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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는 서울의 허수아비였는지도 모른다. 참새떼에게 희롱당하는 그 허수아비 말이다
ⓒ 이종찬
허전했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마음 곳곳에 연탄구멍처럼 구멍이 숭숭숭 뚫리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모든 걸 내팽개치고 그만 살가운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고향에 가서 추석상에 올릴 대추도 따고 단감도 따고 밤도 따고, 예쁜 귀떡(송편)도 빚고 싶었다. 그 귀떡에 깔 솔잎을 따다가 까만 머루도 따먹고 싶었다.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떼지어 날아다니는 들판에 허수아비처럼 서서 후여후여 소리 지르며 참새떼를 쫓고 싶었다. 참새떼를 쫓다가 심심해지면 누우런 나락 포기 사이를 타닥타닥 튀어오르는 살진 메뚜기를 잡고 싶었다. 파아란 하늘을 조각배처럼 떠돌다 앞산가새에 닻을 내려 알밤을 토독토독 벌리고 있는 뭉게구름이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12시간 2부제(밤 8시부터 아침 8시까지)가 시작된 그 주 월요일 아침, 나는 아침밥을 대충 차려먹고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 내려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기슭으로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다. 희부옇게 낀 스모그를 뚫고 제법 따가운 아침햇살이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주르륵 흘러내리게 했다.

아직은 푸른 잎사귀를 매단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서울대 주변에는 직선제 개헌 쟁취와 권인숙 성고문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군부독재정권 물러가라' '성고문 담당형사 문귀동을 당장 구속하라'는 등등의 현수막과 대자보가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각설이처럼.

세상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한동안 식의주를 해결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동안 바깥 세상은 정말 재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갑자기 텅 빈 운동장에 나만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아니, 나만 홀로 감옥 같은 사출공장에 꽁꽁 묶어두고 저희들끼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혹여 고향의 흔적 같은 것, 아니 가을의 흔적 같은 것이라도 보일까 싶어 관악산 기슭에 갔던 나는 대학가를 수놓고 있는 현수막과 대자보란 쇠망치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만 같았다. 대학 담장 옆에 줄지어 선 '닭장차'를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쇠파이프를 든 전경들이 금세 내게 다가와 닭장차로 끌어갈 것만 같았다. '민주주의 수수방관죄'를 씌워.

그날 나는 대학가 주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사회과학서점에 들렀다가 실천문학사에서 막 나온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을 한 권 샀다. 그리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펴내는 팸플릿 형태의 기관지 <말>지와 시집 몇 권을 샀다. 사실 식의주도 몹시 중요했지만 식의주 때문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틈틈이 그 서점에 들렀다. 그리고 <말>지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꼴을 어느 정도 짚어낼 수가 있었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과 고은, 신경림, 김명수, 정희성, 양성우 등등 여러 민중시인들이 쓴 시들을 통해서 그 당시 문학판의 흐름을 조금씩 조금씩 엿 볼 수도 있었다.

"어이. 오늘부터 이 기계에서 일하도록 해."
"제품도면은요?"
"니깐 게 무얼 안다고 제품도면부터 보겠다는 거야? 작업반장인 나를 아주 우습게 본다 이 말이야?"
"제품도면을 봐야 어떤 게 불량품인지 가려낼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니는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 돼.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추석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을까. 거의 보름 정도 사출공장에서 이것 저것 잔심부름만 하고 있던 내게 작업반장이 갑자기 사출기 한 대를 맡겼다. 그 사출기는 공장에서 가장 낡고 오래된 기계였다. 그런 까닭에 툭, 하면 고장이 나는 것은 물론 제품 생산을 해도 거의 절반이 불량품이었다.

그 사출기를 작업반장이 내게 맡기자 공장 노동자들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나는 작업반장의 속셈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내게 폐품 같은 사출기를 맡겨 은근슬쩍 내 실력을 저울질해 보려는 작업반장의 못된 속셈이 정말 얄미웠다. 뺨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을 정도로.

"반장님이 까라면 까야지요. 하긴 불량품이 나오든 기계가 고장이 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그 새끼 그거 말 많네.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깐."
"뭐어? 새끼? 그 새끼 그거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주둥이가 시궁창이네. 작업반장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맞다 맞아, 우우우~ 우우우~"
"에라이~ *새끼! 죽어봐라."


그때 작업반장이 들고 있던 스패너(볼트나 너트를 죄거나 푸는 데 사용하는 공구)를 내 얼굴을 향해 거세게 집어던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사출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머리 위로 스패너가 휙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머리 끝이 쭈뼛 섰다. 스패너는 이내 공장 유리창을 와장창 부수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저 새끼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이단 옆차기로 작업반장의 면상을 후려 찼다. "어어~" 하던 작업반장은 그 자리에서 폭 고꾸라졌다. 작업반장의 코에서 검붉은 피가 출출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이어 그 소식을 들은 관리부장과 공장장까지 현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으으~"거리며 피를 출출 흘리고 있는 작업반장의 모가지를 발로 꾹 짓누르고 있었다. "앞으로 한번만 더 우리들을 괴롭히면 그땐 정말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다"며.

그날 나는 시말서를 썼다. 사실 그때 나는 시말서를 쓰지 않고 그대로 그 사출공장을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이 한사코 말렸다. 내가 그렇게 그만 두게 되면 스스로 작업반장에게 백기를 드는 것이며, 남아있는 자기들은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게다가 추석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잘했어! 그런 새끼는 짐승처럼 꼭 맞아봐야 아픈 줄을 안다니깐."
"정말 후련해. 십 년 묵은 체증이 저절로 쑤욱 내려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추석 때까지는 꾹 참으려고 했는데…그나저나 이번 추석에 저 혼자만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어 어떡하죠?"
"우리들 걱정 말고 고향에 잘 다녀와. 그 길로 함흥차사 되지 말고. 그리고 이건 우리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조그만 정성이네. 부모님께 갖다 드리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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