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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첫 눈 내리던 날의 풍경
지난 주 첫 눈 내리던 날의 풍경 ⓒ 김형태
어느덧 눈발이 스산하게 흩날리는 초겨울입니다. 교정에도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올해 달력도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며칠 전 악동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무슨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그냥 지나치려다 한 마디 건넸습니다.

"이 녀석들, 공부 안 하고 여기 모여서 무슨 모의야?"
"샘, 저희들 올 해가 가기 전에 피를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뭐? 피를 보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사고라도 치겠다는 거야?"
"사고라니요? 샘은 우리를 만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로 아시나봐. 아니, 뭐 사고라면 굉장한 사고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집단으로 하기로 했으니까. 얘들아 안 그러니?"
"응, 그러고 보니 그러네. 맞다 맞아."
"인석들이 산 너머 산이라고, 뭐 집단으로 어쩌구 저쩌구, 너희들 한번 혼나볼래."
"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우리가 어느 샘 제자인데 사고를 치겠습니까? 올해가 가기 전에 뜻있는 일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그 '굉장한 사고'라는 것이 바로 헌혈이었습니다. 혼내기는커녕 아낌없이 칭찬해줘야 할 일이지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 딱히 할 봉사활동도 적어 고민하던 차에 '뜨거운 젊은 피'로 좋은 일 한번씩 하고 싶었다는 이 아이들의 기특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가장 혈기 왕성할 나이에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고생하는 아이들이 늘 안타깝습니다. 공부 스트레스만 아니면 이 아이들이, 아니 대한민국이 다 행복할 텐데… .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헌혈차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헌혈차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 김형태

단단히 마음의 끈을 조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샘~ 웃고 있지만 사실은 몹시 떨리고 긴장돼요)
단단히 마음의 끈을 조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샘~ 웃고 있지만 사실은 몹시 떨리고 긴장돼요) ⓒ 김형태

헌혈을 하며 한 그루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됩니다.
헌혈을 하며 한 그루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됩니다. ⓒ 김형태

헌혈 후 아픈 팔은 접었지만, 마음은 흐뭇합니다. 좋은 일 하고 타올과 모포 등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런 경우 금상첨화라는 말을 쓰나요?
헌혈 후 아픈 팔은 접었지만, 마음은 흐뭇합니다. 좋은 일 하고 타올과 모포 등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런 경우 금상첨화라는 말을 쓰나요? ⓒ 김형태

단풍꽃을 닮은 선생님, 솔선수범과 사제동행을 몸으로 실천한 선생님! 30회 이상 헌혈을 한 공로로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은장' 포장을 수상한 황영하 선생님
단풍꽃을 닮은 선생님, 솔선수범과 사제동행을 몸으로 실천한 선생님! 30회 이상 헌혈을 한 공로로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은장' 포장을 수상한 황영하 선생님 ⓒ 김형태

선혈이 낭자한 단풍나무, 금방이라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듯 합니다. 헌혈하는 마음은 단풍나무처럼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선혈이 낭자한 단풍나무, 금방이라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듯 합니다. 헌혈하는 마음은 단풍나무처럼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 김형태
"샘, 단풍나무도 헌혈을 하고 싶은가 봐요"

그러고 보니, 다른 나무들은 모두 잎새를 떨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는데, 첫눈까지 내린 초겨울인데도 단풍나무만이 헌혈하는 학생들에게 큰 칭찬을 하고 싶어선지 지금껏 붉은 입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단풍나무와 오늘 헌혈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마음을 담아, 시 한 수 선사합니다.

단 풍 꽃

나무가 빚어내는
저녁놀

겨울 아니, 봄을 위해 여는
저고리 옷고름

떠나가는 여름을 향한
두견이의 피울음빛 꽃상여

서산마루에서 허리 펴고 웃어보는
할머니의 허허로움

골고다 십자가상에서
피어 내리는 보혈

단풍보다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단풍보다 아름다운 꽃이 또 있을까? 상록수와 어울려 한껏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단풍나무. 사랑의 실천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단풍보다 아름다운 꽃이 또 있을까? 상록수와 어울려 한껏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단풍나무. 사랑의 실천은 이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 김형태
단풍나무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을까요? 흰눈이 나부끼는 추위 속에서도 해처럼 밝게 웃고 있는 국화꽃! 헌혈하는 마음은 국화꽃처럼 향기로운 행동입니다.
단풍나무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을까요? 흰눈이 나부끼는 추위 속에서도 해처럼 밝게 웃고 있는 국화꽃! 헌혈하는 마음은 국화꽃처럼 향기로운 행동입니다. ⓒ 김형태
눈비를 맞아 떨어져 내렸어도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꽃이 된 단풍잎! 단풍나무야말로 스승입니다. 배울 게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눈비를 맞아 떨어져 내렸어도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꽃이 된 단풍잎! 단풍나무야말로 스승입니다. 배울 게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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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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