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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의 봉산에서 바라본 금오열도의 작은 섬, 안도와 연.
금오도의 봉산에서 바라본 금오열도의 작은 섬, 안도와 연. ⓒ 조갑환
금오도를 찾기 전에 금오도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금오열도란 돌산 아래로 쭉 뻗어있는 여러 섬들을 일컬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여수시 남면에 속한다. 그 섬들 중에는 금오도, 화태도, 대두라도, 나발도, 안도, 연도 등이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금오도는 면적은 29.99평방미터, 해안선의 길이는 64.5킬로미터, 인구는 2188명이며 섬의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3일에 여수에 내려와 항만터미널 근처인 서교동 스카이모텔에서 잤다. 새벽에 일어나서 6시 40분 금오도 행 페리호를 탔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려면 항만터미널 옆에 있는 철부선 선착장에서 철부선을 타야 하는 데 우리는 그 정보를 몰랐다. 항만에서 차를 못 가지고 들어간다고 해서 항만 주차장에 놔두고 들어가야만 했다.

여객선, 고속 페리호는 겨울 새벽의 싸늘한 바다 공기를 가르면서 달렸다. 배 안에는 금오도, 연도, 안도로 향하는 섬사람들 몇 명만이 타고 있었다.

먼동이 서서히 터오며 배의 창밖으로 불빛이 반짝거리는 섬 마을들이 보였다. 배의 갑판으로 나가서 찬 바닷바람이나 쏘이며 섬 풍경이나 구경하려고 통로를 따라 뒤로 이동했더니 배의 후미에 제2선실이 보였다. 또 하나의 선실이 있었다. 그 곳에 사람 세 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젊은 남녀가 누비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둥켜안고 있었다. 여수 관내 섬사람들은 아직은 개방적인 서구식의 문화에는 물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좋지 않은 서구문화가 다도해 권까지 침투한 것 같아 아침부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배가 서서히 속력을 늦추면서 항구에 정박을 하였고 이 포구가 있는 행정구역이 우학리 포구라 했다. 아열대식물인 상수리나무 일종의 잡밥나무가 산이나 가로수에 많았다. 이 잡밥나무는 여수시내의 가로수로 많이 쓰인다고 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우학리에 있는 상록수 식당에 갔는데 회, 멍게, 전복, 등등 이름도 모를 바다음식들이다. 이곳 청정해역에서만 나온다는 군벗, 부채손, 논맹이 등도 있었다. 점심때 이렇게 까지…. 이 섬에는 이처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극진한 접대를 하는 문화가 있어서 어느 기관이든지 이 섬에 출장을 오려 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이 고장 출신인 안내자께서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그래서 차로 고개를 넘어 함구미까지 가면서 섬의 유래를 설명해 주었다.

금오도란 명칭은 '황금 거북(자라)의 섬'이라는 뜻이란다. 또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거무섬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조선 조 때는 숲이 울창하고 사슴들이 많이 살아서 조선 고종 명성황후는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하여 출입과 벌채를 금하는 봉산으로 삼았다고 했다. 1885년에 봉산이 해제되어 사람이 살게 되었고 입도 100주년 행사를 최근에 했다고 했다.

우학리에서 고개를 넘어 함구미까지 가는 12킬로미터 정도의 드라이브코스는 금오도 여행의 꽃이었다. 고개를 넘으니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가까이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여러 섬들이 보였다. 조금은 멀리 보이는 섬을 가리키면서 저 섬이 화태냐고 물었더니 저 섬은 돌산이며 섬의 끄트머리에 있는 희미한 곳이 향일암이라고 했다. 저 번에 돌산의 향일암에 갔을 때 저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섬들이 무슨 섬일 까 생각했는데 그 섬이 금오도였다. 이제 반대로 금오도에서 향일암을 보고 있는 것이다.

푸른 다도해를 따라 펼쳐져 있는 작은 섬들, 금오도를 환상의 섬이라고들 하는 데 이런 다도해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 금오도가 그런 환상이라는 어휘에 걸맞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지 주민들은 이곳이 관광보존지역이라 집을 짓는 데도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무척 불편하다고 했다.

요즈음 멸치잡이 철이란다. 그래서 좁은 2차선 해안도로에 멸치들이 널려 있었다. 도로에서 보니 금오도에서 약간 떨어져 작은 섬 하나가 보였다. 그 섬에 집 두 채가 보이고 개간한 밭들이 보였다. 저 섬의 이름은 수항도라고 했다. 저 섬에는 두 집이 있는 데 노부부와 또 할머니 한 분이 사신다고 했다. 멀리서 보니 밭도 일구어 있고 빨래가 널려 있는 등 삶의 흔적이 보였다. 저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노인, 세 분의 삶이 궁금해졌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80이 넘었는데 도시에 자식들이 모시려고 해도 안 간다고 했다. 이곳이 그리 편하단다. 할머니 혼자서 무슨 재미로 사실까?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람은 쪽 자기가 살아온 지역과 자기 방식 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수앙도 할아버지가 면사무소나 기관에 나오시면 직원들이 전부 일어나서 인사한단다.
“ 수앙도 도지사님 나오십니까?”
그러면 좋아하시며 너털웃음을 웃는다나.

계속 차는 해안을 끼고 달리며 산자락에 유자 밭들이 보였다. 이곳에도 유자를 많이 심었다고 했다. 화태, 개도 옆으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섬이 나로도라고 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나로도는 고흥에 속하는 타군이지만 이곳에서 보니 올망졸망 같은 다도해 섬들의 형제들이다.

함구미까지 가니 해안도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해안일주도로를 계획했는데 환경단체에서 반대를 해서 못 내었다고 했다. 함구미에서 다시 차를 돌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금오도는 물 사정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한다. 우물을 파면 짠 바닷물이 나왔단다. 금오도 사람들의 물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섬 내륙에 상수도 수원지를 건설했단다. 그 곳을 구경하기 위해서 다시 소재지인 우학리로 나와서 섬 내륙으로 들어갔다.

섬 내륙은 전혀 섬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강원도 산악지대를 연상하게 했다. 100년 전에 호랑이가 살면서 사람들을 헤쳐 정월이면 호환을 막기 위해서 당제를 드렸다는 데 정말 호랑이가 살만 한 산악지대였다.

지나면서 보니 동네가 형성되지 않고 집이 외로이 한 집, 두 집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왠지 썰렁해서 자세히 보니 빈집이란다. 산자락에 을씨년스럽게 흉가처럼 남아있는 빈집들, 저기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어디로 떠나야만 했을까. 빈집만 남겨놓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연들이 궁금해졌다. 저 산자락의 버려진 다랑이 논들만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연들을 알 것이며 잃어버린 주인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우리 농업이 쇠퇴한다면 아마 한국 농촌은 저처럼 되지 않을 까. 현재 농촌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 다 돌아가시고 젊은이들 농촌을 다 떠난다면 우리 농촌 마을은 저 빈집들처럼 폐가가 될 것이며 저 다랑이 논처럼 잡풀 우거진 버려진 땅들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누가 모텔의 방문을 노크했다. 오늘 아침에 망산에 있는 봉화대를 구경하자는 약속대로 우리를 안내하는 분이 오셨다.

금오도 봉산의 봉화대
금오도 봉산의 봉화대 ⓒ 조갑환
차는 비포장도로를 약간 달리다가 망산(344미터)이라는 푯말이 서있는 봉화대로 올라가는 입구에 내려놓았다. 우리 일행은 오솔길을 따라 봉화대를 향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산길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올라갈 만 했으나 굽이굽이 올라가면서 숨이 콱콱 막혀왔다.

내가 맨 앞에 서서 올라가는 데 뒤 따라 오는 사람들도 숨이 차는 모양이다. 도중에 쉬었다. 산 아래 포구가 보였다. 포구 이름이 심포라 했다. 바로 앞에 이어진 듯 떨어진 섬이 안도, 금오도와 안도는 연륙계획이 있단다. 조금 멀리 포장마차의 자판 위에 놓인 해삼처럼 길게 몸체를 늘어뜨린 섬이 연도라고 했다. 연도에는 코끼리 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고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등대가 유인등대인 소리도 등대라고 했다.

봉화대에 오르니 다도해의 남쪽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봉화대가 축조된 것은 고려시대 말인 듯싶다고 했다. 당시에 왜구가 많이 출몰해서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면 고흥의 팔영산을 거쳐 장흥의 천관산으로 이어져 한양까지 가는 봉화란다.

우리 일행은 경주의 첨성대처럼 축조된 2-4미터 높이의 봉화대에 올랐다. 옛적에는 이곳이 무인도(?)였을 텐데 봉화지기들은 이 봉화대를 지키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곳 봉화대 위에서 저 너른 바다만을 바라보며 왜구의 침입을 알렸던 봉화지기들의 손때가 묻었을 돌 하나에도 애정을 느꼈다.

금오도의 봉산에서 바라본 남해의 해돋이
금오도의 봉산에서 바라본 남해의 해돋이 ⓒ 조갑환
흘러내리는 땀, 시원한 남해의 바람, 툭 트인 남해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 등, 아! 이렇게 좋은 기분과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금오도에 신랑봉이 있고 건너 마을에는 옥녀봉이란 산이 있다. 하늘나라의 선녀가 금오도에 놀러 왔다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이곳에 숨어 살았다 한다. 이것을 옥황상제께서 아시고 분노하셔서 이 들을 신랑봉과 옥녀봉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금오도는 선녀가 내려와 놀던 섬, 하늘에서도 아름다움을 인정했던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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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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