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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지난 불법대선자금 수사 시기를 전후해 기소된 정치인 23명의 1·2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법원이 선처사유를 남발하며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항소심 선고 형량을 깎아 주는 정도가 심하고, 양형사유 제시태도 또한 항소심에서 180도 바뀌는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1일 밝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조국 서울대 교수)가 최근 발간한 '사법감시 제22호' <불법정치자금 재판에서 본 “화이트칼라” 선고형량 및 양형사유 비판>에 따르면 “항소심 판결까지 선고된 재판 12건 중 10건은 1심 선고형량이 2심에서 줄어들었다”며 “그 중 1건을 제외한 9건은 선고형량을 줄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항소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속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그러면서 “형량이 줄어든 10건 중 4건(김영일, 박명환, 여택수, 최돈웅 사건)은 단지 1심에서 선고형량이 높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을 2심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여 감형해 준 것이고, 1건(정대철 사건)은 1심에 비해 범죄 사실과 위반법률조항이 추가되었음에도 형량이 줄어드는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감형한 사례”라고 제시했다.

또한 “다른 5건 중 4건은 취득한 불법자금에서 아주 일부만이 배제됐을 뿐인데 선고 형량은 1심보다 상당히 많이 줄어 들었다”며 “서정우 사건의 경우 1심에서 불법자금 취득 금액으로 인정한 577억원 중 15억원만이 증거가 없어 유죄 부분에서 빠졌을 뿐인데 선고형량은 징역 4년에서 징역 2년으로 크게 감형됐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이어 “조사대상 23건 중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 17건 중 10건은 집행유예, 3건은 벌금형만이 선고돼 전반적으로 선고 결과가 온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는 법원과 검찰이 정치자금법에 처벌조항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포괄적 뇌물죄로 특가법 등을 적용하였으나, 이제는 형량이 낮은 정치자금법 적용을 선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연대는 “법원이 선처사유로 제시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많은데도 선처사유를 남발하다 보니 5~6가지씩 적용 받지 않은 정치인이 없을 정도”라며 “특히 당직자로서 공식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거나 국회의원 등의 신분이기 때문에 법질서 준수 의무를 더 엄하게 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지위를 선처사유로 적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원이 제시한 선처사유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직책 때문에 한 것 ▲조직을 위해 나서다 벌인 일 ▲그동안 국가에 기여한 것이 있다 ▲친구가 주는 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 ▲정치적 신념에 열중한 순수한 행위 ▲죄는 미워해도 노약자이니 ▲구속재판 받느라 그동안 힘들었을 것 ▲가져다 바치는 돈을 받았을 뿐 등을 선처사유로 꼽았다.

법원, 선처사유 제조기?…인생역전형 등 선처사유 3대 유형 발표

참여연대는 특히 “법원이 선처사유 제조기”냐고 비판하면서 ‘눈에 띄는 잘못된 선처사유 3대 유형’으로 ▲용두사미형 ▲인생역전형 ▲황당무계형 등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용두사미형은 양형사유를 제시하면서 범죄 행위의 심각성을 고려해 아주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을 세세히 역설해 놓고서는 어느새 선처사유를 열거하며 꼬리는 내리는 유형.

참여연대는 “서울고법 형사4부는 김영일 사건에서 ‘이 사건 범행은 죄질이 무거워 피고인은 중한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야당 사무총장 겸 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범행을 저지르게 됐고 ▲수수한 불법정치자금을 정당의 대선 비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채권을 반환한 점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공직과 의원직을 성실히 … 점 등 정상을 참작하면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1심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황당무계형은 선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을 선처의 사유로 제시해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는 유형.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서정우 사건에서 ‘법관 근무 당시 친분을 유지해 오던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되자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기업들로부터 대선자금을 받기에 이른 점 등 여러 정상을 참작…(생략)’ 이와 같이 지지하는 후보를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설득력 없는 사유도 있었다. 심지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는 김영일 사건 1심에서 선처사유의 충분한 설명 없이 단순히 ‘남다른 가정 환경’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인생역전형은 1심에서는 엄벌을 강조했으나, 2심에서는 선처를 강조하며 양형사유가 180도 뒤바뀌기는 유형.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가 박명환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2부는 ▲고령 ▲수사에 협조 ▲초범 ▲3선 국회의원 ▲금품공여자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 ▲장학금 조성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 등을 거론하며 형이 무거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처럼 법원의 양형사유 제시가 일관성 없이 재판부의 성향과 자의적인 판단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국 교수는 사법감시 22호 발간사에서 “법원이 ‘화이트칼라 범죄’는 무조건 형이 높아야 한다던가, ‘블루칼라 범죄’는 무조건 형이 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이트칼라 범죄’가 초래하는 사회적 유해성을 고려할 때 현상적으로 보이는 양형 차이에 대해 법원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유무죄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양형과 근거에 의해서도 좌우됨을 법원은 명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태훈 교수 “항소심, 감형사유 없나 눈 씻고 찾아봐 준 친절함 배어 있어”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사법감시'에 기고한 <실형선고 받을 걱정 없는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라는 글에서 “불법정치자금관련 정치인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면 별의 별 사유로 감형하더니 형집행을 유예할 특별한 사유도 나열하지 않고 은전을 베풀었다”며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 콤비를 박수치고 달래가며 기소까지 한 것이 허망할 뿐”이라고 개탄했다.

하 교수는 이어 “물론 항소심의 깎아주기가 무조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그냥 깎아 주고 싶은 마음에 어디 사유가 없나를 눈 씻고 찾아봐 준 친절함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의 사법 불신은 전관예우를 통한 유전무죄·무전유죄 현상, 양형의 불균형과 법관의 개인 편차, 고위 공직자 등 화이트칼라의 반사회적 범죄 행위에 대한 관대하고도 솜방망이 같은 처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특히 “이번 재판 결과는 양형 합리화를 위한 ▲판결전 조사제도 ▲양형기준제 및 양형정보시스템 등 다각적인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항소심이 구체적인 사건의 양형에 대한 시정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판결서에 범죄의 정상(情狀)이나 양형 이유를 명시토록 해야만 양형 과정과 양형 결과에 대한 사후 심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형량을 감형한 사유별 분류다.

▲피고인의 양형 부당 주장에 따른 2심 감형 4건
김영일 사건 = 1심: 징역 3년6월, 추징금 11억 516만원 → 2심: 징역 2년, 추징금 11억 516만원
박명환 사건 = 1심: 징역 3년, 추징금 6천만원 →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추징금 6천만원
여택수 사건 = 1심: 징역 1년 → 2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최돈웅 사건 =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1년

▲ 피고인의 사실관계 및 법리오해주장에 따른 감형 5건
서정우 사건 = 1심: 징역 4년, 추징금 15억원, 몰수 3억원 → 2심: 징역 2년, 추징금 1억원
안희정 사건 = 1심: 징역 2년6월, 추징금 12억 1천만원, 몰수 1억원 → 2심: 징역 1년, 추징금 4억 9천만원
이상수 사건 = 1심: 징역 1년 → 2심: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이재정 사건 = 1심: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 2심: 벌금 3천만원
최도술 사건 = 1심: 징역 2년, 추징금 16억 1,446만원, 몰수 3억원 → 2심: 징역 1년6월, 추징금 15억 5,946만원, 몰수 3억원

▲ 1심에 비해 유죄부분 및 위반법률조항이 늘어났으나 감형 사유 없이 감형 1건.
정대철 사건 = 1심 징역 6년 추징금 4억원 → 2심: 징역 5년, 추징금 4억 1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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