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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교실에 온 아이들
방과후 교실에 온 아이들 ⓒ 고기복
남양주이주노동자여성센터로부터 골치 아픈 문제로 변호사 도움이 필요하니 꼭 방문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에 파견 근무 중인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와 법률 봉사 중이던 두 명의 사법연수생과 함께 지난 8월 초 그곳을 찾았다.

여름 휴가를 마치고 바로 복귀한 뒤라 사무실 업무가 밀려 오전에 방문을 끝내고 돌아올 요량으로 오전에 서둘러 출발했다. 하지만 중간에 길을 잃어 점심 시간이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인 여성센터가 위치해 있는 성생공단 바로 앞까지 와서도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다. 결국 센터 대표인 정숙자 목사가 직접 마중을 나와서야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정숙자 목사는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을 위해 오랫동안 일을 한 사람으로 '정신대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맡는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회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다. 이미 백발이 다 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센터는 성생공단 안에서도 길이 비좁은 골목 안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 3층에 세 들고 있었다. 간판도 없이 건물 벽면에 '남양주 이주노동자 여성센터'라는 낡은 현수막이 안내를 대신하고 있었다.

밖에서 봐서는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기보다는 영세 제조업체 공장이 들어 있거나 폐건물처럼 보였다. 센터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오래된 건물 특유의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에다 계단 곳곳이 패여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가 이런 건물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센터가 들어 서 있는 3층에 도착하면서 방문객들은 대개 두 번 놀란다고 하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선 센터에서 일하는 실무자와 센터 구성원 때문에 놀라고, 다음으로 공간 때문에 놀란다.

'여성센터'라는 이름은 실무자들이나 센터 구성원들이 여성들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자 실무자도 있고 센터를 정기적으로 찾는 구성원들 역시 남성들이 상당수라는 점을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은 상담을 위한 사무실과 예배 장소, 공부방 등이 외부와 달리 넓고 깨끗이 정돈돼 있어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센터 내부는 '방과후 교실'과 야학을 위한 컴퓨터방, 취사를 할 수 있는 주방 시설과 유아들이 쉴 수 있도록 아담한 침대가 마련된 방들이 갖춰져 있어서 함께 갔던 사람들이 밖에서 볼 때와는 '천지 차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방과후 교실 지도하는 실무자와 아이들
방과후 교실 지도하는 실무자와 아이들 ⓒ 고기복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금년 6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방과후 교실'은 부모가 모두 일터로 나가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컴퓨터와 우리말·글을 배워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지 얼마 안 돼 변호사 도움이 필요하다는 카메룬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센터를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가정도 꾸리고 얼마간의 경제적 기반도 마련되어 귀국을 준비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귀국에 앞서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썼던 가전제품들과 자신의 조국에서 팔아 돈이 될 법한 중고 컴퓨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컨테이너에 넣고 화물을 보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카메룬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운송 비용 외에 여러 명목으로 사장에게 빌려 준 돈과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센터의 도움을 얻어 노동부에 진정하기도 했고,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여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회사의 사장은 이미 해외로 출국한 상태로 달리 문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컨테이너를 보낸 화물회사를 통해 컨테이너를 돌려 받는 방법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 외에, 현실적으로 해외로 도망간 사장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함께 갔던 변호사와 사법연수생들의 판단이었다.

큰 기대를 했을 카메룬 이주노동자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일행에게 센터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 줬다. 점심을 들며 센터 프로그램을 소개 받았다. '남양주이주노동자 여성센터'가 일반적인 외국인이주노동자 지원센터와 다른 점은 성차별적인 관행이나 제도를 거부하고 억압받고 약한 자, 차별당하는 자와 함께 하고자 설립된 이념에서부터 잘 드러나고 있다.

남양주이주노동자 여성센터는 지난 1997년 봄, 한국교회 내의 평등공동체 창조를 꿈꾸며, 1989년에 설립되었던 여성교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센터는 설립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 초기부터 야학을 통해,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영적·지적 성장과 한국 생활을 돕기 위한 한글학교, 컴퓨터, 악기, 성서 연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식사를 마칠 때쯤 보건소에 갔다 왔다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실무자가 체구가 작고 말라 보이는 한 아이를 안고 왔다. 낯선 사람에겐 절대 가지 않는다는 아기가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안기자, 센터 사람들이 "애가 사람을 차별한다. 다른 사람에겐 가지 않더니만..."하며 보건소에 갔다 온 일을 얘기했다.

말이 잘 안 통해서 센터 실무자가 동행했는데, 애 엄마가 주사를 무서워해서 진료를 받는 데 애를 먹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애 엄마도 일 때문인지 금방 아기를 두고 자리를 떴다. 아기는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탁아방에서 엄마가 일하는 동안 놀 것이라고 했다.

탁아방에서 노는 아이들
탁아방에서 노는 아이들 ⓒ 고기복
여성이주노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번의 차별을 겪는다고 한다. 일단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겪고, 그 다음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을 겪고, 마지막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겪는다고 한다. 이러한 이중 삼중의 차별을 시정하고자, 남양주이주노동자 여성 센터는 '이주노동자 성의식 전환을 위한 교육'을 올 초부터 해 오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정숙자 목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여성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중의 차별을 넘기 위한 시도가 녹록치만은 않았다며, 돌아서는 우리들에게 센터를 소개하는 리플릿 한 장씩을 건네주었다. 리플릿에 굵은 글씨로 "이주노동자는 우리의 이웃입니다"라고 쓰여진 글귀가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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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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