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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는 답답한 마음에 그냥 한숨만 포옥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갈 수 없는 길이었다면, 누군가 와서 나를 막아주었겠지?'

시간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성주님도, 우물 선녀님도 누구도 바리에게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백두산 산신님이나 진달래 언니가 어딘가에 서 있다가 바리의 길을 막고, 시간이 없으니 얼른 조왕신에게 가라고 꾸지람을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울이 시냇물이 되기까지 먼길을 가는 동안 아무도 바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물줄기가 제법 큰 시냇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말라버린 땅을 파헤치며 흘러가다보니 황토빛이 되기도 했지만, 시냇물은 햇빛을 받아 맑게 빛나며 졸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산들이 그 물을 머금으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따라 날씨가 아주 포근했습니다. 한겨울답지 않게 하늘도 화창하고 날씨도 따사로왔습니다. 그래서 앞의 산들도, 산 허리에 걸쳐있는 소나무 줄기도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저 멀리 시냇물 옆으로 키 큰 남자가 한 명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키 큰 남자는 허수아비인양 아무 움직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옷자락이 잘 보였습니다.

장대 위에 얼기설기 옷을 입힌 허수아비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점점 가까이 가자 그 옆에 앉아있는 큰 개도 보였습니다. 붉은 색을 띠고 있는, 송아지만큼 커보이는 그 개를 알아본 순간 바리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침을 삼키고는 백호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백호야, 저 사람… 호종단인 것 같아….”

백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앞을 향하여 걸어나갈 뿐이었습니다. 바리 역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백호의 등에 손을 얹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 몇 분을 더 걸었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좀처럼 가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허수아비인양 그냥 긴 옷을 휘날리며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윽고 백호도 그 자리에 뒷발을 모으고 앉았습니다. 바리도 그 자리에 발을 모으고 섰습니다.

그 키 큰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가 바로 바리로구나.”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 같았지만,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이미 잘 아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다정했습니다.

바리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예. 맞는데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바리는 물어보지 않아도,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만나러 찾아오는 것 맞지? 이렇게 새로운 물줄기가 갑자기 흐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분명 누군가가 새로운 샘물을 흘러내린 것이 틀림없고, 그것을 할 만한 사람은 너희 둘 밖에 없는 것 같구나. 맞지?”

그 키 큰 사람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자, 이 개는 수단이라고 한단다. 바로 내가 키우는 녀석이지.”

그 송아지만한 개는 비로소 그때서야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화염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호종단이 말했습니다.

“오호…. 안돼. 저 아가씨가 많이 놀란단 말이야. 너는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아니니까 낯선 사람을 본다고 그렇게 화를 내면 되나. 쯧쯧쯧.”

수단은 다시 다리를 모으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바리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아저씨 개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아요. 호랑이가 오더라도 절 해치진 못할 거에요.”

키 큰 사람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주 다부진 아가씨군 그래. 맞아, 지나다니는 곳마다 호랑이들이 지키고 서 있을 텐데, 그 많은 호랑이들을 제치고 이곳까지 온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군 그래. 그렇다면 나를 만나겠다고 이곳까지 온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 이 땅의 나무들이 다 죽어가고 있어요, 성주님이 기르시는 나무님들도 꽃님들고 아저씨가 이곳의 기운을 다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다 죽어가고 있단 말이에요. 다 아저씨 때문이에요, 얼른 이 곳의 기운을 다시 돌려보내주세요!"

키 큰 사람은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 나무님들 한 목숨 살리자고 그 기운을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다. 그러기엔 우리들은 너무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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