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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는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인 찰스 K. 암스트롱 교수가 펴낸 'THE NORTH KOREAN REVOLUTION 1945-1950(북한의 혁명 1945-1950)'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영국에서 구입한 이 책은 해방 후 한국 전쟁 직전까지의 북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고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 국가 핵심적 권력층을 형성한 만주지역 항일 좌파 운동가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남한 건국 정당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독립운동과 대립된 계열인데다가 분단전쟁 등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어, 만주지역 좌파들의 활동을 남한 사회의 제도권 교육 체제 아래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이 지역의 독립운동을 다룬 역사 서적들을 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분이면서도 이민족인 미국인보다 이 사실에 대해 더욱 무지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동시에 우리 역사이면서도 분단과 전쟁으로 남한 사회에서는 그 역사적 사실이 철저하게 묻혀 ‘반쪽짜리 역사관’을 갖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책장 위에 아른거렸다.

또 최근 동북공정과 관련해 거인 중국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상황도 떠올랐다. ‘반쪽짜리 역사관’은 비단 현대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남북한의 공동 대처 의식 부족은 우리 민족의 ‘조각난 역사관, 조각난 민족의 역량’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최근 일련의 반응들을 보면 중국 현지의 유물들을 답사하거나, 중국 연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고구려사 논쟁에 대한 태도를 짚어보는 것에 그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북한과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노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또다시 ‘찢겨져’거인 중국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두 손 두 발 다 동원해 싸워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외팔로 대항하고 있다.

고구려사 논쟁에서 조선족 제외시키고 북한과 ‘직거래’터야

최근 고구려사 논쟁에 대한 몇몇 보도들을 보면 조선족들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위험하며 중국 측을 더욱 자극해 자칫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기실 이 부분에 대해선 기자도 할 말이 없다. 기자는 지난해 상해 복단대학교의 조선족 교수인 박창근 교수를 인터뷰한 경험이 있다. 당시 동북공정이 국내에 막 소개될 즈음 기자는 '국적이라는 조건과 민족이라는 조건이 겹치는' 박 교수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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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논쟁, 감정적으로 풀어선 안돼"


당시 박 교수는 상당히 곤란해 하며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당시 박 교수의 논지를 집약해 보면 "고구려사 논쟁은 학술적 문제이지 정치적 문제로 풀어서는 안 된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 교수의 이런 ‘미지근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과 조선족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 일종의 ‘대리 만족’은 아니었을까 싶다.

고구려의 주무대였던 북측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이 고구려사 연구에 대해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한 공조를 그 논의조차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사 문제를 다룰 때 우리에게 항상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은 바로 북한과의 공조 부족이다. 남북이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또는 위안의 대상으로 북한 대신 중국의 조선족을 끼워 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조선족은 이 문제에 있어 언제까지나 ‘북한의 대타’일 뿐 결코 궁극적인 협력 대상이 될 수 없다. 국적상 그들은 결국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연변지역을 비롯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고구려사가 어느 나라의 것이냐?’라는 질문 또한 참으로 잔인한 질문이다. 중국의 국적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그래도 같은 핏줄이니 우리 편을 들어주겠지’라는 기대 심리로 자꾸 그런 질문들을 들이댄다면 이들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중국인이기에 직접적으로 조선족들에게 힘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분명 한국이 아닌 중국이다. 따라서 고구려사 문제에 있어 조선족은 그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협력의 대상을 잘못 찾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손을 잡아야 할 대상은 조선족이 아닌 ‘북한’이다. 비록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건국 과정의 정당성을 각기 따로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북한과 남한은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여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사 논쟁에 있어 남북한의 협력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고구려사를 중국으로부터 무사히 구출시켜낸 뒤라 할지라도 남북한의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고구려사 논쟁에 있어 우리의 파트너는 분명 북한이다. 현대사를 거치며 갈라진 각자의 정당성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고구려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남북한이 서로 ‘직거래’를 틀수는 없는지 이 시기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의 ‘허약한 주체성’ 준엄하게 꾸짖을 수도 있어야

하지만 북한과의 공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북한이 점차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서 북한 경제의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탓인지, 북한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을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시킬 수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이다. 북한은 스스로를 ‘주체적 국가’라 칭하면서 항상 미국의 그늘에 놓여 있다는 이유로 남한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주체’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아온 북한이 정작 중국과의 관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분명 자기모순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된다.

만약 북한이 앞으로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계속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의 ‘허약한 주체성’을 과감히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북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에 넘겨주게 된다면 우리 민족 역사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된다. 또한 고구려사를 시작으로 여타의 역사적 주체성까지 유실당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남한과 북한은 서로간의 국가 정당성에 관한 논쟁은 잠시 접고 적극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이번 위기는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다. 이러한 커다란 위기 앞에 남과 북이 갈라져 분산된 힘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민족의 생명이 끊기는 비운을 맞을 지도 모른다.

채 백년도 되지 않는 짧은 현대사의 경험 때문에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의 역사를 말살시켜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이 함께 손을 '직접' 맞잡을 수는 없는 것인지 보다 큰 틀 안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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