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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타작하는 풍경-보리타작은 영영 없어진 모양입니다.
벼 타작하는 풍경-보리타작은 영영 없어진 모양입니다. ⓒ 김규환
가마니에 담아 구루마에 실어 집으로!

오전 11시 경 얼추 일이 끝났다. 기계를 거두는 아저씨들 손길이 또 한번 분주하다. 그 틈에 놉들과 우리 가족은 주변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어른들이 보리 알갱이만 고르기 위해 비질을 하고 가마니에 담는 동안 아이들이 할 몫이 있다.

형제들은 도로변에 나뒹구는 보릿대를 산 쪽으로 끌고 올라가 집채보다 더 크게 만들었다. 미끄러운 보릿대는 자꾸만 흘러내렸다. 몇 번 발을 굴려 한 깍지 씩 움켜쥐고 꼭대기에 올라 눌러 주기를 반복했다.

이제 보릿대는 한동안 아이들 뒹굴고 노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타작할 때와는 달리 보릿대 까끄라기는 별로 없고 푹신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지날 때 가만히 두질 않았다. 꼴 베러 갈 때나 학교 오가는 길에 소나기가 오면 비가 스며들지 않기에 구멍을 파서 피신처였다. 동네 꼬마 녀석들 대여섯 명이 마당바위를 타고 놀 듯 오르내렸다.

보릿대를 정리하고 어른들 마무리 하는 곳으로 가서 가마니를 잡아 주었다. 한 가마 두 가마 퍼 담으니 주변은 보리가마니 일색이다. 다 담고 보니 50가마가 넘었다. 아버지는 사려놓은 새끼줄을 잘라 묶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보리는 예나 지금이나 벼농사 보다 수월하다. 농약통과 비료부대를 지고 다니고 물꼬를 아침저녁으로 매일 확인해야 하는 논농사와 달리 씨앗 뿌려주고 보리밭 밟고 수확만 하는 간단한 과정이며 약품 처리할 일이 없어서 좋았다.

묶어지는 족족 가마니를 소달구지에 실어나갔다. 하지만 한 번에는 마치지 못할 분량이다. 마저 담아 나가도록 몇 사람을 남겨두고 소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수확 뒤 달구지가 실은 짐 위에 올라타 하늘을 이고 드러누워 가는 기분 끝내줬다. 평소는 덜컹거리지만 짐을 가득 실으면 삐거덕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안정감이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이 더 멀어 차에 올라탄 기분을 오래 만끽할 수 있었다.

가마니에 뭐가 담겨 있을까?
가마니에 뭐가 담겨 있을까? ⓒ 김규환
내가 보릿대 쌓아둔 곳을 떠나지 않은 까닭

구루마(달구지)가 사립문을 통과했다. 마당 한 가운데에 달구지를 세우고 짐을 부린다.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 나도 한 가마 져보려 했으나 “일 더디게 한다.”는 통에 그만 두고 옆에서 거드는 걸로 만족했다.

긴 뚤방(토방)에 차곡차곡 쌓고 보니 부자가 따로 없다.(글쓴이 주: 그 시절엔 ‘묵갈림’이라는 병작반수竝作半收가 성행해서 가을에 추수를 하면 절반을 논에서 다발 째 나누었다. 하지만 하곡夏穀 보리는 예외였으니 소작농에겐 벼농사보다 알차게 목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둘러 내리고 물 한 대접씩 마시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어머니와 놉들은 마지막 가마니에 보리를 담고 있고 연장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 곧 어른들이 몰려들어 남았던 보리가마니 1/3과 연장을 싣고 집으로 가셨다. 나는 보릿대 쌓아둔 그 자리를 뜨지 않고 머뭇거렸다. 보릿대 중에서 이삭이 달린 마지막 마디 위쪽 기다란 줄기를 하나하나 골라 바닥에 쌓고 있었다.

"셋째 성(형)!"
"왜?"
"거시기 맹그라 주라."
"알았어. 근데 니가 내일 깔 두 망태 빌 거지?"
"그려. 성꺼랑 벼 놓을텨."

노란 보릿대를 한 아름 골랐던 건 여치 집을 만들어 달라기 위해서다.

달구지 타고 가는 즐거움 경운기 보다 여유롭고 좋습니다.
달구지 타고 가는 즐거움 경운기 보다 여유롭고 좋습니다. ⓒ 김규환

어릴적 목욕하며 놀았던 냇가는 지금 어찌 되었을까?
어릴적 목욕하며 놀았던 냇가는 지금 어찌 되었을까? ⓒ 김규환
옷 입은 채 '풍덩!'그리고 엄마가 만든 비누

"규환아, 비누 각관냐?"
"잉."
"글면 후딱 들가자(들어가자)"
"아직은 차가울 것인디…."
"잔말 말고 얼렁 들어와. 배고프지 않냐?"
"알았어."

풀숲을 지나 까무잡잡한 빨랫비누를 바윗돌에 올려놓고 옷을 입은 채 물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갔다.

"우후 으으"
"검나게 차갑네."
"시원허구만 그냐. 비누 좀 띵겨봐(던져봐)"

당시 비누는 어머니께서 손수 쌀겨와 양잿물을 섞어 만들어서 볼품없고 쉰 듯 고약한 냄새를 풍겼지만 때 하나는 잘 빠졌다. 물고기도 싫어하지 않았다.

머리에 촘촘히 박힌 까끄라기를 털어 내느라 비누칠하고 머리를 처박기를 서너 번 반복했다. 물을 잘못 마신 탓인지 콧속이 무척 매웠다. 머리를 감고 윗옷을 벗어 바위에 던져놓고 차례로 옷을 벗어 씻었다. 중간 중간 비누를 칠하고 쓱쓱 문대주고 자맥질 한다. 거품이 보 아래로 동동 떠내려간다.

"성 배고파."
"언넝(얼른) 겉옷을 빨아서 가자."

주섬주섬 바위에 올라 빨아서 한번 꼬옥 짜서 다시 옷을 입고 까만 고무신을 신고 보릿대를 챙겨 집으로 줄달음을 쳤다. 세상에 목욕 후 그보다 상쾌한 목욕은 여직 없었다.

보리밥
보리밥 ⓒ 김규환

갈치조림
갈치조림 ⓒ 김규환
꽁보리밥 먹고 보리 말리고 여치 집 만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밥!" 하니 새까만 꽁보리밥이 고봉으로 차려 나온다. 반찬은 보리밭 사이에 갈아뒀던 열무로 담근 김치와 갈치조림이다. 밥에 물을 말아 두 그릇을 해치웠다. 허기를 달랜 후 보니 마당엔 구릿빛 보리가 두껍게 널려 이글거린다. 마루에서 밥을 먹고 토방을 거쳐 마당으로 내려갔다.

배 꺼칠 요량으로 건조한 초여름 햇볕을 받아 따끈따끈해진 보리 위를 바닥에 바짝 발을 붙여 맨발로 뒷짐을 지고 잰 걸음으로 슬슬 걸어 다녔다. 덕석(멍석)이 지압(指壓) 효과를 주기에 충분했다. 발새엔 쌀보리 알이 끼어 재그랍게(살살 간질이며 싫지 않는 느낌 또는 무릎이나 팔꿈치 뒤쪽 인대 부위를 잘못 쳤을 때 전기가 오는 듯한 느낌) 간질인다.

열흘은 보리 말리는데 온 집안 식구들 정신이 집중이 되는데 비라도 오면 방으로 들여와 보리 위에서 자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후에 꼴을 베어다 두고 저녁 무렵 셋째형은 예쁜 여치 집을 만들었다.

만지작만지작 돌려가며 요리조리 갖고 노는 듯 했지만 손놀림이 좋았던 형은 금세 크고 높은 여치 집을 완성했다. 내가 받은 보릿대로 만든 여치 집은 에펠탑보다 더 아름다웠다. 해 지는 줄 모르고 여치 잡으러 나갔지만 그 날은 결국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는 형과 했던 약속을 지켰다.

여치집
여치집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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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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