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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하늘길>
ⓒ 다림
소설가 이문열이 아이들을 위한 무협지를? 하지만 무협지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길>이 바로 그 책의 제목이다. 저자의 브랜드만으로도 실망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단번에 가방 속으로 쏘옥 집어 넣었다.

역시나 고전에 대한 작가의 유려한 문체가 돋보이고 문맥의 호흡이 분명해 책을 읽는 내내 너름새로 장단을 맞추게 된다. 동양적 이미지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한 사나이의 긴 여정 속에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은 캐릭터 만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듯하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그리고 그 속 한 귀퉁이의 인간. 그림을 그린 김동성은 한꺼풀 씻겨낸 색채의 은은함과 우리의 정서를 함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메시지가 다소 무거워 아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지가 의문으로 남아, 오히려 청소년과 어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구도자의 기나긴 순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족. 하지만 그들은 대대로 배 고프고 불행하다. 결국 그러한 삶은 쉽게 죽음을 부른다. 세상의 불공평을 절감하는 아이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죽어가는 아버지는 '하늘에서 받은 복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 채 죽고 아들은 결심하게 된다.

"저는 이제 하늘로 가서 그 분(옥황상제)을 만나 뵈려고 해요. 만나서 왜 우리가 이렇게 가난한지 따져 볼 거예요. 저 또한 헐벗고 굶주려 죽게 되더라도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는지 까닭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끝없는 길을 걸어 땅 끝이라고 여겨지는, 한 아가씨가 사는 오두막에 유숙한다. 그는 앞서서 '땅 끝'을 찾는 이들의 행로를 따라 온통 책에 둘러싸인 선비를 만나게 되고 악사와 화가 광대와 시인를 거치고, 도사를 거쳐 마지막에 이무기에 이르기까지 하늘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하늘길에 도착하지 못한 생이다. 그들은 하늘길을 찾아 떠나는 사내에게 만약 옥황상제를 만나면 왜 자신들은 하늘길에 오르지 못하는지를 꼭 물어 봐 달라고 간청한다.

▲ 하늘길에 닿아 옥황상제를 만난 젊은이
ⓒ 김동성
끝없는 고행의 결과, 사내는 결국 하늘문에 닿고 옥황상제를 만난다. 젊은이는 아버지가 말한 '받은 복의 없음'에 대한 연유를 따진다.

"세상 모든 일이 한결같고 가지런하다면 어떻게 서로 미치고 어우러지는 조화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많고 적고, 길고 짧고, 밝고 어두운 것이 서로 분간되어야 오히려 그것들이 서로 미치고 어우러져 조화가 생기느리라.

그러하니, 너희가 똑같이 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면 너희 여러 목숨을 따로 지어 낼 까닭이 없지 않겠느냐? 하지만 대강은 비슷하게 복을 나누어 주었는데…."


복을 나누어 주는 관리의 실수가 겹쳐 그러한 결과를 빚게 되었다는 것을 안 옥황상제는 그동안 받지 못한 복의 몇 배를 젊은이에게 준다. 또한 젊은이는 고비마다 하늘길에 닿지 못한 이들의 답인 '허영과 욕심과 기만과 지식'도 듣게 된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젊은이는 '복을 넘쳐 흐르게' 받고 엄청난 금은보화를 얻어 행복한 가정을 꾸민다. 하지만 의외의 결말이다. 그렇게 6년쯤 지난 뒤 젊은이는 무슨 사연인지 모르게 가출을 한다.

어느 날 밤 아내와 아이들 몰래 그가 갑자기 집을 나가 버린 것입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홀로 훌훌 떠나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인데…. <본문 중에서>

철학적 메시지 담겨

사내가 하늘길에서 얻고자 한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었다. 젊은이가 얻게 된 새로운 삶은 하늘길에 이르지 못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생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가출은 '인생은 부귀영화로 가늠되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설정이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답을 교훈적으로 풀어가는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절실한 구도자의 여정을 아름답게 채색함으로써 흥미롭게 '인생'을 성찰하게 한다.

하늘길

이문열 지음, 김동성 그림, 다림(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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