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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북원의 경우 황위계승으로 인한 내분지란이 아니라면 다시 강성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와중에 진압은 했다하나 아직도 곳곳에서 이합집산을 보이고 있는 홍건군은 명황실에는 위협적 존재였다.

"그에 따라 태조께서는 군병력은 화북과 사천지역에 남아있는 북원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필요했고, 중원 고토의 회복에 힘쓰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백련교의 수뇌들을 처리할 조직이 필요했던 거외다."

대명과 황실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처였다.

"바로 백련교도들의 수뇌부를 처리하기 위한 조직이 바로 초혼령(招魂令)이라 불리는 비밀조직이었소. 태조께서는 이 조직을 만들면서 군(軍)에서도 무예가 뛰어난 인물들만 모았지만 백련교의 기이한 법술(法術)과 괴이독랄한 무예(武藝)를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림인들이 필요하게 되자 각파의 인물들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소."

초혼령의 비사.
사십여년간 묻혀 있었던 그것의 존재는 이렇게 밝혀지고 있었다. 좌중은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입을 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실 분이 계시겠지만 같이 있던 사형제나 윗대 어른들이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었소. 그것은 구파일방이나 사파라 불리워지던 방파나 문파도 예외는 없었소. 본사에서도 노납의 사제인 광법(光法)과 광정(光正) 두 사제가 분명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파문(破門)을 당하고 홀연히 사라졌었소.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두 사제는 그 조직으로 보내졌던 것이오."

파문이란 완전히 그 방파를 떠나는 것이다. 파문을 당한 이상 그는 이미 그 문파 소속이 아니다.

"그 대신 구파일방과 각 문파는 황실로부터 논공행상이 이루어져 많은 지원을 받았소. 백련교가 사교이고, 지금까지 마교(魔敎)라 일컬어지긴 하지만 그들을 처치하고 회개하게 하는 일이오. 피를 묻히는 일에 문파의 제자를 보내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은 것이오."

논공행상이 반드시 그래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원의 잔당세력을 몰아내는데 일조를 한 무림인들에게 내려진 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광허선사는 아마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사제 둘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부터 관(官)은 무림의 일에 간섭하지 아니하고, 무림은 관에 대한 일을 회피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소. 특히 초혼령의 행사에는 문파의 제자가 관련되어 있어도 간섭하지 말라는 칙령이 내려왔고, 초혼령의 비밀조직은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오. 노납도 그 뒤 두 사제를 본 적이 없고, 어떠한 연락도 해오지 않았소."

문파에서 파문의 형식으로 떠난 사람들 모두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들 중에 돌아 온 사람도 없었고, 또한 연락된 자도 없었다. 형식은 파문이었지만 정말 파문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뒤 초혼령은 수시로 나타났소. 초혼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죽거나 사라졌소. 그들은 태조가 원했던 바로 그 조직이 된 것이었소. 그들은 무림 뿐 아니라 관에서도 알지 못하는 비밀조직이었고, 대부분의 백련교의 수뇌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소."

원말에 전 중원을 휩쓸었던 백련교도들의 민란. 홍건군은 여러 세력으로 나누어졌고, 원을 중원에서 몰아내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각 세력의 수뇌부는 전 중원을 제패하고자 하는 야심들을 가지고 있었다.

태조 주원장도 이러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세력의 수뇌로 다른 세력과 다른 점은 최종의 승자가 되어 명을 건국했다는 것뿐이다.

"다만 그 비밀세력이 무섭게 커지는 것을 본 태조께서도 만약의 사태를 우려했을 것이오. 변질될 경우도 생각해야 했던 거외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이 해금령(解禁令)이오. 하지만 초혼령이 어연 십사오년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 임무를 모두 마치고 사라진 줄 알고 있었는데…."

아마 최근에 다시 나타난 초혼령을 말하는 것일게다. 공교롭게도 초혼령의 해금을 앞두고 십오년만에 나타난 초혼령은 어찌된 것일까?

"요사이 백련교도들이 은밀하게 모습을 보임에 따라 걱정이 되었는데 초혼령이 재차 나타났다는 소식에 사실 그 진위 여부를 알고 싶어 용두방주께 부탁을 드린 바 있었소."

아마 장안(長安)의 거부 양만화에게 떨어진 초혼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광허선사의 시선을 따라간 자리에는 누더기 옷을 입었지만 깨끗하게 빨아입은 거지 몰골의 오십대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인원으로 보면 무림제일의 방파인 개방(丐幇)의 방주 철골개(鐵骨丐) 구한(具漢)이었다.

다만 의외인 것은 어떠한 것에도 견딘다하여 철골이라는 그의 외호에 걸맞지 않게 왼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본래 개방이라는 곳이 웬만한 부상은 침만 바르면 낫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치료에 둔감한 편이다.

그가 붕대를 감고 있다는 것은 부상이 경미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본 방주가 알아 본 결과 장안의 양부호는 절대 백련교도가 아니오. 다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그의 부친인 양귀(揚貴)는 과거 백련교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소. 허나 그 당시 홍건군(紅巾軍)에 한번쯤 몸담지 않았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사실이 그렇다. 원말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농민의 반란은 대부분 백련교와 관련된 홍건군이 중심이 되었다. 그 당시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홍건군에 가담한 사람들은 사실 애국지사(愛國志士)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부친이 한때 백련교에 몸담았다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양만화에게 초혼령이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이유가 합당치 않다.

"하지만 본방에서 알아 본 바로는 정작 양부호 자신은 백련교와 관련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백련교를 극히 싫어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소."

무림방파 중 가장 넓고 정확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개방이다. 그들의 정보라면 정확할 것이다. 헌데 초혼령이 왜 그에게 떨어진 것일까?

"허…기이한 일이오. 양장주는 본사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소. 이번에 도움을 청해와 거절하기 어려웠지만 부득이하게 돕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답변하였는데…."

광허선사는 망설이고 있다.

"본파도 역시 마찬가지외다. 하지만 해금령이 공표된다면 도와야 될 것 같소."

화산파(華山波)의 장문인 개화검(開花劍) 우태현(瑀太賢)이 한 말이었다.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극성까지 익히고 매화 아홉송이를 피어냈다고 알려진 인물. 화산 역사상 아홉송이의 매화를 완벽하게 피어낸 인물은 열명을 넘지 못한다.

나이 사십에 장문인을 맡은 이래 십년 동안 무림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본파 역시 같소이다."

종남의 장문인인 사군명 역시 그 뜻을 표했다. 양만화의 도움을 받았고, 양만화는 세 곳에 도움을 청해 왔다. 하지만 금제되어 있는 상황이라 도와주지 못함을 통보했다.

"허… 아무리 파문이라는 형식을 빌었다 해도 그들은 각파에서 선발되어 뭉친 조직이오. 아미타불…. 결국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여야 하는 겐가? 아미타불…."

광허선사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그 내막을 밝히길 꺼려했던 것이다. 이제 해금령이 전 무림을 향해 발표가 되면 초혼령은 과거와 같이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소림과 화산, 종남파도 양만화를 도와야 할 판이다.

여하튼 황제가 내린 황지의 밀서.
대학사인 송렴이 일필휘지 써 내려가고 황제의 옥새가 찍힌 밀지는 초혼령의 행사를 막는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광허선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모이신 분들은 여기 계신 곤륜의 운룡상인을 비롯 소림, 무당, 화산의 전대장문인들과 철혈보(鐵血堡)의 보주(堡主)이셨소."

철혈보는 한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란 소리를 들었던 철혈마제(鐵血魔帝) 독고수광(獨孤壽廣)이 창건한 이래 이백여년의 전통을 가진 문파다. 정사중간이라고는 하나 구파일방의 배척으로 오히려 마도(魔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무림에서 구파일방에 비견할 세력은 현재 철혈보와 천마곡(千魔谷)외에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사십여년 전이라면 그 다섯 곳이 중원무림을 대표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당시 이 밀지는 황실에서 나온 어전시위(御殿侍衛)가 보여준 것으로 후일 나타나면 소림에서 해금령을 전 무림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소. 그리고 해금령이 올 것이라는 통보를 한달 전에 받은 것이오."

만물표국에 맡겼던 표물 아닌 표물로 인한 사건….
좌중의 인물들은 무림과 황궁에 얽힌 비사를 듣고는 그 모든 것을 이해했다. 초혼령이 왜 만들어 졌는지, 그동안 왜 초혼령의 행사에 구파일방이나 무림문파들이 간섭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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