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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
ⓒ 김민수
어린 시절 밭 한켠에는 식구들이 먹을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 떠올릴 수는 없지만 시금치, 아욱, 근대, 상추, 들깨, 파, 부추 같은 것들이 계절마다 풍성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돌아와 배가 고플 때는 부뚜막에 있던 찬밥과 밭에서 막 뜯어온 상추와 고추장이면 든든하게 허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누님들과 부추전을 해 먹자며 가위를 들고 부추 밭에 갔습니다. 부추를 잘라와 별다른 양념도 없이 밀가루만 풀어서 부쳐내도 참으로 별미였습니다. 그렇게 잘라먹어도 비만 한 차례 오고 나면 쑥쑥 자라던 부추가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 보았던 꽃은 분명히 탐스렇게 피어 꽃을 따서 제기차기를 할 만큼 큰 보라색 꽃이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 꽃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난 부추 꽃은 하얀색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심은 부추가 좀 특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꽃을 볼 겸 아끼고 아껴 피워낸 작은 텃밭의 부추 꽃은 모두가 하얀색입니다.

ⓒ 김민수
부추는 향과 맛이 뛰어나서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에 많이 사용됩니다. 오이소박이, 부추겉절이, 부추전, 부추잡채도 있고 각종 국의 건더기로도 사용되고 만두속으로도 사용됩니다.

부추는 예로부터 강장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추의 씨앗은 한방에서 구자라하여 비뇨기계통의 질환에 사용됩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나간 후 음식과 관련하여 불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광야에서는 '부추'도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반찬'으로서의 부추가 아니라 어떤 상징성이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 알았지만 어릴 적에는 그 많은 반찬 중에서 '부추'가 등장했을까 의아하기도 했고, 저 먼데 근동지방에 사는 이들도 부추를 먹는구나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 김민수

ⓒ 김민수
부추가 사람 몸에 어떻게 좋은지 찾아보니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부추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몸을 덥게 하는 보온효과가 있어 몸이 찬 사람에게 좋고,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하며, 피를 맑게 하여 허약체질 개선, 미용, 성인병 예방효과가 있으며, 부추의 열매는 비뇨기계 질환의 약재이며, 혈액정화, 강장, 강심제로 쓰이고, 음식물에 체해서 설사를 할 때 부추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효력이 있으며 산후통, 치질, 혈변, 치통, 변비 및 구토증의 치료와 개선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꽃에 관련된 글들을 정리하다 보면 그것들이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이래저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부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많은 꽃들이 우리 몸에 좋고, 병을 치료해 주는 약효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흔해서 우리가 천대시하는 그 들풀에 현대의학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들이 담겨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들풀 하나 하나가 귀하게만 보입니다.

ⓒ 김민수
지난 봄부터 작은 텃밭에는 부추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꽃을 볼 생각으로 아까워서 잘라먹지도 못했는데 줄기를 잘라먹으면 잘라먹을수록 더 넓은 이파리를 내는 부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는 줄기를 시원하게 죽죽 올리는가 싶더니 하얀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부추꽃밭에 나비들이 날고 하얀 꽃이 지고 씨앗이 익어 가는 시절이 되니 이젠 들판에서 보랏빛의 산부추와 한라산 고산지대의 한라부추가 바통을 이어받아 피어나니 부추꽃의 행렬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색깔은 달라도 그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하나겠지요?

▲ 한라부추-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부추로 산부추와 다르답니다.
ⓒ 김민수
제주도는 두 계절이 맞물려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부근에서는 가을냄새가 물씬 풍긴다면 중산간이나 해안가에는 여름이 막 지나고 가을준비가 한창입니다. 이미 중산간이나 해안가에 봄이 왔을 때에도 한라산은 겨울이기도 하죠.

중산간지역의 오름을 이틀 전에 올랐을 때에 산부추들은 막 꽃을 피울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한라산 1000이상의 고지에 오르니 완연한 가을인데다가 이미 한창일 때는 지난 듯 한라부추가 피어 있습니다.

가을꽃들이 피기 위해서는 단지 밤낮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밤낮의 길이만 바뀐다고 해서 가을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밤낮의 기온차도 있어야 하며 제법 한기가 돌아야 가을꽃들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여름철보다 길어진 밤, 추워진 밤은 '고난'이라는 상징인데 그 고난의 흔적들이 있어야만 꽃을 피우는 가을꽃들이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요?

ⓒ 김민수
사찰음식에 들어가지 않는 야채들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오신채(五辛菜)'라 합니다. 그것은 마늘, 파, 달래, 부추, 무릇을 가리키는데 음란한 마음과 화를 돋군다고 해서 금지하는 야채들입니다. 이 야채들의 특징은 '매운 맛'이 있고 이 야채들은 강장제로써 성(性)의 기능을 강화하기 때문에 수련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여 금지했다고 합니다.

오신채를 넣지 않은 절밥은 맛이 담백합니다. 어린 시절 초파일이면 개구쟁이들과 함께 동네에 있던 사찰로 몰려가서 절밥을 얻어먹기도 했는데 그 담백하던 맛은 마치 무밥을 먹는 것과 같았습니다.

ⓒ 김민수

▲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는 '나도 너같은 이파리를 갖고 싶어!'하는 듯합니다.
ⓒ 김민수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예사로이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건강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좋다고 하는 것, 맛나다고 하는 것을 두루 찾아 먹고 마시지만 과연 우리네 몸과 마음도 그만큼 좋아지고, 맛나졌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옛날에는 풍성하지 않았지만 손수 심어 가꾼 것들을 많이 먹었습니다. 자신들이 먹을 것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먹을 만한 것들을 생산해 내느라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먹을 만한 것인지는 뒤로하고 얼마나 때깔이 좋은 것, 값나가는 것을 생산해 내는가에 골몰하니 참된 농심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물론 이 책임은 소비자들에게 더 클 것입니다. 조금 못 생겼어도 몸에 모실 만한 것들을 모시고, 풍성하지 못해도 나눔의 식탁이 있는 그런 우리네 음식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 김민수
이제 가을빛이 완연합니다.
초록빛을 간직하고 있던 들판들이 이제 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계절로 달려가는 들판은 그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의 꿈틀거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에서 한라부추를 만난 날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 맞이하는 비라서 그런지 그 느낌이 각별했습니다. 똑같은 꽃이라도 어떤 곳에 피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느낌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서있는 곳.
그 곳에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나와 그 곳이 함께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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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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