처들간에도 기업이 잘 될 때는 혼자서 하려고 하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인수·합병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시장에서 평가가 부정적이고 경쟁력이 없다는 것인데 경쟁력이 없는 기업끼리 인수·합병해봐야 시너지가 날 수 없다."

- 인수합병의 부재로 좁은 시장에서 많은 수의 벤처가 경쟁하는 상태라 벤처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합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인수합병을 하게되면 주식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때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 그런데 주식교환은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벤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이 된다. 또 합병 때 주가가 높았다가 낮아지면 또 다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때문에 주식을 교환할 때가 아니라 교환한 주식을 팔 때 세금을 내게 할 필요가 있다."

"금융사기 '솜방망이' 처벌이 벤처 투명성 강화에 걸림돌"

- 인수·합병 활성화의 걸림돌로 이와 관련한 잦은 사기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꼽히고 있다.
"투명성을 강화할 제도도 물론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금융사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평생 먹고 살 돈 마련하려면 금융사기 한번 하고 몇 년 살고 나오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금융사기는 살인 만큼 죄질이 나쁜 것인데 법 전체의 구조상 처벌 강화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도 경미한 처벌 때문에 잘 안지켜지는 경향도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참 답답하다."

- 침체에 빠진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연기금 활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안정적인 운용이 중요한 연기금이 위험이 높은 벤처에 투자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은데.
"투자의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접근하면 우려를 다소 줄일 수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연기금에 100이라는 투자처가 있는데 99개 투자를 실패해도 1개가 1만배 이익이 나면 전체적으로 이익이 나게 된다. 따라서 요즘 수익률이 낮아서 연기금의 운용이 힘든데 국내 채권위주의 투자보다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투자청처럼 운영수익을 높이기 위해 투자처를 좀더 다양화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 대상중 하나로 벤처에 접근하면 우려를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권우성
- 그러나 국내에는 벤처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캐피탈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활성화도 안돼 있어 연기금이 투자할만한 벤처캐피탈이 마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나라 벤처의 역사가 짧다보니까 기금 운용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지고 관련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은 것은 문제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할 수만은 없고 연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위한 다양한 방법들은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기금은 10년 이상 장기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령 1~2년은 손해를 본다하더라도 장기로 보면 이익이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

- 코스닥의 침체 원인 중 하나가 잦은 벤처 비리문제다. 벤처 자체의 투명성 강화도 요구되고 있다.
"벤처의 도덕성을 기업가의 양심에 맡길 수는 없다. 제도가 허술하면 반드시 사기나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코스닥 퇴출을 강화해야한다. 현재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대한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자꾸 그 수만 늘리는 것 보다 심사를 강화해 여차하면 퇴출시켜야 한다. 또 금융사기나 비리에 대해서는 무겁게 처벌하고 다시는 코스닥에 발 못붙이게 해야한다.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대표이사가 회사돈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것인데 제대로된 회사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이게 회사의 지배구조 문제라고 보면 이에 대한 평가를 통해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벤처에 대해서 신용등급상향이라든지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과거 대통령은 나서서 지식강국 역설했지만 일선에선 국내 SW업체 죽여"

- 벤처가 가장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소프웨어 산업이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에서 보기에는 어떠한가.
"벤처협회에 등록된 회원사중 소프트웨어 업체가 50%를 넘는다. 그런데 산업규모나 여러 가지 면에서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전 국민적인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부재,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들 수 있다. 시장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정부의 구매관행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납품관행이 왜곡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왜곡을 막기위한 제도에 대한 무관심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과거 대통령은 나서서 지식정보강국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일선에서는 외산 소프트웨어와의 역차별 등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죽이고 있었다."

- 그래도 요즘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요즘에도 변한 것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비관적이다. 사실 국내 업체들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돈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사업을 하는 이유는 소프트웨어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평생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뿐이니까 또 사명감으로 버티는 것이다."

- 창업 초기 단계의 벤처에게 투자를 해줄 '엔젤투자자'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핵심 벤처기업들 중 상당수가 엔젤투자자의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까지는 미국과 같이 제대로 된 엔젤투자자가 드문 것 같다. 미국의 경우 벤처 역사가 수십년이 되니까 1세대 벤처인들이 나와서 엔젤투자자가 됐다. 1세대들은 전문성도 있고 사업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어서 이들이 엔젤투자자가 되는 모델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1세대들이 기술력 있는 벤처에 자금을 투자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조언까지 해준다면 벤처와 투자자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도 짧고 1세대 벤처인들 중 나설만한 마땅한 분이 없어서 문제다."

-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장실패 상황에서는 우선 정부가 '엔젤' 역할을 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핀란드처럼 정부와 민간이 결합한 모델을 만들면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 생각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투명성 부족으로 국가적인 비용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선진국처럼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창업자금 마저 다른 사람 돈이나 국가의 돈을 가지고 하게되면 창업자가 전혀 리스크(위험)를 부담하지 않게 되는데 도덕적 해이의 우려가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창업자금은 자기 돈으로 하고 창업 이후 가능성을 확인한 다음 1차 펀딩(funding)을 받는다."

"벤처는 산업구조에 역동설 불어넣을 유일한 대안“

- 국가 정책의 부작용, 내부 비리 문제 등으로 벤처가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벤처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가.
"벤처에 대해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것보다 지금 우리 경제 구조가 지금 이대로 가는 것이 우리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지금같이 경제가 대기업들 위주로 흘러가고 나머지 벤처를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 역할로 짜여진 구조에서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청년실업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이다.

때문에 '벤처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물음 이전에 이미 벤처는 이러한 산업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견실한 벤처가 많이 나와서 산업 구조에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한다. 대기업 몇 개 쓰러진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거덜나는 구조로 가서는 안된다. 국가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산업 포트폴리오 다양화 차원에서도 벤처의 활성화는 절박한 문제다."

- 마지막으로 차세대 벤처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다른 분들과 달리 나는 대학생 창업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은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 아무리 급해도 관심있는 분야의 기업에서 최소한 3년정도는 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보면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돼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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