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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메기를 마치고 마을학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 장선애
농촌은 적막하다. 무리지어 다니며 온 동네를 휘젓던 아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다 홀로 마을길을 터덜터덜 걸어 학교를 오가는 아이를 만날 수는 있지만 그 옛날 온 마을이 떠들썩하게 울리던 건강한 웃음소리는 추억이 되고 전설이 돼버렸다. 교실이 미어터지던 학교에 아이들이 줄다 못해 끝내 폐교가 되고 있다.

덕산면 둔리에 들어서면서 기분이 좋아진 까닭은 아이들 때문이다. 동네 개울에서 가재를 잡던 남자아이 셋은 낯선 방문객의 질문에 자연스레 답을 하고는 이내 자신들의 놀이에 열중한다.

축산과 논농사가 주를 이루는 이 마을은 젊은이들이 비교적 많다. 그리고 농촌에서 보기 드물게 주택가 골목길이 있다. 그만큼 세대수가 많다는 얘기다. 초등학생이 무려 19명. 이 아이들은 그 옛날처럼 동네 형 아우가 함께 어울려 저녁 늦게까지 뭉쳐 다닌다. 그리고 올해 초 '둔지미 마을학교'를 열었다.

교사는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

▲ 둔지미마을학교 아이들이 메고있는 고구마밭에서는 가야산과 용봉산, 수암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장선애
이 곳에서 아이들은 일본어와 한자와 풍물을 배우고 등산을 하며 농사를 짓기도 한다. 학교이름부터 수업시간, 활동계획까지 아이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로 이뤄진 마을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도울 뿐이다. 마을학교 프로그램만 보자면 무슨 특별과외인가 싶지만 교육계획에 따랐다기보다는 이 마을에 있는 인적자원을 활용하면서 자연스레 이뤄진 것이다.

일본인으로 이 마을 청년과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오가와 데루요씨가 진행하는 일본어 강좌는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시간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1년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정해경씨는 한자와 마을학교 전체 운영을 맡고 있다. 매헌풍물패 회원으로 활동했던 김의태, 맹주호씨는 아이들에게 사물놀이를 전수한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결혼을 했고 또 내 아이들을 이곳에서 키운다"는 윤성수씨는 마을학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아이들의 등산시간을 맡는다. 윤씨가 어릴적 뛰놀던 마을산에 먼 동네 후배격인 아이들과 함께 처음 다녀온 뒤 자연스럽게 '생물 선생님'이란 별칭을 얻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풀이름, 나무이름, 마을산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척척 알려줬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땀흘리며 배우는 것

▲ "야, 인삼이다." 잔뜩 커버린 풀 뿌리를 뽑아든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 장선애
기자가 찾아간 날, 아이들은 동네 아저씨로부터 무상으로 얻은 밭의 김매기를 하고 있었다. 장마가 지나 무성하게 자란 잡초 때문에 두 달여전에 심은 고구마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인 밭의 풀을 뽑느라 분주했다.

"어, 고구마는 어디가고 풀만 있네."
"야, 니네 고랑이 짱 심하다."
떠들썩한 아이소리 사이로 밭주인인 김주윤씨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이놈들아, 자주 와 봐야지. 심어만 놓고 관심을 안 가지니 그렇지. 엄마 아빠 농사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겠냐."

그런데 김씨의 목소리에는 책망보다는 대견함이 잔뜩 묻어있다. 예전에야 조무래기 손으로도 농사일을 도왔지만 요즘 농촌 아이들 가운데 제대로 밭을 맬 줄 아는 아이들은 찾기 어렵다. 부모들이 일을 시키지 않는데다 아이들도 굳이 힘든 일을 나서 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준비한 호미를 일찌감치 던져버리고 맨손으로 풀을 잡아당기며 마냥 신이 났다. 얼굴에 굵은 땀방울과 흙먼지가 뒤범벅되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이 곳에 심은 종자값도 아이들이 충의사 관광객을 대상으로 즉석 거리풍물공연을 펼친후 모금을 통해 얻은 돈 14만원으로 마련한 것이다.

잠시 쉬는 참에는 못생겼지만 잘 익은 토마토 하나씩 따서 베어문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는 땀의 서늘함을 느끼며 먹는 토마토 맛이 그만이다.

아이들은 고구마를 수확하면 덕산장에 내다팔기로 계획을 짜놓았다. 자신들이 직접 들고 나가 장사를 해보겠다면서. 이 어린 농부들이 키운 고구마는 머잖아 '둔지미 작목반'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집으로 팔려나갈 것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아이들은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을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자 “밭매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한 번만 풀약을 하자”는 어른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작업반장인 김덕주(시량초 4)군은 “농약 하면 안하는 것보다 영양이 적대요. 풀이 많아 귀찮아도 제초제는 안돼요”라고 다부지게 말한다.

풀만 무성하던 밭고랑이 어느 만큼 꼴을 드러내면서 어린 농부들도 꾀가 나는 표정이다. 풀뿌리를 치켜들며 “심봤다”느니 풀가발을 만든다느니 장난이 는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돌아오는 길, 오늘 저녁 찬거리가 될 호박과 오이를 하나씩 따서 들고 마을학교가 있는 동네회관으로 향한다.

마을학교가 열리는 날에는 일찌감치 나와 친구들을 기다리고 일정이 끝나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회관 마당에서 한없이 논다는 아이들이 이날은 어쩐 일로 순순히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기차를 타고 서울나들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이야 안가본 사람이 없지만 마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고궁나들이와 지하철 타기 같은 현장학습에 아이들은 한 껏 들떠 있었다.

마을공동체가 만드는 교육

이 곳 아이들이라고 사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한민국 어딜가나 만연해 있는 사교육. 이 마을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면 예능학원이나 보습학원 혹은 학습지를 하느라 바쁘다. 물론 학원을 전혀 안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낮시간에 학원에 가는 친구들에 맞춰 학기 중에는 마을학교가 밤시간에 주로 이뤄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간이 흐를 수록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

"늘 함께 노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니 재미있다”는 자녀들의 얘기에 부모들이 하나 둘 보내던 학원을 ‘끊기’때문이다. 모두가 거창하게 교육의 문제를 생각하고 대안을 세우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둔지미 마을학교는 어느새 교육에 대한 대안을 세워가는 중이다.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 그 속에서 아이들의 정서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미래의 희망이 커가고 있다.

그 과정에 마을 구성원간에 서로 다른 요구와 갈등의 조정이라는 힘든 시간이 왜 없을까마는 아이들이 있는 농촌이기에 이 마을의 미래는 밝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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