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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머금은 백두산 천지
구름을 머금은 백두산 천지 ⓒ 김형태
11시쯤 차는 간이휴게소에 도착했다. 천막집으로 농민인지 상인인지 몇 사람이 나와서 백두산 주변에서 생산되는 곡물, 커피, 장뇌삼 등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콩과 깨 등을 샀다.

중국 재래식 화장실 문화를 경험하라고 해서 화장실에 가보니 정말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었다. 인구가 많아서 그랬던 것일까? 남을 의식하지 않는 관습 때문일까? 왜 이런 화장실 문화가 형성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기서도 커피는 우리 돈 천 원을 받고 있었는데 중국 화폐 가치로 보면 너무 비싼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끝없는 숲이었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가이드는 백두산 호랑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눈여겨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일행 중 정 선생님이 무료하다 느꼈는지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가이드를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자고 했다. 갑자기 그러고 싶었다. 백두산이 한민족 유형의 구심점이라면 '아리랑'이야말로 한민족 무형의 구심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국내든 국외든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면 어김없이 아리랑이 불려지고 있다. 아리랑의 무엇이 그렇게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것일까? 우리는 아리랑의 정확한 뜻도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불려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구비 전승되어 부르고 또 부른다. 아리랑이야말로 ‘우리 민족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씩 노래를 부르고 쉬고 있는데 차는 어느덧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이도백하는 백두산 아래의 첫 동네로 옛날에는 산적촌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거칠고, 말보다 주먹이 앞서니 사람들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다.

차는 이도백하로 진입했다. 우리나라 시골 읍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도로는 차와 자전거, 보행자로 혼잡한 데 버스는 속력을 내며 달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버스는 앞차를 추월하더니 기어이 도로를 걷고 있는 사람 둘을 치었다. 버스의 좌·우측으로 각각 1명씩 치었는데 버스의 우측에 받힌 사람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버스의 좌측에 받힌 사람은 다리를 절며 비틀거리며 자리를 맴도는 것이었다.

운전기사는 내려서 부상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 우리 일행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와 현지 가이드가 의논하더니 우리 일행은 일단 택시를 타고 고려식당으로 가있으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좌측 거울은 부서져 나가 뒹굴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택시 3대를 타고 고려식당에 도착했다. 놀란 가슴을 달래며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잠시 후 가이드 둘이 와서 백두산에서 차가 직접 오기로 했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식당은 우리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교통사고 충격 때문인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닭백숙에 고량주 등이 나왔는데 뭐가 뭔지 모르고 점심을 먹은 것 같다. 나오다보니 이곳에서는 화장실을 위생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화장실을 가리키는 말이 여럿으로 보였다. 어디는 세수간, 측간, 측소, 위생간 등….

백두산 천지 앞에서
백두산 천지 앞에서 ⓒ 김형태

교통사고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백두산도 못보고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는데 다행히 중국측 여행사에서 힘을 써 줘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백두산 입구에서 승합차 한 대가 지원 나와 우리를 거기까지 태워다 주었고, 그곳에서 지프차로 갈아탔다.

덕분에 입장권을 끊고 기다리는 절차를 생략한 채 2시 30분쯤 곧바로 백두산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특권을 누렸다. 본의 아니게 표를 끊고 기다리는 관광객들에게 미안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중국측 여행사 사장의 형이 군장성이란다. 중국에서는 군인에게 불가능한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안내 책자를 보니 이도백하에서 백두 정상에 가는 코스는 지프를 타고 천문봉(天門峰) 아래까지 가서 천문봉에 올라 천지(天池)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과, 미니버스를 타고 장백폭포(長白瀑布) 아래까지 가서 온천과 장백폭포를 지나 천지까지 걸어 올라가서 천지물에 직접 손을 적셔 볼 수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98년 조난 사고 이후 장백폭포 쪽으로는 등산로가 폐쇄되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지프차 2대에 몸을 싣고 백두산을 올랐다. 지프 1대당 우리 돈 2만원을 요구했다. 바가지요금이 아닐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걸어서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야 백두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프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출발했다. 한나절을 달려온 백두의 모습은 비교적 완만했는데, 이제부터는 가파른 모습으로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워낙 급경사라서 아찔아찔했다.

나무가 빽빽한 숲을 지나니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유럽의 알프스 산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불안함 반, 설렘 반으로 지프차를 타고 천지 아래 주차장까지 왔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산 정상에 두 발을 디딘 것이다.

백두산의 야생화
백두산의 야생화 ⓒ 김재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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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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