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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옥재
지난 27일 밤, 담배 한 대 피우러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실에 들러 다섯시간 동안 이야기 하다가 들은 내용입니다. 이날 취재에 응했던 허환희씨(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2003년 총학생회장)는 다음날 조금 아팠답니다. 잠을 못 자서 말입니다. 같은 학생인데, 이들은 대학생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듯 느껴졌습니다.

아래는 이 날 만난 수배자들에게서 들은 '수배학생들의 습관'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자신 명의의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급적 급한 일이 있어도, 멀리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2. 인터넷 로그인을 하지 않는다. 물론 싸이월드도 모른다.
3. 지나가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을 때 빨리 걷는다.
4. 양복 바지, 스포츠 머리, 운동화를 신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든 사람(사복경찰)을 보면 긴장한다.
5. 사회병(대인기피증, 우울증)이 있지만, 진찰을 받으면 이상없다.
6. 휴대폰 할인제도 등을 몰라 가끔씩 영화관에 가면 정가 그대로 내고 본다.
7. 학교 쪽방에서 혼자서 잠을 청하기 힘들다.
8. 쫓기는 꿈을 많이 꾼다.
9. 밤에 이동할 때 모두가 감시자처럼 보인다.
10. 타인이 지나갈 때 고개를 숙이거나 돌린다.
11. 옷차림은 최대한 운동권이 아닌 것처럼 입는다(경찰이 수배학생들 찾으려면 옷차림이 평범한 학생들을 골라야 겠군요).
12. 친구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친구가 줄어든다.
13. 생일선물은 주로 생활용품(옷, 양말, 칫솔)을 받는다.
14. 가방에는 책보다는 옷이 더 많다.


수배학생들은 핸드폰을 쓰지 않고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인터넷에 본인 명의로 로그인을 하지 않는 답니다. 감청이 누적되어 한 순간에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환희씨의 경우 며칠 전 주간지를 돈주고 샀답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보려면 로그인을 해야하니, 감시당해서 잡힐까봐 3000원을 주고 사서 볼 수밖에요.

27일 오후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수배학생들이 잠깐 교문 밖으로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낯선 티코 한 대가 서 있었는데, 수배학생들이 몹시 긴장하는 눈치였습니다. 경찰의 감시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배학생들은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도 그들과 친분을 쌓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답니다.

25일자 <오마이뉴스>에 제가 쓴 "올해도 우리는 고향에 가지 못합니다" 기사가 나갔는데, 언론에서 다루듯 실제 수배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요. 그러나 이들의 자부심은 상당합니다. 우리 시대 마지막 양심수로서의 자부심 말입니다.

ⓒ 연세대총학생회
지난해 경찰이 일부 수배자들에게 불구속수사를 하겠다며 자진출두를 권한 적도 있지만, 지금 남은 수배학생들에게는 이런 기회조차 없었답니다. 때문에 이들 수배학생들아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형사들이 부모님을 회유하거나 설득해서 비인간적으로 동료를 체포할 때라고 합니다. 반면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는 자주, 민주,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운동의 선봉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라네요.

28일 11시 경에는 한총련 수배학생들이 차례를 지냈습니다. 추석이기도 했지만, 특히 이 날은 나진숙씨(2000년 건국대 총여회장, 2002년 총학생회장)의 어머님 기일이기도 합니다.

수배 5년차라는 나진숙씨. 국가보안법 폐지의 그날까지 '화이팅' 하셨으면 합니다. 연세대학교에서 농성하고 있는 수배학생들은 6명. 이들의 농성은 10월 2일까지 계속됩니다. 내년에는 이런 기사가 더 이상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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