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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1)오이총채벌레:고추,오이,가지 등 과채류 및 화훼에 걸쳐 다양하게 발생하며 잎,꽃,줄기,열매를 모두 가해한다. (2)아리카잎굴파리:성충이 잎 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이 잎에 굴을 파고 다니며 가해하여 잎의 광합성을 저해 한다.
왼쪽 위부터 (1)오이총채벌레:고추,오이,가지 등 과채류 및 화훼에 걸쳐 다양하게 발생하며 잎,꽃,줄기,열매를 모두 가해한다. (2)아리카잎굴파리:성충이 잎 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이 잎에 굴을 파고 다니며 가해하여 잎의 광합성을 저해 한다. ⓒ 윤형권

왼쪽부터 잎굴파리류에 의한 피해, 온실가루이에 의한 피해, 나방류에 의해 피해를 입은 딸기와 고추
왼쪽부터 잎굴파리류에 의한 피해, 온실가루이에 의한 피해, 나방류에 의해 피해를 입은 딸기와 고추 ⓒ 윤형권
작물관리에서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먹이사슬에서 해충에 대한 천적관계의 생물을 이용한 작물재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물적방제'라고 한다. 살아 있는 생물인 천적을 이용한 생물적방제는 선진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하는 보편적인 방제기술로서 안전하고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천적(天敵, natural enemy)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생물을 공격하여 언제나 그것을 먹이로 생활하는 생물'이다. 농업선진국인 서구유럽에서는 이미 186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600회 이상의 실증을 바탕으로 학문적인 검증을 끝냈고, 이를 바탕으로 1967년부터 네덜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천적을 산업화하였다.

농업분야에서 천적을 이용하는 것. 천적을 이용한 농법은 해충도 살고 인간도 사는 즉, 우주공간에 있는 생명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공생 관계의 복원이다. 거창하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뒤늦게 깨달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 농업분야에서 이용할 천적을 국산화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우리 나라는 네덜란드보다는 35년, 일본보다는 5년이나 늦게 산업화했으나 천적의 생산 종류수로 보면 네덜란드와 벨기에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의 혜안의 통찰력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의 고집이 이루어낸 결과다. (주)세실 이원규(50)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위 왼쪽부터 진디혹파리(60여종의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진디혹파리 성충, 온실가루이좀벌, 곤충병원성선충(나방유충소에 침투하여 박테리아로 유층을 죽인다.), 중간 왼쪽부터 으뜸애꽃노린재, 꼬마무당벌레, 칠레이리응애, 벙커플랜트(천적유지식물), 아래 왼쪽부터 쌀좀알벌, 콜레마니진디벌, 굴파리좀벌, 일굴파리좀벌.
위 왼쪽부터 진디혹파리(60여종의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진디혹파리 성충, 온실가루이좀벌, 곤충병원성선충(나방유충소에 침투하여 박테리아로 유층을 죽인다.), 중간 왼쪽부터 으뜸애꽃노린재, 꼬마무당벌레, 칠레이리응애, 벙커플랜트(천적유지식물), 아래 왼쪽부터 쌀좀알벌, 콜레마니진디벌, 굴파리좀벌, 일굴파리좀벌. ⓒ 윤형권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 몇 개를 붓대에 숨기고 들여와 면화재배에 성공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사를 바꾸어 놓는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이것은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

한반도에서 목화가 처음 재배된 후로부터 640여년이 지난 2004년. 세실의 이원규 사장에 의한 천적의 국산화,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의 천적산업화는 문익점의 목화씨와 비견할 만한 역사적인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인가? 이러한 가능성은 결코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표1>을 보면 한국과 농업경지면적이 비슷한 농업 선진국 네덜란드의 2002년도 농업 관련 전체 수출액은 325억 달러. 당시 우리 나라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액을 모두 합해야 260억 달러였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비슷한 경지면적이며, 오히려 시설재배면적은 5배나 넓지만 농업 관련 수출액은 네덜란드의 1/20인 16억 4천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의 농업 관련 종사자들이 네덜란드의 농업인들에 비해 1/20의 경제수준이라면 지나친 역설일까?

ⓒ 윤형권
네덜란드는 농업 분야에서 천적의 사용이 약 90%에 이른다. 천적에 의한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여 품질경쟁력을 갖춰 수출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잘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실에서 생산하는 천적의 종류는 14종. 꼬마무당벌레, 남방애꽃노린재 등 토종 천적이 8종이고 칠레이리응애, 콜레마니진디벌 등 외래종이 6종이다. 생산하는 천적의 종류는 네덜란드가 30종, 벨기에 25종이고 세실에서 14종으로 세계에서 3번째다.

외래종은 원종(seed)을 수입해서 우리 나라 환경에 맞도록 번식한다. 원종을 수입하기 전에 해당 천적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와 임상연구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식물검역소의 위험성 평가를 거쳐 들여온다.

ⓒ 윤형권
천적이 모든 화학농약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토양오염방지와 안전한 농산물 생산은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화학농약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국산 천적을 이용하면 외화 획득의 효과도 있다.(표2참고)

다음은 (주)세실 이원규(50세) 사장과의 일문일답.

이원규(50세) 사장
이원규(50세) 사장 ⓒ 윤형권
- 어떤 동기에 의해 천적생산을 산업화하게 됐나?
“천적에 관심을 갖고 천적산업화 사업을 하게 된 것은 그 동안 해온 무역업을 통해서였습니다. 해외 출장 중에 살펴보니 농업 선진국들은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천적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농업 해충을 생물학적으로 방제하여 소비자가 신뢰하는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했던 것입니다. 천적을 사용한 그들의 농업분야 시장 경쟁력과 수출 규모가 매우 큰 것을 보고 언젠가는 이 사업을 우리 나라에서도 도입해 농업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그 동안 목재 관련 무역업을 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열대우림 환경파괴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평생 나무 몇 그루 심는 것만으로도 그 죄를 다 갚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대신 천적을 키우면 숫자로나 결과적으로도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국내 처음으로 천적을 산업화했다. 선구자 역할이란 힘들고 외로운 것인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어려운 점은?
"첫째, 천적은 살아 있는 생물로서 화학농약과는 근본적으로 태생이 다릅니다. 천적은 일종의 ‘생물자원’입니다. 천적을 국내에서 처음 생산하다보니까 이런 점에서 준비가 미흡해 어려웠습니다. 시장 조사차 만난 네덜란드 대사관의 농무관실 한국 직원이 저에게 말하기를 ‘대통령이 뒤에서 도와준다면 모를까?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할 정도였지요.

실제로 그 이후 사업장 부지를 확보하여 공사를 하고 대규모 시설을 갖추었음에도 산업 분류를 할 수도 없고, 관련 법규도 없어서 행정기관에서 사업허가를 해주지 않아 골탕을 많이 먹었습니다.

둘째, 천적을 설명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잘못 알고 있거나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후 현장교육을 하고 강의도 다녀서 요즘은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셋째, 천적을 공부한 인재들이 대부분 학위를 획득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 대량증식과 품질관리 그리고 제품화까지의 단계를 제대로 갖춘 고급인력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이 바로 된 젊은 연구진들로 구성하여 인력양성에 나섰습니다. 실력을 높이기 위해 외국의 기술자문도 동원했지요.

마지막으로 넷째, 누군가 해 놓은 바탕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사업이라면 누가 더 잘 하느냐에 따라 죽고, 살고 하는 것이 정해지잖아요? 그러나 이 사업은 국내에서는 그런 기준을 삼을 만한 기업이 없다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었던 것만큼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 천적은 모든 농산물에 적용이 가능한가?
“그렇습니다. 천적이 온실재배작물에서만 이용 가능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들이 있는데, 원래 야외에 있던 천적을 온실 작물에 먼저 적용한 것은 닫혀져 있는 온실내부에 생태계의 상위 먹이사슬인 천적이 쉽사리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천적은 온실작물이든 야외작물이든 가능합니다.”

- 현재 우리 나라 농업분야에서 천적을 이용한 해충방제는 어느 정도인가?
“2002년 5월에 천적 관련 식물방역법이 개정되어 그해 11월에 시행령이 공포되었고, 저희는 2002년 11월 사업장을 완공하여 2003년부터 천적을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2000여 농가에 천적을 공급하고 있으며 면적으로 하면 1000ha 정도이며 시설재배면적의 약 2%로 아직은 초기단계입니다. 선진국보다 늦게 도입되었지만 천적에 대한 인식과 이용 농가의 확산 속도가 빠릅니다.

지난 2월 대통령 주재 농업과 농촌 종합대책회의에서 나온 119조원 투융자 농촌종합대책에 따르면, 친환경농업 확산으로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을 2013년까지 현재보다 40% 감축하고, 유기질비료 공급을 늘리며 천적과 미생물을 이용한 농법의 확산을 10%까지 확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적을 이용하는 농가가 점점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천적을 이용한 해충방제가 화학농약의 해충방제와 비교한다면?
“천적을 이용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농업 생태계를 비롯한 자연환경 보호, 농업시장 개방 압력에 대비한 우리 농업의 경쟁력강화, 생산자인 농업인과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에게 안전한 농산물 제공,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고 천적의 수출로 외화 획득을 높일 수 있는 것 등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먼저, 생산 시설을 좀더 보완하고 증설해 늘어나는 수요에 넉넉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보다 앞선 몇몇 다국적기업을 따라잡고,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천적의 종류를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준비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천적을 수출할 계획이며 그 준비를 빈틈없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쿠바와 같은 유기재배농사를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실은 정부가 허락하고 북한 정부가 원한다면 천적을 보낼 용의도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천적 생산 관련기술을 팔지 않아도 북한에는 단계별로 천적생산 기술이전도 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온실재배 농작물의 생산성이 좋아지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아가 통일에 작게나마 힘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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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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