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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꽃의 이름을 하나 둘 익혀 가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어떤 이름은 생소해서 그 꽃의 이름이 붙여진 내력을 듣고서야 '아, 그래서 그렇구나!'하며 감탄을 할 때도 있고, 어떤 꽃은 이름만 듣고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서 전혀 다른 상상의 문을 열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꽃과 관련된 특징이나 상상이 덧붙여지면 다시 그 꽃을 만났을 때 그 꽃의 이름을 불러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래에서 들어온 원예종 같은 것들은 그 이름이 워낙 생소하기도 해서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면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부처꽃과의 '부처꽃'은 그렇게 이름 붙여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해도 '붓다'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보랏빛 꽃의 색깔이나 수련과 연꽃이 피어있는 습지근처에서 자라는 습성, 그리고 꽃말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처꽃의 꽃말은 '호수'와 '정열' 또는 '사랑의 슬픔'입니다. 이 모든 말들이 얼마나 종교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 김민수

먼저 부처꽃은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피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물'이라는 것이 종교적인 상징으로는 '씻는 것' 즉 '회개'를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이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준 것도 물 자체가 죄를 씻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러움을 씻는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깨끗한 물은 생명을 살리고 더러운 것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가에 피는 부처꽃을 종교적인 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처꽃의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의 상징은 '고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사순절기가 되면 보라색으로 강단을 장식하고, 보라색 촛불을 밝힙니다. 무릇 진리가 진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고난이 동반됩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의 사건을 고난의 정점으로 받아들인다면 불교에서는 붓다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해탈하기까지의 사건이 어쩌면 고난의 정점일 것입니다. 고난의 정점을 넘어서야 우리를 속박하는 포장된 진리가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 김민수

부처꽃의 꽃말이 사랑의 슬픔, 호수, 정열이라고 했습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비와 사랑으로 온 인류를 껴안기 위해서는 아픔(슬픔)이라는 과정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요, 그렇게 자비로 대하고 사랑했건만 변하지 않는 속물들을 끝까지 사랑하려면 호수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져야 했을 것이요, 이렇게 자신의 온 삶을 불태우려면 '정열'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슬픔을 마다한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단점들까지도 껴안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 못했다면 그것도 거짓입니다. 사랑한다면서 늘 밋밋한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도 식은 사랑입니다.

ⓒ 김민수

부처꽃의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꽃은 분명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그에 대한 꽃말 정도가 나와 있을 뿐이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속명 라이스럼(Lythrum)이 '피'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라이트론(lytron)에서 유래된 것이니 보랏빛 꽃의 색깔을 보면서 붉은 피를 상상했을 것이고, 붉은 피의 상징은 '정열'이니 꽃말도 그에 따라서 붙여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름 햇살보다
더 뜨거운
마음을 담아 피어난
정열의 꽃
그 뜨거운 마음에 데일까
물에 뿌리를 내리고
온 세상을 부둥켜안고 사랑하기 위해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처럼
보리수나무 아래서 고뇌했던
붓다처럼
우뚝 서 세상을 응시하는 부처꽃
그렇게 사랑했건만
아직도
속물인 사람, 세상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라
어둠을 이기기 위해
온 세상이 빛일 필요는 없는 것이니
아주 작은 등불하나로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아라
<자작시-부처꽃>

ⓒ 김민수

'부처꽃'이라는 이름과 불교의 '부처님'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해도 '부처꽃'을 볼 때마다 부처님의 자비를 담아 핀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찰에는 연못이 많이 있습니다. 수련과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가에 빠지지 않고 피는 꽃이 있다면 바로 이 부처꽃입니다.

요즘 화원에서 취급하는 식물들 중에는 외래종 그대로 부르는 이름들이 많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런 이름들도 우리말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들으면 고개를 끄덕여지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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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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