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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 사거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서울 서대문 사거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건물. ⓒ 남소연

네티즌을 중심으로 진보언론을 선도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는 최근 '농협개혁'과 관련된 기획보도를 연재한 바 있다. 우선 농협의 현실에 대한 날카롭고, 애정 어린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고자 한다.

특히 "농협이 진정한 농민의 대변기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내부의 자기반성이 절실하다"는 지적에도 동감한다. 농협중앙회 경영의 건강한 감시자로서 우리 노동조합 또한 올바른 '농협개혁'을 위해 살신성인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그러나 '농협개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 농민단체와 특정인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전달하며, 그것이 마치 국내 농업계의 전반적인 여론인 것처럼 보도하였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나아가 농협의 문제점으로 부각된 사안에 대하여 심층적인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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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오늘날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국농업의 위기는 결정적 시기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매인 채, 정부의 무책임한 농업정책을 방치한 국내 농업계의 '분열'에서 초래되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국면은 '농협'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단코 헤쳐나갈 수 없다.

한국 농업의 위기는 국내 농업계의 '분열'이 원인

현 시점 황폐화된 농업·농촌의 현실과 이에 기인한 농협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농가부채' 문제와 '농산물 유통'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농협의 '신경분리'가 일부 농민단체 및 국회의원과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지금부터 압살위기에 직면한 농업·농촌의 현실을 냉철히 진단하고, 국내 농업계 전체의 자성과 분발을 촉구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허구적 '신경분리' 논의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졸속적으로 추진된 정부의 농업정책은 농특세를 포함한 57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예산만 탕진한 채 오늘날까지 표류하고 있다.

농정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가운데,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관료의 펜 끝에서 입안된 무책임한 정책이 산더미 같은 농가부채의 부메랑이 되어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나날이 옥죄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후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둘러 도입된 '유리온실' 사업은 "나의 경쟁상대는 덴마크 농부"라며 해맑게 웃던 소박한 농민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농림부가 농협의 대체세력으로 육성코자 우후죽순격으로 설립을 지원했던 '영농조합법인'은 지리멸렬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난받는 '농산물 유통문제' 역시 농림부의 무능함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농산물 유통의 성패는 1차적으로 '수급조정'에 달려있으며, 그 기능은 정부의 역할로서 농림부 산하기관인 '농산물유통공사'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에 의한 농산물 수급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농협이 산지유통을 장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농협이 부러워하고 있는 '하나로클럽' 사업을 통해 농협의 소비지시장 점유율이 5%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생산자단체의 협동조합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로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다.

'신경분리론'은 무책임한 논자들의 허구적 주장

정부를 비롯한 국회, 농협, 농민단체, 학계 등 국내 농업계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함께, 분열된 모습을 극복하고 총체적 역량을 결집시켜 실현 가능성 있는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지역농업 개발에 있어서 농업 관련 정부기관들의 목소리마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란 실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94년 '문민정부'와 98년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했던 '농협개혁'이 농협중앙회의 집요한 저항과 로비에 의해 무산되었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개혁에 대한 잘못된 방향설정과 '농민실익'이 담보되지 못하는 무책임한 주장, 이로 인한 국내 농업계의 분열과 폭 넓은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던 농업계 전체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정부는 '농민 표'를 의식한 선심성 선거공약의 유혹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에 의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국회 또한 수 차례에 걸친 '농협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농협개혁' 및 '농협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법안심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농협은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농민실익'이 증대될 수 있는 자체 개혁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 농민단체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집착한 분열을 극복하고, 국내 농업계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학계 또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협동조합의 장기적인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모델을 서둘러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개혁할 것이 있으면 분명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방향설정으로 소모적 논쟁만 난무한 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만 탕진해온 시행착오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최병휘 농협중앙회 노조위원장.
최병휘 농협중앙회 노조위원장.
우리는 분리시한이 명시된 '신경분리안'이 '농협개혁의 핵심'이라는 무책임한 논자들의 허구적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강제로 분리된 '수협'의 사례는 '신경분리'가 '농민실익 증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냉정한 현실로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노동조합은 농협개혁의 핵심이 '농산물 유통혁신'과 '중앙회장 및 조합장의 비상임·명예직화'로 집약되는 '현행 지배구조 체제의 개선'에 있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신경분리'의 소모적 논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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