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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헤헤 그냥, 이 반질반질한 마루를 보고 있으니께 그냥 좋구먼."

지난 봄, 나는 오랜 숙원 사업(?) 하나를 이뤘습니다. 대청 마루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람막이 문짝을 뜯어냈던 것입니다. 이제 대청마루에 큰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볼 수 있고 손님들이 찾아오면 앞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게 됐습니다.

7년 전 우리 가족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을 때 본래 대청마루 앞에는 문짝이 없었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으면 앞산이 훤히 보여 참 좋았습니다.

▲ 날씨가 쌀쌀해지면 비닐을 쳐서 접이식 문을 닫게 됩니다.
ⓒ 송성영
헌데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겨울 추위에 충분히 대비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마루에서 놀다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거냐, 시도 때도 없이 마루에 쌓이는 먼지는 또 어떻게 할 것이고 방안으로 날아드는 파리, 모기들은 어떻게 할거냐"며 문짝을 달자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끄떡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 아이들이 그런 위험이나 추위에 노출될수록 몸을 사려서는 안 된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려면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시골에서 이런저런 두려움과 맞서지 못하면 갈수록 힘겨울 거다"며 맞섰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주장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동의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돈벌이를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마루 앞에 문짝 하나가 턱하니 달려 있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나머지 문짝 다는 일을 거들 수밖에 없었죠.

▲ 한 여름밤에는 비닐을 모기장으로 바꾸게 됩니다
ⓒ 송성영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당시 서너 살에 불과했던 아이들이 시골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만이라도 그 '현관문짝'이 필요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문짝 달기에 동조하면서 아내로부터 아이들의 머리통이 여물 때가 되면 현관문짝을 떼기로 약속을 받아 놓았고 올해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마루가 열리면서 우리 부부 사이에 벌어져 있던 틈새 또한 좁혀졌습니다. 사실 이번에 마루 문짝을 완전히 해체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원하는 방향으로 묘안을 짜냈습니다. 이전 고정된 문짝을 해체시키는 대신 새롭게 '조립식 문짝'을 달기로 합의를 본 것입니다. 각목을 이용해 여러 칸의 접이식 문짝을 만들어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겨울에는 비닐을 입히고 한 여름에는 비닐을 벗겨 방충망을 달아놓기로 했습니다. 결국 나는 언제 어느 때고 훤히 트인 공간을 즐길 수 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전처럼 한 겨울 찬바람은 물론이고 여름밤에 설쳐대는 모기와 같은 온갖 벌레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같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조립식 마루문을 접어두고 탁 트인 마루청에 앉아 있으면 설렁설렁 불어오는 바람이 참 좋습니다. 안방 뒷문을 열어 놓으면 앞뒤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선풍기는 저리 가라' 입니다. 선풍기 바람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기분 좋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 안방 뒷문을 열어놓으면 앞뒤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 송성영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그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으면 오히려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위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들에 길들여지게 되면 없으면 못 견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집 옆 개울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싱싱한 숲의 기운이 실려 있습니다.

선풍기 바람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선풍기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멀건하니 시원한 느낌에서 점점 멀어지지만 숲에서 불어오는 싱싱한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뼈 속까지 스며들어 옵니다.

선풍기와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과 이끼 긴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마시는 것과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풍기 바람은 당장은 시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증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숲의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하니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밖으로 한없이 열려 있는 마루에 앉아 있으면 그런 순수한 자연의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요즘 시원한 마루청에 앉아 가물가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마루청에 엎드려 방학숙제를 하곤 했습니다.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 아이들은 마루에서 방학숙제도 하고 만화책도 봅니다.
ⓒ 송성영
이제 중년이 된 나는 숙제 대신 아내와 함께 마루청에 앉아 이런저런 행복에 관한 숙제를 풀어 나갑니다. 조금은 느끼한 표정으로 마루에 대한 끝없는 예찬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마루는 한없이 열린 공간을 주잖어. 방은 작지만 마루를 통해 수십, 수십 수백 평 아니, 평수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너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지. 닫혀있는 마음조차도 무한대로 열어주는 거 같잖어? 어뗘? 내 생각이 그럴 듯하지?"

내가 마루에 대한 예찬론을 늘어놓으면 도시 내기인 아내는 현실성을 들어 '마루 예찬'을 단박에 깨뜨려 버리곤 했는데 요즘은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쳐줍니다.

"탁 트인 마루에 앉아 있으니까 좋긴 좋네. 바람도 싱싱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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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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