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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준 비는 되어 있다> 책표지
ⓒ 소담출판사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나왔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은 투명하면서도 한 편의 수채화처럼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점이 매력인데,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냉정하게 그리고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맑고 청명한 느낌은 살아 있다.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이별에 처한 이들 혹은 떠나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12가지 이야기로 담았다. 각양각색의 이별 이야기지만 같은 색을 내면서 그녀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 한 때는 서로 정말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지금은 아무런 느낌이 없어…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흔히 사랑은 불꽃에 비유한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다 소멸하는…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은 한때 사랑했던 이들이다. 이미 불꽃이 꺼져버려 불씨만 남은, 혹은 재만 남아 그저 그렇게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 소설의 여성들은 메마른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되뇌면서도 끊임없이 첫사랑의 남자를 떠올리거나, 파국을 앞두고서도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파국을 회피한다거나 동성애에 빠지거나 한다.

작가는 아마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한때는 사랑했는데, 지금은 아무 느낌도 없어, 그거 어떻게 생각해라든지 한참 사랑에 빠져있을 때도 사실은 울 준비는 되어있었다, 라는 말들이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시간의 참혹함이라기엔 주인공들의 안간힘이 안쓰럽다. 시어머니와의 여행에서도 끊임없이 첫사랑 남자랑 같이 왔음 하는 며느리를 욕할 수 있을까.

이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의 남편이라든가 상대방들도 불륜을 저지른다. 굳건한 행복인줄 알았던 게 사실은 모래성이었다는 걸 깨닫는 여주인공들은 그제서야 상실감과 공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여주인공들이 공허감에 빠지는 것과는 또 다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충격은 그래서 더 급작스럽고 상실감도 크지 않을까.

15년간 불륜 상대였던 남자가 이혼하자 새 출발의 꿈에 젖어있던 여자는 상대방에게 자신과 아내를 제외한 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도 딴 남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의 무게감으로 딴 상대가 아니면 견뎌낼 수 없었던 이들이 그 벽이 무너지자 허망하게 무너져버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일까. 혼자 사는 여자는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는 고독하다지만 내가 보기엔 그 반대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작가 에쿠니는 "사람들이 만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것이라서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입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기억을 안고 다양한 얼굴로 다양한 몸짓으로, 하지만 여전히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색깔이나 맛은 달라도, 성분은 같고 크기도 모양도 비슷비슷한 사탕 한 주머니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그건 작가 자신도 모른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머물며 사랑했던 몸짓. 그리움에 몸부림 쳤던 행위들…. 그것은 여전히 계속 삶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게 삶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그것의 판단 여부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울 준비는 되어 있다

, 소담출판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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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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