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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 표지
ⓒ 민음사
외로움, 상처,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했던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는 끊임없이 이러한 주제들을 가지고 자신의 특유의 동화적인 색채와 섬세한 글귀를 또 다시 자랑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몸'을 매개로 사람들의 외로움을 그렸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전작들의 무거움 대신 치유라는 밝은 색 물감을 선택했다. 이전 작품들은 예컨대 '하드럭 하드보일드'에서 같은 정신적 어둠이라든지, 젊은이들의 방황, 그리고 상처를 자신의 모티브로 삼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은 젊은이들이 끊임없는 긴 터널을 통과하려 애를 썼던 것 과 달리 작가 자신이 젊음이란 긴 시간을 겪고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안착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번 소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진짜 속마음을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찾아보고 있다. 추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에 기억되어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짤막하고 상큼한 13편의 단편에 담았다.

그랬나, 나는, 사실은 상심하고 있던건가. 그에게 연락할 수 없고, 가족하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 절대 물어볼 수 없고, 옆집에 도둑이 들어 무서워서 잠들지 못했던 일요일 밤에도 전화 걸 수 없었던 것하며. 지금 꿈속에서 가공의 새 연애를 경험하면서, 그렇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무엇보다, 신선하고 기분 좋은 새로운 사랑의 내음이 났다…. 지금 마시는 이 차처럼 달콤하게 예감이 피어올랐다. 현실이 어떻게 되든 그런 것은 이제 아무 상관없었다. 그 꿈을 꾸고 나니, 영문 모를 일이지만 새 기운이 내 생명력을 강하게 부채질했다. 새로운 바람, 새로운 시점, 내게 필요한 것들의 에센스가 전부 지금 순간적으로 꾼 이상한 꿈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혼자 사는 사람과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안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나미다 씨와의 관계를 썩어 문드러지도록 계속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좋았다. 지독하게 나쁜 여자도 될 수 있고 눈처럼 홀연히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기 내면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기분을 아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일, 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타르트에 얹혀 있는 과일을 입에 넣었다. 새콤하게, 살아 있는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짙은맛이 났다.


이번 책은 기억이란 단편을 가지고 각기 다른 내용에 상처에 흔적으로 남아 있던 기억 혹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 등을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몸을 통해 느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식물의 생명과 교감을 나눴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힘에 대한 이야기 <초록 반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남자친구의 인생에 휘둘리면서 고민하지만 결국엔 그의 아기를 갖고 생명의 숨길을 느끼며 기뻐하는 <지는 해>, "멈추지 않는 시간은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을 하염없이 품기 위해 흘러간다"라고 말하며 인생의 첫 기억을 노래한 <검정 호랑나비> 등 각각의 단편에는 마음과 몸, 사람과 풍경이 하나가 된 따뜻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몸이란 여전히 내 것이며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함께 성장하고 상처받으며 때론 슬픔과 비애를 느끼던 아주 절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작가는 작품들의 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몸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발신하고 수신한다. 그 신비로운 색채는 때로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듯한 감각으로 나를 소스라치게 하지만 때로는 위로하고 가슴을 찡하게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상처를 치유하는 포용도 이번 작품에서 남달리 유별날 정도이다. 알로에, 돌, 해 등의 생명을 불어넣어 마치 자연 모든 것이 살아 숨쉬며 그 속에서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들을 통해 몸과 연계되어 상처를 치유하고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바나나는 믿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바나나는 그녀만의 동화적인 색채를 간직한 채 조금 더 성숙해진 자신의 상념을 풀어내고 있다. 그녀는 이제 외로움과 상처 등을 나열하는 대신 포용과 치유를 택했다. 게다가 바나나는 여전히 소소한 삶의 일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삶의 물살에 휩쓸려 어딘가로 열심히 달려가면서 잊어버리는, 빛나는 순간과 기억의 조각은 때론 삶의 거친 물살 속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원동력을 그리고 있다.

얼마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상처가 치유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우리들의 몸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바나나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이번 작품 <몸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를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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