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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해거름, 동네 아주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박철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제군은 내게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철학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다만 흉내 내기 위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유(思惟)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그리스도가 한번은 인간의 삶에 대한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하셨을 때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다. 백합화 한 송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그게 별것이 아닐지 모르나, 그것을 놓고·생각해 보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 값진 것을 찾아 낼 수 있다. 거기에 자연과학도 생물학도 예술도 문학도 시(詩)도 사상도 종교도 인생의 진미도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그가 과학자도 되고 발명가도 되며, 문인도 시인도, 그리고 겸비한 신앙인도 용감한 봉사자도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앙리 파브르는 곤충의 세계를 살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한 끝에 위대한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 박철
어느 스페인 사람은 자기 국민성의 약점을 말하느라고 이런 표현을 했다.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하고 프랑스인은 생각하고 나서 뛴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은 뛰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리는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보니 쓴 웃음이 나온다.

한 미국인은 자기네 문화와 그 장래를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 "미국이 껌을 사서 씹는 것보다 책을 사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으면 미국은 결코 문명한 국가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책으로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껌으로 인생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들의 지나친 낙천주의가 인생을 부피의 세계에 머물러 있게 할 뿐, 깊이 있는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는 그 천박성을 염려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보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고, 우리의 문화 현상을 보고 그것들이 대체로 너무 감각적이요, 피상적이요, 즉흥적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깊이 있는 문제 의식을 안고 고민한다거나 투쟁한다거나 안타까워하는 일이 너무도 빈곤하지 않나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제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과 전화 통화를 했다. 요즘 출판 경기가 최악이라고 한다. 아예 책을 만들지 않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책을 선물로 주고받았는데 요즘은 책을 선물로 주고 받는 젊은이는 극히 드물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이들의 진학 경향이 주로 간판 따기, 출세하기, 그리고 안이한 성공이나 소시민적인 행복을 얻으려는 요령 찾기 따위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실력을 기른다, 품성을 도야한다, 인격을 함양한다 하는 면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만이 나타나지 않는가 싶다.

▲ 논두렁에 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 박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아도 신앙 문제니 인생 문제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대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문제 의식이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 인생은 늘 술에 술 탄 맛, 물에 물 탄 맛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문제 해결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알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문제 해결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깊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성급하게 익어 버린 과실은 제대로 맛이 들지 않는 법이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의 문제 의식을 거쳐서 비로소 내용이 충실한 인생의 열매가 익을 수 있고 알찬 문화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요 정신의 소모,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착잡하고 혼란한 세계를 해치고 그 밑에 흐르는 영원한 ‘참’에 접하려는 탐구요 창의요 수도적 노력이다. 사색이 빈곤한 사람에겐 화제가 없다. 저급한 농담이나 고집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값진 인생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처서(處暑)를 며칠 앞두고 이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하늘은 무한히 푸른빛으로 깊어지고 싱그러운 황금빛, 투명한 햇살 속에 산하(山河)의 얼굴은 씻은 듯 새롭다. 시인 김현승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색의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에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사색하자.

▲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코스모스는 가을의 전령과 같다.
ⓒ 박철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정채봉 詩.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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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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