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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홀아비섬에는 줄잡아 50여척의 낙지배들이 포구에 줄지어 서 있다. 그리고 선창이라는 깃발을 높이 올린 가게, 수협위판장, 해양경찰초소, 선박수리소 등이 있다.

봄과 가을 두 철에 낙지잡이로 생계를 꾸리는 사초리 어민들이 지난 봄철 이곳 수협에 위판한 수수료가 1억을 넘었다고 한 주민이 전해 준다. 그래서 수협에서 주민들에게 돼지도 잡고 술도 내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 홀애비섬에 정박해 놓은 사초리 어민의 낙지배
ⓒ 김준
강진에서 가장 큰 어촌 마을

사초리는 강진만 일대에서는 마량 다음으로 어업이 발달한 곳이다. 마량은 큰 배들이 많지만 주민들의 어업 참여로 본다면 사초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초리는 갯벌이 매립되기 전에만 해도 200가구가 넘었고, 지금도 170여가구에 이르는 큰 마을이다.

사초리는 간척 이전에 지주식 김발을 1980년 무렵까지 했다. 논에 건조대를 설치하고 손으로 김을 가공했다. 1980년대 말쯤에 김 공장이 생겼고 1990년 제방공사가 진행되면서 김 양식은 어려워졌다. 당시에 보상을 많이 해준다고 해서 주민들이 동의하여 사내지구 간척이 시작됐다.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180여 가구 대부분이 김 농사를 했지만 제방 공사 후 쇠퇴했고 일부는 마을을 떠났다. 간척 공사가 진행될 무렵은 김발 기계가 들어와 손으로 제조하던 김 가공도 자동으로 할 수 있어 양식 규모가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최근까지 사초리에서 공장을 하면서 양식을 하는 집 3곳, 공장을 하지 않고 양식을 하는 집 2곳 등 총 5집이 김 양식을 했다. 하지만 물발(조류)가 약해져 더 이상 김 양식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 논으로 변해 버린 황금갯벌
ⓒ 김준
1000여만원에 팔아 버린 황금밭

원(제방)을 막기 전 사초리 사람들은 일년 내내 바지락 밭에서 바지락을 캐고, 겨울철에는 석화밭에서 석화를 깔 수 있었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은 남자들끼리 두 명씩 어울려 목선을 이용해 낙지를 잡았다.

계절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천연 어장 바지락으로 일년에 7~800만 원은 족히 벌었고, 겨울철에는 굴만 까도 500만원 벌이는 됐다. 1980년대 말은 김 농사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지역에 간척 사업으로 보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초리도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사업 동의서에 도장을 꾹꾹 눌러주었는지 모른다.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은 바지락과 굴밭이 많은 사람은 1800만원, 적은 사람은 1200만원이었다. 사초리 사람들이 일년이면 갯가에서 벌어들이는 돈이었다.

▲ 사초리의 포구와 선창
ⓒ 김준
갯벌이 거래되던 시절

사초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은 간척되어 논으로 변해 버린 석화와 바지락 밭이다. 1980년대에는 600평 규모로 거래가 이루어질 정도로 갯벌은 이들에게 육지의 논과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새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면 부모로부터 바지락 밭을 일부 받거나 새로 바지락 밭을 구매해야만 마을에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형편이 닿지 않을 때는 직접 바지락 밭을 일구어 마련해야 했다. 사초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마을 주민에게서 1983년 600여평의 바지락 밭을 250만원에 사기도 했다. 바지락 밭에 비해서 석화 밭은 좀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석화 밭은 도암의 석문산에서 돌을 깨서 배에 싣고 와 갯벌에 넣어서 만들기 때문에 특별하게 들어가는 것 없이 만들어진 바지락 밭에 비해서 가격을 더 쳐 주었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 원지주로부터 양식장을 사야 했고, 자식이 분가해도 마찬가지로 양식장을 사야 바지락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천연 양식장이기 때문에 한 번 마련하면 천년 만년 할 수 있었다. 당시 바지락 밭은 많은 경우에는 1천평 정도지만 적은 경우에는 3~400평 정도였다. 사초리에 사는 박종빈(65)씨는 당시 갯벌 자랑을 늘어 놓는다.

"석화 양식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먹기도 하고, 석화가 많이씩 있으면 평당 솔찬히 주라고 했제. 1000평이면 1000만원은 받았제, 12년 전쯤. 근데 안 팔려고 해. 그것이 숱하거든(소득이 괜찮다).

그때 석화 한 되에 지금 돈으로 2만원, 석화는 물 많이 날 때 하는데 아침 물 있고, 저녁 물이 있고 그러니까 하루에 2번 나갈 때도 있어. 석화 밭, 바지락 밭, 꼬막 밭이 다 따로 있었제. 낙지는 어디가든지 개인이 맘대로 잡아. 호미로 파서 잡아. 어찌나 낙지가 많은지 바구니에 금방 하나씩 잡아가지고 오제."

▲ 강진만 갈매기(신전면 비래도 인근)
ⓒ 김준
▲ 건조 중인 낙지 통발
ⓒ 김준
제일 형편 없는 것이 농사,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어

현재 사초리 주민들은 마을 앞 간척지를 1500평씩 6년째 가경작하고 있다. 국토확장, 수자원개발, 농가소득증대, 육로개선 등을 목적으로 1990년에 착공된 '사내지구 간척농지 개발사업'은 1993년 준공됐다. 전남 강진군 신전면 사초리에서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로 이어지는 강진만에서 가장 큰 갯벌을 막아 논으로 만든 사업이었다.

첫해 경작을 할 때는 서너집만 한 반구(3천평) 농사를 지었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작을 원해 강진군에서 인근 9개 마을(내동, 용일, 송천, 용운, 신정, 송천, 신흥, 사초 등)의 가구 수를 기준으로 분배했다. 경작지는 마을에서 주비 추첨을 통해서 나누었다.

정부에서 수매가를 기준으로 50kg 나락 한 가마니에 7만5천원 정도. 1500평 농사를 지으면 잘되면 700만원, 보통 500만원 소득은 본다. 여기에 비료값, 농약값 제하고, 소작료 20~30만원 제하고 나면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을 앞 나무 그늘에서 만난 아주머니 이야기다.

"땅은 정부 땅이여, 마을 사람들이 벌고 있제. 호당 한 필지 1500평 나누어서. 군에다 일년 농사지으며 잘된 논은 30만원, 못 된 논은 20만원도 하고. 그때 몇몇이 김발 보상 많이 받아야 한다며 막자고 했지. 그때 00이 국회의원이었는디, 그 놈 죽인다고 데모하러 차 대절해서 서울도 가고, 군청도 가고 했지. 근데 김발 보상은 못 받고 석화, 바지락, 꼬막 보상만 받았어. 변호사 사고 돈을 걷어가지고 했지만…."

▲ 봄철 낙지잡이가 마무리되는 8월이면 통발을 씻어 보관한다
ⓒ 김준
▲ 통발을 정리하고 있는 여성
ⓒ 김준
낙지로 생계를 잇고 있다

사초리에서 낙지 통발을 하는 사람은 80여호로 통발어선은 100여척에 이른다. 홀아비섬에 마련된 어판장은 낙지만 위판하고 있다. 낙지를 잘 하는 사람은 봄철에 1천만원, 가을철에 1천만원 등 2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들어가는 돈이 나오는 돈보다 더 많은 농사에 비하면 사초리 주민들에게 아직도 바다는 황금 밭이다.

낙지 통발은 대체로 5일만에 물을 본다(통발을 건지는 것을 '물본다'라고 이야기 한다). 3m에 한 개씩, 한 줄에 40여개의 통발을 매단다. 낙지 통발은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면 조금과 사리 등 물때와 관계없이 할 수 있다.

통발 장소는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잇감으로 게가 이용되는데 겨울에는 1㎏에 7~8천원, 여름에는 4천원에 거래된다. 특히 살아 있는 싱싱한 게를 먹잇감으로 사용하여야 낙지가 많이 들어 온다.

봄철에 시작한 통발 낙지는 3~4개월 쉬었다가 10월부터는 낙지 주낙을 시작하여 12월 초까지 할 수 있다. 추워지면 낙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낙지 주낙도 할 수 없다. 당시 직접 낙지를 잡았다는 박종빈씨 이야기다.

"옛날에는 남자들만 노를 젓을 때는 둘이 어울려서 했는데 도암장, 강진장, 자일(북일)장에 나가서 팔아서 나누제. 소내기(속도가 빠른 작은 기계배)가 나오고, 기계배 나오니까 부부간에 하제. 며칠간 해서 한 300 벌면 술값 지아리고(계산하고) 둘이서 나누어. 지금은 매일 다녀. 한 사람이 통발은 많이 하면 1000개, 1500개를 넣제. 바람 불면 못하고, 날이 좋으면 오전 12시까지 다 봐. 새벽에 김밥 싸서 가지고 가서."

낙지 통발과 달리 낙지 주낙은 사리 때는 할 수 없다. 물이 시면 주낙이 뜨기 때문에 못한다. 낙지 주낙은 100m 정도의 로프에 칠게를 매달 수 있는 300~350개의 찌를 연결해 낙지를 잡는 것이다. 무릎에 닿을 정도로 바닷물이 빠졌을 때, 주낙줄을 물에 띄우면 낙지가 좋아하는 칠게를 매단 찌가 갯벌 위에 가라앉는다. 배를 상대(10m 정도의 대나무)로 가만히 밀면서 주낙 줄을 당기면 갯벌에 나와 먹이를 찾던 낙지들이 칠게를 감싸 안는다. 한번 감싸 안은 낙지는 어민들이 끌어 올릴 때까지 놓지 않기 때문에 잡을 수 있다.

주낙으로 낙지를 잘 잡으면 10뭇(1뭇에 10마리) 정도 잡는다. 통발로 잡는 경우에는 이보다 좀 덜해 8뭇 가량 잡는다. 주낙도 1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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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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