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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생가 전경
김유정 생가 전경 ⓒ 박도
'김유정역' 탄생

교실이나 강의실에서 가르쳐주는 사람만이 스승은 아니다. 가르침은 어디서나 이루어지고 시공을 초월하기도 한다. 필자는 고교 시절 백일장에, 교내 문예현상모집 소설부문에 졸작이 당선된 후 문학적 소질이 있는 양 소설가가 되고자 국문과로 진학했고, 교단생활을 하면서 쭉 작품을 써왔다.

하지만 기성작가로서 등단도 못한 채 마흔을 넘겼다. 어느 해는 마지막 도전이라고 작품을 썼지만 신춘문예에 역시 낙방이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이균영씨가 웬일인지 편지를 보내왔다.

고 이균영씨의 편지
고 이균영씨의 편지 ⓒ 박도
계속 쓰신다면 문운(文運)이 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그분은 내게 아편을 보내줬다. 그동안 내 습작생활을 반성해 보았다. 소설에 대한 열정만 있었지 진지한 문학수업이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공부하는 심정으로 서점에 가서 소설 창작에 대한 책을 뒤졌다.

마침 눈에 띄는 책이 전상국씨의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였다. 그 책을 몇 차례 읽으면서 나의 데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를 썼다.

이런 면에서 소설가 전상국 선생은 나의 스승이시다. 늘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던 차에 한 모임에서 인사를 드리자, 마침 선생이 먼저 춘천 김유정문학촌에 한 번 들러달라기에 늦가을 볕 좋은 날을 골라 춘천으로 갔다.

춘천 명동에서 후배 작가를 만나 그곳 명물 '닭갈비'를 맛보고 명동거리로 나서자 온통 티브이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 현장에는 일본 대만 등지의 '욘사마' 열성 팬들로 붐볐다.

춘천 명동거리의 '욘사마' 열풍,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 열성팬들이다.
춘천 명동거리의 '욘사마' 열풍,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 열성팬들이다. ⓒ 박도
김유정의 고향 춘천이 뒤늦게나마 문화의 고장으로 거듭 알려짐에 흐뭇했다. 거기서 택시를 타자 20여 분만에 경춘선 신남역이 나왔다. 2004년 12월 1일부터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개명된다는 플래카드가 요란하게 걸렸다. 우리 나라 최초로 작가의 이름을 붙인 역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도 점차 문화인들이 대접받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거기서 부르면 대답할 거리에 '김유정문학촌'이 있었다. 행정상 지번은 춘천시 신동면 증3리(실레마을) 868-1이었다.

촌장 전상국 선생으로부터 '김유정문학촌'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받았다. 이 마을은 김유정이 태어난 고향 마을로 그의 소설 대부분이 이곳에서 구상되었을 뿐 아니라, 김유정 작품의 소재나 등장인물이 실제의 상황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 명작의 산실이라고 했다. 김유정 생가 안채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소설은 작가가 꾸며낸 거짓말 이야기

작가 전상국 선생
작가 전상국 선생 ⓒ 박도
-소설은 무엇입니까?
"소설은 작가가 꾸며낸 거짓말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능청,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능청떨기가 소설이지요."

-어떤 사람이 소설을 씁니까?
"'글 쓰는 일이 즐겁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구원한다' 등 이런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소설을 씁니다."

-무엇을 씁니까?
"이것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든지, 이것은 나 말고는 누구도 쓸 수 없다든지, 이 문제에 나보다 더 절실하게 부딪쳐 본 사람이 없다든지, 바로 '이것이다' 하고 불현듯 짚이는 뭔가를 찾아내서 써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쓰려는 무엇의 전문가가 돼야 글 쓰는 신명이 난다는 얘기이기도 하지요. 대부분 작가나 시인들이 그러하듯 글을 쓰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각인된 기억을 밑천삼아야 합니다.

각인된 기억이란 그만큼 절실하고 충격이 컸던 사건이란 뜻이겠지요. 시간이 지난 지금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객관화되었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것이 머릿속에 생생한 만큼 그 속에 뭔가 비밀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잊혀질 수 없는 그 기억에 의미를 붙여야 합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창고에서 숨을 쉬고 있는 그것의 정체를 밝혀서 써야 합니다."

김유정 상
김유정 상 ⓒ 박도
-이제까지 숱한 작품을 발표하셨는데 글쓰기에 고통스럽지 않으셨나요?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복합니다. 글 쓰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지요. 즐겁지 않았다면 이제껏 긴 시간 동안 글쓰기를 계속해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글 쓰는 일이 즐겁다고 말하는 일은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가장 정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신춘문예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어떤 분은 그 당선 소감을 통해 글쓰기가 이처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철철 피를 흘리고 생명을 깎아내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했기에 오늘 같은 영광이 있다는 얘기였지요.

등단의 과정이 그처럼 고통스러웠다는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그 문맥은 어디까지나 글쓰기의 고통으로 전해졌던 것이지요. 고통을 통해서 즐거움으로 들어갔을 뿐이지, 글쓰기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정직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작은 글쓰기에서부터 큰 글쓰기, 전문적인 글쓰기나 아마추어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즐겁지 않다면 더 이상 쓰는 일을 그만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체험에서 우러난 창작 강의를 더 듣고 싶었지만 오후 4시부터 대학(강원대학교)에 강의가 있다고 하기에 차중에서 남은 말씀을 듣기로 하고 전 교수님의 차에 올랐다.

-왜 소설을 쓰셨습니까?
"저도 가끔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곤 합니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이 일의 정체에 대한 물음인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내가 내놓은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즐거우니까 쓴다' 그것입니다. 나한테는 글 쓰는 일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일에 대해서 일이 안 풀리고 열등감을 느끼다가도,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이 일이 내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바로 즐거움이고 구원인 것이지요.

작품 속의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다(기념전시관)
작품 속의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다(기념전시관) ⓒ 박도
원래 열등감 체질이었던 나로서는 글쓰기가 아니었더라면 그 열등감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찌그러지고 형편없이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글쓰기가 내 인생의 목표로 선택되면서, 그 열등감이 작으나마 창조적인 에너지로 빛을 보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유정에게만은 아직도 열등감을 느낀다는 전 교수는 이순을 넘긴 지금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차는 이내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멈췄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 미처 나누지 못한 얘기를 마저 하기로 약속하고는 거기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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