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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광무선사는 아직 올려다 볼 수 없는 무림 최고의 배분이다.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도 이례적인 일일진대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인가?

“아직까지 노납은 무(武)에 대한 욕(慾)을 버리지 못했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테지.”

광무선사는 동자승이었을 때부터 무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다른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지만 무에 대한 일이라면 그는 침식을 잊고 달려들었다.

“……?”

“노납의 한수만 받아보세.”

이 정도면 농담도 지나치다. 어찌 칠순이 다된 노승이 이제 이십대를 갓 넘은 담천의와 손속을 나누겠다는 것인가?

“소생이 어찌 감히 선사와….”

담천의는 황급히 한발자국 물러섰다. 이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걱정마시게. 찌그러진 노안(老眼)으로 이미 시주의 능력을 다 헤아리지 못했으니 담시주는 충분히 자격이 있네.”

손가장에서 담천의를 보는 순간부터 광무선사는 젊은 사람의 공부에 대해 놀람을 금치 못했다. 누구보다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고, 그 능력을 헤아리는데 남다르다는 광무선사다. 더구나 무당의 현진이 그와 손속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리고 담천의의 무공이 무당의 진산비기와 관련이 있다는 사정을 알고부터 이 노승은 담천의를 줄곧 주시해왔다.

어쩌면 자신이 칠십 평생 무(武)에 매달려 오면서 얻은 심득(心得)의 세계에 담천의가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광무선사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선사께서는 무명의 잡인(雜人)을 너무 높게 봐주시고 계십니다. 감사하오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십니다.”

그의 태도에는 추호의 가식이나 허례의 겸양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비굴함이나 비아냥도 아니다.

“허허… 명성이 있다면 그것이 영원할텐가… 본래 고인이 아닌 잡인이라는 평가는 누가 하실텐가? 노납과 시주가 이렇게 만나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 연결되는 것 뿐이네.”

더 이상의 회피는 광무선사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이러는 데는 필히 연유가 있을 터, 담천의는 공손하게 합장을 하며 예를 취했다.

“선사의 말씀과 그 뜻을 헤아리지는 못하나 가르침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의 태도에 광무선사는 환한 미소를 띄웠다.

“가르침은 무슨… 오히려 노납의 욕심일 뿐이지. 오히려 소림의 제자들에게 가르침이 되겠지.”

주위에 숨을 죽이고 이곳을 주시하는 눈은 많았다. 아마 소림의 십팔나한(十八羅漢)들도 있을지 모른다. 광무선사가 담천의를 이곳으로 오라 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담시주… 만약 노납을 경멸하겠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네.”

그저 예의라 생각하고 허식으로 하지 말라는 경고다.

“선사를 모시는데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으오리까?”

그의 말은 옳다. 이미 광무선사의 자애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온갖 삿된 마구니를 제압한다는 사대천왕(四大天王)의 그 모습이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

담천의는 숨을 고르다 말고 일순간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광무선사의 전신에 어리는 서기와 그 주위로 퍼져나가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 염주를 쥔 오른 손이 왼손과 합장되어 있으나 이미 사왕천(四王天)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인 것 같기도 하고 다문천왕(多聞天王) 같기도 하다.

이미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모든 마귀(魔鬼)가 요동칠 수 없다는 그 모습이다. 담천의의 가슴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아픔과 회한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저 모습과 같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게 했던 광노제란 인물과 맞서 있을 때의 무기력과 패배감. 움직일 수는 있되 허황되고, 공격할 수는 있되 그 즉시 자신은 패한다.

“……!”

정신이 아찔해 왔다. 아직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그 때의 악몽과도 같은 상처는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느꼈던 기이한 무형의 염력은 상대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지금은 과거의 그것과 같다. 이미 광무선사의 전신에서는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다르다. 주위의 경물은 변하지 않아도 그를 옥죄오는 알 수 없는 압력은 이미 그의 전신을 그물처럼 감싸고 있다.

그는 이것을 극복해야 했다. 패배는 한번으로 족하다. 그가 이를 뛰어넘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패배자가 될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광무선사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했다. 광목천왕 같기도 했고 다문천왕 같기도 했고, 광노제란 인물 같기도 했다.

담천의는 느릿하게 양 손을 가슴께로 끌어 올렸다. 양손을 세워 앞가슴에 끌어 올리니 합장한 모습에서 가슴 넓이만큼 손바닥을 서로 바라보게 한 기이한 자세다.

“……!”

처음으로 광무선사의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자신의 전신에서 담천의를 옥죄어 가던 무형의 기운이 기이하게도 담천의의 양 손, 바로 담천의의 가슴께로 모아들면서 조금씩 소멸하고 있음을 안 까닭이다.

(노납의 눈은 아직 흐리지 않았군.)

아직 손을 쓰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기세면 모두 땀을 흘리거나 숨을 몰아쉬며 무너져 내리는게 보통이다. 기껏해야 마지막 발악을 하듯 공격해 보는 게 고작. 하지만 저 젊은 청년은 자신의 기세를 받으며 흡수하고 있다. 만약 쳐낸다면 파도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더 큰 파도를 쳐낼 수 있으련만 그저 순응하듯 받아들이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조심하시게.”

이미 자신의 기세를 이겨낸 담천의다. 이제는 그 끝을 확인해야 했다.

스르--륵--!

합장한 쌍수를 떨치며 왼팔은 소림의 비학(秘學) 반선수(盤禪袖)요, 오른손은 염주를 튕기듯 뿜어지는 탄지신통(彈指神通)이다.

본래 반선수는 가사(袈裟)의 소매로 떨치는 무공으로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가사를 무기삼아 직접 가사가 가격이 되는 단계서부터 떨치면 경풍이 일어 상대를 공격하는 단계에까지 그 익힘에 따라 묘용도 달라진다. 하지만 천근거암도 반선수의 경력에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는 무서운 무공이다.

더구나 지금 펼치는 광무선사의 반선수는 그 누구도 이르지 못했다는 무형의 반선수였다. 단지 한번의 움직임으로 무형의 강기가 일어나 해일처럼 밀려든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더구나 담천의의 발을 묶기 위해 펼쳐진 탄지신통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 아닌 단지 염주를 한 알 한 알 굴릴 때마다 소리 없이 쏘아지는 지강(指强)이다.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의 행동은 제약을 받게 되고 궁극에는 손도 써 보지 못하고 패하게 된다. 담천의는 땅에 두발을 딛은 채 몸을 수평으로 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지공의 예봉을 피하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반선수의 경력을 흘리기 위해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천무선사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다가서며 가사의 자락이 하늘을 덮으며 내려 눌렀다.

사사--사삭----타다---닥--

마른 장작에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이럴까?

담천의의 두 팔이 미끄러지듯 그의 전신을 덮을 듯한 가사의 자락을 헤치며 활처럼 굽은 그의 몸이 똑바로 세워지고 있었다.

“아…!”

어디선가 나직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부드럽지만 빠름이 있고, 단순하면서도 현기롭다. 두 발을 지면에 댄 채 그의 몸은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며 그는 광무선사의 예봉을 모두 막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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