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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세계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지만 특히,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은 국제사회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포화를 받고 있다.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이 추가로 테러국가로 지정되어 경제제재 조치를 받는 등 국제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여 가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은 국제사회의 자발적인 합의로 이루어진 결과라기보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이들 이슬람국가들을 '불량국가'로 지정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별다른 이견 없이 일부 이슬람국가들을 위험한 나라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특정 국가에 의해 주도된, 다분히 조작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의문을 거둘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이슬람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9·11 테러의 여파 때문이다. 그동안 미온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섭게 변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제적 지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대적인 무력이 이슬람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우 오사마 빈 라덴의 검거라는 대의적 명분 이면에 이슬람에 대한 압력 행사라는 실의가 숨어있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은 집중의 수준만이 다를 뿐, 총체적 골격으로 미루어 '십자군 전쟁'과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혹자는 이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두고 '제2의 십자군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연 이슬람이 이처럼 가혹한 대접을 받아야 할 만큼 위험한 대상일까? 이쯤에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정보가 많지 않다. 국내에서 이슬람 문화를 접하기란 쉽지 않을 일일뿐더러, 유럽이나 미주라면 모를까 이슬람 국가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조차 주변에서 그다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동안 제공되었던 이슬람 관련 정보들은, 이슬람 세계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유대인과 미국 중심의 언론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정보들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슬람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고 판단되는 책들을 통해 이슬람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 이슬람
ⓒ yes24
<이슬람>(청아출판사)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선입견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출발한다. 일부 급진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자행하는 테러가 이슬람 사회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 테러는 과격분자들의 자의적인 행동일 뿐, 이슬람 전체가 테러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이슬람 과격분자들은 모든 이슬람 인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과격한 행동이 국제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들어 다수의 이슬람 사람들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이슬람, 아랍, 중동 등의 개념이 혼동되고 있는 점도 지적하며, 이러한 상식의 오류를 풀기 위해 이슬람의 다양한 문화를 항목별로 자세히 설명한다.

이슬람의 사회, 경제, 종교 등을 비롯해 이슬람 사람들의 생활상과 이슬람이 배출한 세계적 문화 아이템 등 이슬람의 전반에 걸친 부문별 화두들을 세세하게 접할 수 있다. 편안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어 이슬람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데 효과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슬람은 지역이나 종교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명'으로 존재해 왔다. 이슬람은 같은 종교를 공유하고 있는 단순한 종교집합체라기보다는 동일한 사상과 문화 체계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문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지만 세계 140여 국에 걸쳐 13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범세계적 공동체가 바로 이슬람이다.

▲ 이슬람 문명
ⓒ yes24
<이슬람문명>(창비)은 이슬람을 문명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오해하고 왜곡 당하는, 심지어 능멸하기까지 하는 종교가 이슬람교라고 말한다. 이슬람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면면을 총체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이슬람 고유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해 관련 사항들에 접근해 나가는 문화 상대론적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 역시 이슬람의 다양한 국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앞서 소개한 책 <이슬람>이 무난한 문체를 이용해 전방위적 서술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 역시 전방위적 관점을 취하면서도 좀 더 체계적으로 이슬람을 풀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한국과 이슬람과의 역사적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이슬람의 전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시공사)는 이슬람의 역사를 다룬다. 이슬람교는 600여 년경 무함마드라는 무역상이 알라신의 사자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으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고향이자 거주지이기도 한 메카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지만 대부분이 다신교도였던 메카인들은 오히려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을 박해한다.

이에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야스리브(현재의 메디나)로 이주하기에 이르고 이것이 이슬람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이슬람의 태동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고 있다.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 yes24
이슬람 이전의 중동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제1부 '이슬람 역사의 발자취'에서는 이슬람의 발흥과 팽창사(膨脹史)를 거쳐 현재까지가 기술된다. 제2부 '이슬람 문명의 정수를 찾아서'에서는 이슬람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예술을 소재로 하여 이슬람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들은 이슬람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대부분 새로운 정보들이다. 주요 인물 및 소재들을 별도로 언급하고 있고 다양한 도판자료들도 제공되고 있어 이슬람을 보다 살갑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화두가 된다. 이슬람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는 일부다처제, 히잡 그리고 여성할례 등은 아직까지도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여성문제를 중심으로 그 사회의 진보성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이슬람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척도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슬람사회의 여성>(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은 이슬람 사회의 여성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슬람의 학자들은 자기 문화의 옹호가 관성화되어 있어 객관적인 시각을 놓치기도 한다. 서구적 관점을 표방하는 학자들은 중동의 특수한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채 이슬람 여성의 지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이슬람과 서구 관점의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이슬람 문명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일부에서 결론의 도출을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주요 이슬람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성문제의 현실을 제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제시하는 내용들을 화두로 삼아 여성문제에 관한 논의를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 20세기 중동을 움직인 50인
ⓒ 리더스가이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로 얽혀 있는 국제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주제의 흐름을 차분히 따라가고 있는 도중에 등장인물이라도 혼동되기 시작하면 어렵사리 정리해두었던 내용들이 일순간에 와해되기도 한다.

특히 이슬람 혹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비슷한 이름들이 많은데다가 이름이 가지는 어감도 생소해 그다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20세기 중동을 움직인 50인>(가람기획)은 이러한 어려움을 말끔히 씻어주는 책이다.

그 유명한 사담 후세인조차 걸프전이나 이라크전과 관련된 그의 행적이나 배경 상황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후세인을 비롯해 아랍 통합의 영웅으로 널리 추앙받고 있는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팔레스타인해방기구(약칭 PLO) 의장 아라파트, 이란의 이슬람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슬람 출신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는 생소하지만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와 종교 부문에서 활동을 펼쳤던 인물들까지, 이슬람 출신의 다양한 인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 칼릴 지브란 등 문학, 예술 분야의 주요 인물들도 다루고 있다. 각 인물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소개한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그동안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보 부족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순박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느 공간이든 선과 악이 교차하고, 선인과 악인이 혼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더라도 호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만큼 그들은 대체로 인정이 많고 친절하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테러의 조짐을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슬람에 대한 불편함과 이질감은 선입견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

이슬람 사람들의 선한 태도는 종교적 이유에서 기인한다. 이들의 종교관은 성선설을 주창한다. 이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서 원죄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독교의 성악설이나, 번갯불처럼 잠깐인 이 고통스러운 인생살이를 빨리 마무리하고 무고경계(無苦境界)인 열반(涅槃)으로 가야한다는 불교의 고행설과는 다른 부분이다.

인간은 순수 결백하게 태어났으며 오래 살수록 좋은 일을 더욱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니 죽음을 원하지 말고 오래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것이 이슬람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인지 이슬람교도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되기도 한다.

어떤 종교든 나름의 선한 가르침이 있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신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슬람 역시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슬람은 그동안 테러의 온상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불평등한 대접에 성난 목소리를 낸 것일 뿐이다.

그들 역시 다른 국가나 민족들과 다를 바 없다. 더불어 일부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격렬한 태도가 이슬람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이미지를 왜곡시켜 왔다는 점도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는 테러는 응당 제지되어야 하겠지만, 그 책임을 테러리스트에게 묻지 않고 이슬람 전체에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해 낼 수도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며 이번 기회에 이슬람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도록 하자.

이슬람문명

정수일 지음, 창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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