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경의 ‘천단공원’은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찾아 기년전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꼭 남기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유명한 장소다.

천단공원은 기년전(祈年殿)과 회음벽(回音壁), 원구(園丘)가 상당히 넓은 면적에 일직선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그 규모만으로도 하늘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인 만큼 신성한 곳이다.

우리 나라에는 ‘원구단’이 있다

▲ 위폐를 모셨던 황궁우의 정면 야경 _ 웨스틴조선호텔쪽에서 바라본 모습
ⓒ 이인우
먼 옛날 중국의 그늘에 가려 쉽게 세우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원구단이 남아 있다. 그 원구단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서울 시청앞 지하철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잔디광장에서는 교통방송에서 주최하는 인기가수들의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콘서트장의 음악소리를 뒤로하고 원구단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입구에 ‘원구단 시민공원’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 시청앞 프레지던트 호텔 옆에 있는 '원구단시민공원' 입구 안내판
ⓒ 이인우
그 동안 사진에서만 봤던 원구단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음에도 지금껏 한 번도 직접 내 눈에 담아보지 못했던 곳이다. 지난번 중국여행을 하면서 꼭 한 번 우리 원구단을 방문해 보리라 다짐했던 것을 이제야 실천하게 된 것이다.

원구단의 대략적인 위치가 웨스틴조선 호텔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원구단시민공원'의 안내표석을 따라 공원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어디로 가야 원구단이 있는지 몰라 당황했다. 결국 안내 표시가 없는 계단을 올라갔는데 오히려 다행이었다.

계단을 오르니 원구단의 석고(石鼓)가 보였다. 사실 원구단은 주변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있어, 사방이 빌딩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원구단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안내 표지판이 필요하다.

▲ 황궁우의 측면 야경 _ 오른쪽 뒤로 보이는 건물이 롯데호텔이다
ⓒ 이인우
예나 지금이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자(天子)라고 불리는 중국의 황제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임금들이 제후(諸侯)라 불리던 시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다가 광해군이 원구단을 세우기도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후 공식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 조선의 임금이 왕이 아닌 황제가 되면서 원구단이 세워지고 본격적인 제사가 거행된 것이다.

▲ 황궁우 주위의 난간에 세워진 돌 사자상
ⓒ 이인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원구단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원구단이 아닌 원구단 옆에 세워졌던 황궁우뿐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다. 원구단은 일제시대 우리가 암울한 시절을 보내는 동안 일본인들이 철거해 없애버렸는데 바로 자신들의 천황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훗날 다시 원구단이 세워질 것을 우려한 일본은 그 자리에 총독부의 철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을 지었다.

현재 원구단은 사적 제 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구단은 없지만 위폐를 모셨던 황궁우와 3개의 석고(石鼓)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석고(石鼓) _ 고종의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 이인우

▲ 석고(石鼓)의 테두리에 조각된 미려한 용무늬
ⓒ 이인우
석고는 광무(光武)6년(1902)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로 3개의 돌 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 한 것이다.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 용무늬는 조선조 말기의 조각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로서 당시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원구단의 석고와 황궁우는 비교적 깨끗하고 잘 정돈된 주변 환경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무성한 나무와 정돈된 잔디로 꾸며진 원구단에는 조명시설까지도 그 어느 문화재 시설보다 정성스럽게 보호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웨스틴조선호텔과 프레지던트 호텔 또 롯데호텔의 객실에서 이곳이 바로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주변의 호텔과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바로 맞아 떨어져 정성스럽게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은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돌았다. 실제로 웨스틴조선호텔의 1층 레스토랑은 원구단의 입구 쪽으로 커다란 유리창을 내고 그것을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 웨스틴조선호텔 1층 레스토랑쪽에서 바라본 황궁우
ⓒ 이인우

▲ 황궁우 입구쪽으로 들어가는 방향에 마련된 작은 문 _ 경건하게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 이인우
이유야 어떻든 우리 문화재를 정성스럽게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은 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다른 문화재들도 이 같이 보호, 관리 되기를 기대해 본다.

8월 15일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찾아본 시청앞 원구단은 지난 7월 중국에서 보았던 '천단공원'의 그것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초라한 규모였다.

그나마 위폐를 모신 황궁우와 고종의 황제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는 돌 북 3개가 전부인 원구단이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위로 받을 수 있을 뿐.

서울 시청앞 잔디광장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그곳으로부터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원구단’을 찾아 우리의 역사적 숨결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