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점심 시간에 여길 오면 30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심하면 40분 이상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고 50분 기다린 적도 있다. 그래도 화를 내고 나가는 손님은 없다. 묵묵히 기다려서 사골이 진하게 우러난 깔끔한 국물에 담긴 4천원짜리 만두국이나 칼만두국 한그릇 먹고 나간다.

기다리기 싫다면 낮 12시 이전에 오거나 1시 넘어서 오면 된다. 한가할 때는 20분 정도면 만두국이 나온다. 이곳의 특징은 한 테이블에서 주문 받은 것은 동시에 다른 테이블에서 같은 종류를 주문 받아도 따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 먹고난 뒤에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도 아무리 손님이 밀린다 해도 자리 비워달라는 말을 안한다. 바쁠 때는 알아서 비켜주고 한가할 때는 몇 시간이고 있어도 된다.

이 만두집은 꽤 자주 드나들기도 했지만 맛있는 만두집 소개한다고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곳이기도 했다. 입이 꽤 까다로운 사람도 감탄을 하면서 만족을 표시하면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듯 우쭐하기도 헸다.

시인부터 친구와 지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이 집에 데리고 왔는데 여태 단 한 사람 외엔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 언젠가 우연히 길에서 B씨를 만나 같이 가다가 점심 때라 이곳에 와서 칼만두국(칼국수와 만두가 어우러진 만두국)을 잘 먹었다.

그 후 몇 달 지난 뒤 B씨는 문득 그 이야기를 꺼냈다. 전화가 걸려와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서 막 앞에 가져다 놓은 비빔보리밥을 포기하고 B씨를 만나러 갔다. 날도 더운데 냉면을 먹자했더니 잘하는 냉면집이 있다고 해 J씨와 셋이 맛있게 칡냉면을 먹고난 뒤였다.

"한 기자님은 원래 냉면이나 밀가루 음식 좋아하나봐."
"왜요?"”
"언젠가 한 기자님이 만두 잘하는 데 있다고 가자고 했잖아."
"아아. 문산 밀밭분식집이요? 맛이 없었어요?"

"J선생님, 글쎄 말예요. 지난 번에 우연히 만나서 아주 맛있는 데가 있다고 가자해서 갔는데 이 집은 그 집에 대면 고급인 편이예요. 나 원, 이리저리 끌고 가더니 다 찌그러져 가는 집으로 들어가서 속으로 세상에 요즘 이런 집이 다 있나 했죠."

내가 아주 맛있는 집을 안내한다고 해서 무척 기대를 걸고 따라갔단다. 속으로 기자가 안내하는 집이니 맛있을 거고 모처럼 나를 식사 한 번 대접하겠다고 작정을 했다고.

"내가 돈이 없다고 그랬나 모르겠지만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해도 항상 바쁘다니까 기회가 있어야죠. 근데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방문이 얼마나 낮은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라. 난 밀가루 음식은 아주 싫어해요."
그러니까 만두가 맛없다는 것이 아니고 밀가루 음식이 싫었던 것이다.

"지난 번에도 같이 밥 먹으러 가자 했더니 이번엔 버섯 칼국수 집엔가 갔잖아. 어째 한 기자님 가는 집은 다 싸구려 밀가루집이래?"
"아니 그 땐 여럿이 다들 칼국수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간건데…. 난 맛있어서 간 건데요."
B씨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일부러 내가 싼 집만 골라 다닌 줄 안다. 나와 밥 한 번 먹자고 한 지가 몇 년이 되도 기회가 없었고 굳이 계산한다고 나서는 것을 말리진 않았지만 싫은 밀가루 음식만 강요한 꼴이 된 것은 미안했다.

사람들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이런 점이다. 기자라면 고급요리에 비싼 술만 먹는다는 인식도 그렇다. 편한 사람들과 설렁탕이나 비빔밥, 맛있는 된장 찌개를 먹는 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자리인 것처럼 기자도 마찬가지다. 거북한 자리에서 비싼 밥 먹느니 편하게 라면 한 그릇 먹는 게 더 좋다.

말이 나온 김에 오해 몇 가지 더 들어야겠다. 기자들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이런 말일 것이다.

"기자가 그것도 몰라?"
(기자가 신이냐? 뭐든지 다 알게?)

기자연수를 받을 때 일이다. 강사로 나온 분이 메이저 신문에 수십년 언론인으로 활동한 분이었다. 한번은 고향에 갔더니 유명한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라고 친구들이 온갖 기대를 하며 시사문제부터 시시콜콜한 많은 질문을 하더란다. 한숨을 푹 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열 가지를 질문하는데 열두 가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물론 기자는 정보에 게으르면 안되니 항상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저기 기자 있다. 우리 말조심 하자."
(아니 기자가 프락치야?)

기껏 친구들이 모여서 수다 떨다가 이런 말이 나오면 김이 새버린다. 그것도 다 보도된 정치문제에 대해 말하다가 그럴 땐 어처구니가 없다. 기자는, 아닌 척하면서 맞장구 치고 듣고 있다가 아무 때나 기사 써버리는 무지막지한 위험인물인 줄 아나보다.

"이보슈. 댁이 기자라니 하는 말인데 말야. 기자질 하는 넘들 하는 꼴이 왜 그래?"
(기자가 죄인이로소이다.)

잘 있다가 누가 기자라고 소개하면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도 종종 만나지만 어쩌랴. 이럴 땐 무조건 공손하게 말을 들어주고 오해를 풀어주는 길밖에 없다.

만두 얘기를 하다가 옆길로 빗나갔지만 각설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자(하지만 언젠가는 여기자에 대한 애환을 한번 한을 풀듯이 써보려고 한다).

파주시 문산읍의 그 집에 들어서면 좁은 홀의 테이블 네 개 중 하나는 만두 빚느라고 주인이 차지한다.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만들고 속을 넣고 당당하게 손님 앞에서 만두를 만든다. 손님 시중 드는 틈틈이 만두 빚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도 이 집의 풍경.

살림집을 개조한 방으로 가려면 만두국 끓이느라 김이 자욱하게 퍼진 좁은 주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두 개의 방에는 벽마다 손으로 쓴 세로 글씨 차림표가 붙어있다. 마치 60년대 식당의 차림표를 보는 듯한 글씨체다.

파주시에서 꽤 유명한 만두집이지만 주인은 도무지 늘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사화 하는 것도 단호히 거부한다. 이유는 손님이 너무 밀려들어서 감당하기 어렵고 식당을 늘리면 맛이 변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린 식구끼리 일하는데요. 이 식당에 모두 7명이 일해요. 3명은 일하는 사람 쓴 거구."

이 식당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짐작은 했다. 식구끼리 운영하는 집인가보다고. 모자와 며느리 손녀일지도 모르고 모녀와 사위와 외손주일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할머니가 오래 운영한 만두집이 손님이 많아지니 다들 같이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리라.

상이 4개 들어가는 방 두 개에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이 작은 식당에 7명도 힘들 정도로 바쁘다면 무척 잘되는 집이다.

"요즘 손님 안 줄었어요?"
한가한 오후 3시에 찾았기에 운영 여부를 짐작할 수 없어서 물으니 할머니 대답은 간단했다.

"더 많아졌어요. 더 바빠 죽겠어."
"만두파동이 영향 없나보네요. 손수 만들어서 그런가요?"
"우린 김치도 손수 담가서 하구 속을 좋은 거 쓰니까. 나는 아침이면 속 만들어서 놓고 다른 일 해."
"잘 되면 좀 늘리지시지요."
"아냐. 힘들어서 못해."

황급하게 손을 내젓는다. 전국을 강타한 만두파동에도 끄덕없이 건재하는 모습만 봐도 안심했고 내가 좋아하는 만두집이 여전히 잘된다는 소식에 더 반가왔다. 손으로 밀은 칼국수에 주먹만한 만두 4개가 들어간 진한 사골 국물의 뜨거운 칼국수가 왔다.

반찬은 단무지와 김치 두개로 변함 없지만 커다란 냉면대접에 담긴 만두국은 푸짐하고 변함없이 맛있다. 만두를 먹다가 비릿한 맛이 나면 먹을 맛이 안 나지만 이 집 만두와 국물에선 비린 맛을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

한가할 때면 둘러 앉아 만두를 열심히 빚는 것을 구경 하는 것도 재미있다. 또 1만원이면 생만두 40개를 판매해 가끔 사다가 끓여먹기도 한다. 하지만 만두가 남을 때만 팔아서 헛탕치는 일도 종종 있다.

만두를 좋아하는 막내 남동생 집에 사다줬더니 40개를 모두 삶아서 올케와 둘이 싸워가면서 하루에 다 먹어치웠단다. 얘기를 들어보니 막내 남동생은 나보다 이 집을 더 자주 드나드는 듯 싶다. 와서는 만두국 먹고 사들고 가서 또 먹고 사흘을 먹을 적도 있다니 말이다. 누나 생일에 먹던 만두맛을 여기서 되찾았을 것이다.

만두의 유래가 정치와 전쟁과 주술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현 상황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만두전쟁’을 치른 우리 사회가 맛있는 '만두주술'로 풀어졌으면 한다.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쉽게 만두주술에서 풀리지 않을 것이고 맛있는 만두는 항상 입맛을 끌어당긴다.

낮에 마켓에 가보니 만두코너는 여전히 썰렁하다. 군침이 돌게하는 각종 만두가 수북히 쌓여있던 만두냉동고는 얼마되지 않는 양만 밑바닥에 깔려있다.

냉동만두 한 봉지를 집어 카트에 담는다. 누군가 안타까운 듯 파주시 만두공장 얘기를 쓰면 안 되냐고 한다. 거긴 안 걸린 곳이라며…. 만두먹기 운동이 슬슬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도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씁쓸한 일이다. 쓰레기 만두파동 충격은 크지만 선의의 피해를 입은 만두업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