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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덕수 소속 송호창 변호사가 최근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과 관련 <오마이뉴스>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다음은 시민기자이기도 한 송 변호사의 기고문 전문이다...편집자 주

얼마 전 한나라당의 싱크 탱크라는 '여의도연구소'라는 데에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 내용이 종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막무가내식 주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다시 씹어 봐야 '씹던 껌'이고 싱겁기만 해 별 관심이 없었다.

국민투표와 헌법소원은 도깨비 방망이?

그런데 한나라당의 반응 중 주목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국민투표 없는 국보법 폐지는 헌법위반'이고, 만약 '여당이 국보법 폐지법안을 강행 통과시키면 헌법소원으로 다툴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대히트 유행어인 '관습헌법'을 창조하여 코미디계를 평정한 이래로 '국민투표'와 '헌법소원'은 졸지에 아무데나 갖다 붙이기만 하면 말이 되는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버렸다. 최고 국법인 헌법의 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의 위력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국민투표권이 공권력의 침해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규정된 헌법상 기본권에 포함된다거나 기본권으로서 국민투표권을 침해했으니 헌법소원으로 다툴 수 있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궤변에 불과하다. 우리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대의제국가에서 국민투표는 국회의 능력 밖에 있는 사안에 대해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는 제도이다. 국민투표를 할 것인지 여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재량 사항인 만큼 국민투표에 회부하지 않는다고 모두 위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법률에 대한 국민투표와 헌법소원을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순간 코미디는 절정에 이른다. 국민투표와 헌법소원은 대의기관인 국회가 결정할 능력 밖의 문제를 판단하거나 국회의 입법 오류를 시정하는 제도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국민투표나 헌법소원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16대 국회에서 자신들이 통과시킨 행정수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자 천지개벽을 한 듯 반긴 이들이 바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란 사실은 이번 해프닝이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임을 입증한다.

벼룩 낯짝만큼의 염치가 있다면...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국민의 눈에는 한나라당의 최근 행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분열증세로 읽히기 십상이다. 이를 입증하듯 박근혜 대표는 ‘정부참칭’조항 삭제를 비롯한 국보법의 전면 개정주장과 일체의 개정없는 존치주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연일 조변석개하고 있다.

그러나 벼룩 낯짝만큼의 염치라도 있다면 국보법이 독재정권에 의해 악용되어 왔고, 그것이 국보법의 연명을 통해 자행되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최소한 국보법을 털끝도 손댈 수 없다는 억지 주장이 당 내에서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면 이건 앞뒤가 안맞는 심각한 사태가 아닌가.

한나라당이 진정 보수주의 정당으로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당내에 막무가내식 수구집단과 그 논리를 과감하게 축출해야 한다. 수구와 보수는 본질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그 공존의 흐름이 늘 수구편향적으로 흐르면서 그 열매 역시 수구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의 정책연구소라는 곳에서 나오는 정책에도 '싱크'는 없고 막가파식 '탱크' 논리만 들어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 내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일부 의원들은 국보법 전면폐지에 반대하고, 소폭개정 또는 대체입법을 주장하며 의원총회에서 정한 당론을 앞에서는 수긍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발목을 잡으려는 이중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 역시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보법의 위헌성·반인권성·반통일성을 인정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국보법의 핵심조항인 '반국가단체 규정' '찬양·고무죄' 등의 존속을 주장하는 것은 또한 정신분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들 주장의 논리 모순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데도 제대로 된 논리로 이들을 설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철딱서니 없는 어린 것들이 쥐꼬리만한 권력을 얻어 쥐었다고 이런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는 조용기 목사의 일갈에 제대로 응수하고 싶다면, 열린우리당은 당내 반개혁 집단과 그 논리를 강력하게 규율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사 청산의 대표적 잣대인 국보법 폐지법안을 과감하고 단일한 행보로 처리함으로써 스스로 더 이상 ‘어린 것들’이 아니란 걸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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