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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포스터
<아트> 포스터 ⓒ 악어컴퍼니
박수소리로 작품의 성공 여부를 따진다면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아트>는 올해 가장 성공한 연극으로 꼽힐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서 폭풍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박수는 배우들의 무대인사 때에는 거의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극은 성형외과 의사 수현(조희봉)이 구입한 '앙트로와'의 1억8천만 원짜리 그림을 두고 친구들 사이의 사소한 논쟁으로 시작된다. 극이 진행되면서 세 친구의 관계는 서로 약점을 들추며 20년 우정에 금가는 소리를 내는 아슬아슬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은 하얀 바탕에 하얀색 줄이 그어진 '앙트로와'의 그림에 규태(권해효)가 매직펜으로 그림을 덧그리면서 마술처럼 봉합된다.

<아트>는 프랑스의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을 연출을 맡은 황재헌이 우리 상황에 맞게 번안했다. 황재현은 원작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30대 후반의 대한민국 남자들의 모습을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대사로 충실히 재현했다.

무대는 간단하다. 액자가 걸려 있는 단색 벽과 장식 없는 소파가 전부다. 수현, 규태, 덕수의 집은 벽에 걸린 액자로 구별된다. 벽에 걸린 액자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오브제로 사용된다.

성형외과 의사인 수현의 집 벽에는 색과 형태가 과감히 생략된 '앙트로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사람의 용모를 아름답게 만드는 성형외과 의사라는 직업이 자연스레 수현의 민감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때문에 색, 형태, 원근법 등 미적 논리를 거부하고 있는 '앙트로와'의 그림에 수현은 열광하지만 수현의 이러한 미적 태도는 논리적이고 기계적인 규태와 충돌하게 된다.

기계공학 교수인 규태의 집에는 네덜란드풍의 풍경화가 걸려 있다. 논리와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규태에게는 원근법, 색, 형태 등이 축적되어 있는 풍경화가 제격이다. 그러기에 하얀 바탕에 하얀 선이 있는 그림을 1억8천만 원에 산 수현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가 그린 정물화를 벽에 걸어 놓은 문방구 주인 덕수는 아름다움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에 우선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며 극에서 가족이야기를 많이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렇듯 분명한 배우의 성격은 극을 무리 없이 끌고 가는 힘이다. 대립되는 성격의 인물과 그 관계를 조정하려는 인물의 구도는 어떤 외부 동력 없이 극을 원활히 끌고 가고 있다.

2003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아트>는 이번이 세번째 공연으로 두 팀으로 (화목토, 수금일) 나누어 공연하고 있다. 이는 긴 공연기간 동안 배우들의 체력을 보전하는 것 외에 각 팀간 비교와 경쟁을 하게 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에 상승작용을 한다.

이는 많은 대사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잘 짜인 앙상블과 객석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화목토에는 정보석(규태), 이남희(수현), 유연수(덕수)가 수금일에는 권해효(규태), 조희봉(수현), 이대연(덕수)이 연기하고 있다.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에 사소한 일로 서로 등지고 사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트>는 두꺼운 것 같지만 작은 실수에도 갈라지는 살얼음 같은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여럿이 만나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 중 서먹한 친구 한 둘은 꼭 있다. 이번 주에는 그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오랜만에 연극 한편 보기를 권한다. 서먹한 관계를 연극이 마술처럼 복원시켜 줄지도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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