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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월급 지원 요구 시위를 벌이는 Y여고 교사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월급 지원 요구 시위를 벌이는 Y여고 교사들
지난 2003년 학생 퇴학과 교사 파면으로 진통을 겪었던 Y여고 교사들이 이번에는 교육청 앞에서 색다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7월 25일 교사로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2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임금투쟁 선포식을 개최하고 매일 뙤약볕 밑에서 '월급을 달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7월 30일 오후 4시, 25명의 Y여고 교사들은 "차별없는 지원만이 공교육이 살길이다", "인건비 지원거부 우리가정 책임져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대표를 맡고있는 이 학교 교총 분회장 강모(37. 화학) 교사는 "작년 11월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학교 공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일단 교사들 인건비로 지급했다, 그런데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게 된 이제 와서 교육청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며 "대한민국 교사가 월급 못 받아 이런 시위를 해서야 되겠나"라며 교육청에 항의했다.

교사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 등록금 모아 학교 건물 지어 논란 일어

Y여고는 1987년 개교 이후 교육청의 국고보조금을 거부하고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해왔다.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이 교육청의 보조금으로 교직원들 임금을 지급해오고 있는데, Y여고는 학생 등록금만으로 교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도 매년 1~2억원씩 남겨 2001년까지 22억원의 돈을 모았다.

지난 해 Y여고에서 열악한 학습 환경을 둘러싸고 극심한 분쟁이 일어난 것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 모두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제대로 써야할 데 쓰지 않고 절약(?)해 따로 모아두었다가 엉뚱한 데 사용한 결과였다.

그런 Y여고가 지난 해에는 학교 운동장 건너편에 4층짜리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고 교육청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고 공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공사비의 재원이었다. 교육청에 보고할 때는 '학교 자체 재원'이라고 보고해 놓고 그동안 모아놓은 등록금 16억 3천만원을 공사비로 책정한 것이다. 당시 이 공사비는 모아놓은 등록금 22억 중 그 사이 분반으로 갑자기 늘어난 교직원들의 임금 등에 사용하고 남은 돈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에는 교육청의 지시에 의해 학교 건물 공사비로 모아놓은 돈으로 교사들 인건비를 지급하다가 그것마저도 바닥이 나자 3일간 임금을 체불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Y여고는 급기야 개교 이후 처음으로 교육청에 국고보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교에 돈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국고보조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렇지만 이때는 22억원도, 공사비도 모두 바닥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나서 공사는 중단되고 임금도 지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립학교 관련 법 규정에는

사립학교법 제5조에서 학교법인은 그 설치·경영하는 사립학교에 필요한 시설·설비와 당해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이하 규칙) 제21조에서는 법인회계와 학교회계를 서로 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22조의 2항에서는 노후교실의 개축·증축 목적으로 사전에 사용계획을 관할청에 보고한 경우에는 건축 적립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교 건물 공사비는 법인회계에 속하고, 등록금은 학교회계에 속한다. 따라서 위의 규칙대로라면, 등록금으로는 학교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Y여고는 건축 적립금 적립 사실을 관할청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결국 Y여고는 서울시교육청의 허가 없이 등록금을 22억원이나 부당하게 모아왔으며, 서울시교육청은 또 Y여고가 보고도 하지 않고 적립한 등록금으로 규칙까지 무시해가며 건물 공사를 하는데 이를 '허가'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2003년 11월 겨울. 교사 파면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중인 Y여고 교사 학생들.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학교 등록금을 십수년간 이월해 적립한 돈으로 지어져 '불법' 논란이 일었다.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 재단이 이 돈으로 학교 재산을 늘리고 있는 동안 학생들의 학습 환경 개선에 소홀했음을 지적했다.
2003년 11월 겨울. 교사 파면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중인 Y여고 교사 학생들.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학교 등록금을 십수년간 이월해 적립한 돈으로 지어져 '불법' 논란이 일었다.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 재단이 이 돈으로 학교 재산을 늘리고 있는 동안 학생들의 학습 환경 개선에 소홀했음을 지적했다.

시교육청이 제때에 제대로 행정지도만 했더라도...

Y여고 임금 체불 사태의 핵심은 '왜 교육청은 사전에 Y여고가 등록금으로 학교 건물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허가했는가'하는 문제다.

서울시교육청 행정과장 정아무개씨에 따르면, 현재 교육청은 Y여고가 건물 증축 공사비 중 8억원을 학교측이 부담해야만 국고보조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그 이전에 집행된 돈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 이전에 집행된 돈은 적법한 것으로 본다"며 "Y여고에 대한 국고보조 지연은 일종의 페널티 성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의 답변은 '학생등록금을 건물 증축에 사용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와서 문제가 생기니까 국고보조를 할 수 없다'는 식이어서, 그동안 이 문제를 사이에 두고 꾸준히 학교 개혁을 요구해온 전교조 측이나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학교당국 측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Y여고는 이미 1997년에 이어 2000년 교육청 감사에서 학교운영비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등록금을 남겨 축적한 것과 교사를 정원보다 16명이나 덜 채용한 것 등의 문제로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2년과 2003년에도 불법찬조금 모금으로 교육청의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도 교육청은 Y여고에 단지 '주의 경고'를 주는 데 그쳤다. 행정지도는 실시되지 않았다.

그런 서울시교육청이 그동안 Y여고의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문제를 제기할 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는 엉뚱하게 국가보조금 지급 지연 결정을 내려 이 뜨거운 여름날 교사들을 다시 교육청 앞에 서게 한 것이다.

만약 교육청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1997년 감사 때부터 학생등록금의 과도한 이월 현상, 부족한 교원 채용과 열악한 학습 환경을 제때에 행정지도를 실시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학생등록금을 모아서 학교 건물을 짓는 행위의 적법성을 둘러싼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교육청이 문제 발생 초기에 Y여고에 학생등록금은 학교 학습환경 개선에 사용해야지 학교 건물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천명했더라면 Y여고 경영자들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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