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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야옹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 송성영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쥐새끼 잡으라고 키워온 고양이가 도둑고양이를 닮아 가고 있습니다. 쥐새끼 사냥 대신 새, 병아리, 다람쥐, 두더지 사냥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야옹이는 쥐새끼 사냥을 아주 잘 했습니다. 지난 가을에서 봄까지 대대적인 쥐새끼 소탕작전을 벌여나갔습니다. 종종 뜰팡('뜰'의 방언) 위에 사냥한 쥐새끼를 주인한테 상납(?)했습니다. 주인이 썩 내켜 하지 않는데도 마당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쥐새끼를 몰고 다니며 '쥐잡이 쇼'까지 벌이기도 했습니다.

야옹이가 '쥐잡이 쇼'에 재미를 붙여가자 약삭빠른 쥐새끼들은 찍소리 없이 쥐구멍 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둑고양이도 제 영역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놈을 보면 늘 그 놈이 그 놈입니다. 놈은 우리집 야옹이보다 덩치가 훨씬 클 뿐 아니라 좀더 앙칼지고 아주 교활해 보였습니다.

도둑고양이는 쥐새끼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집주인이 호락호락해 보였는지 훤한 백주 대낮에도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훔쳐먹을 것 다 훔쳐먹고 그것도 부족해 야옹이 밥까지 강탈해 먹는 걸 보면 오히려 쥐새끼들보다 더 할 때가 많습니다.

도둑고양이가 집 주변 쥐새끼들을 퇴치해 준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도둑고양이들은 쥐새끼들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쥐새끼들이 훔쳐먹은 것을 놈이 훔쳐먹고 있습니다. 병아리들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병아리들을 닭장 밖으로 내놓고 키울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온갖 곤충이며 파충류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습니다. 집 주변 생태계를 깨뜨립니다. 징그러운 곤충들이나 뱀, 도마뱀 같은 파충류를 잡아먹으면 좋은 게 아니냐구요?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태계의 흐름이 깨지면 사람살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도둑고양이가 잡아먹는 곤충과 파충류들 중에는 밭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을 잡아먹는 녀석들이 많습니다. 곤충과 파충류들이 줄어들게 되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약을 더 많이 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그 농약 먹은 작물들을 먹게 될 것입니다.

또 도둑고양이는 언제 어느 때고 사람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유발합니다. 도둑고양이의 습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보니 어딘가 모르게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집 주변 생태계 작살내고, 남의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잖아. 허락도 읎이…. 개밥 훔쳐먹고 야옹이 밥은 아예 빼앗아 먹고 있잖아. 이라크 침공한 미군처럼 말여…."
"그러네?"

야옹이 밥을 강탈해 먹고 개 사료까지 훔쳐먹는 도둑고양이는 겁대가리 없이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고 아궁이 주변이나 집 모통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우리 식구들을 깜짝 깜짝 놀랬습니다. '강심장'이라 자부하는 나까지 놀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야옹이가 그런 '싸가지' 없는 도둑고양이와 함께 어울러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옹이가 도둑고양이와 어울려 다닌 이유가 무엇일까? 정분이 난 모양입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야옹이가 정분이 나니까 정신을 못 차리더군요. 자신을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 준 주인은 뒷전이었습니다.

그 많던 쥐새끼들은 다 어디로 갔냐구요? 그동안 살아남은 쥐새끼들은 야옹이의 서슬 퍼런 눈빛에 눌려 '나 쥐새끼 아닌디…' 하고 쥐구멍으로 잠수 타고 있던 것입니다. 쥐새끼들이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다 야옹이 덕이긴 합니다. 분명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식구는 우리 식구대로 천방지축 야옹이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아줬습니다. 쥐잡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부엌에 들어와 여기저기 털 날리고 오물 묻은 발자국 남겨놓을 때도 적당히 넘어가 줬고 부뚜막에 올라가 멀쩡한 생선을 낼름거렸을 때도 적당히 눈감아 줬습니다. 동네 고양이들 불러들여 개 사료 포대를 엉망으로 만들 놓았을 때도 세금 내듯 꼬박꼬박 야옹이 밥그릇에 먹을 것들을 챙겨줬습니다.

헌데 도둑고양이를 만나고부터는 그야말로 막 가고 있던 것입니다. '쥐잡이'라는 '본연의 업'을 팽개치고 도둑고양이와 어울러 다니며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쫓아 내야 할 도둑고양이하고 한동안 붙어 다니더니 아예 새끼까지 배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도둑고양이 습성을 닮아 가고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려주는 딱새부터 물까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새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습니다. 청설모를 피해 집 주변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그 귀여운 다람쥐까지 잡아먹었습니다. 그러니 매년 우체통에 날아오던 딱새가 얼씬거리기나 하겠습니까?

얼마 전부터는 나름대로 밥값을 하겠다는 것인지 쥐새끼 대신 두더지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두더지 외피는 밍크 털처럼 두툼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옹이가 두더지를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심하게 물어뜯어 내장을 훤히 들어내 팽개쳐 놓기 일쑤입니다. 먹지도 못할 두더지 잡는 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존을 위한 사냥이 아니면 그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두더지를 잡는 날이면 여지없이 마루 장 밑 아니면 뜰팡에 전시합니다. 먹지도 않는 두더지 잡아놓고 쥐잡았다고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야옹하고 있던 것입니다.

딱새가 우체통에 날아올 무렵에는 녀석을 집 밖으로 쫓아 낼 궁리도 해보았습니다. 고민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때마침 야옹이 배가 불룩하게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도둑고양이와 어울려 다니며 '싸가지' 없는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지만 새끼 밴 놈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 한동안 도둑고양이와 어울려 다니더니 다람쥐까지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 송성영
얼마 전 야옹이는 외양간을 고쳐 만든 아내의 화실 선반 위에 건강한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과일 박스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야옹이 새끼들을 마루 장 밑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헌데 어제 새벽이었습니다. 마루 장 밑에서 야옹이의 앙칼진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 식구들 모두 잠에서 깰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였습니다. 필사적인 비명 소리였습니다. 황급히 밖으로 나와 보았더니 야옹이네 보금자리 부근에서 도둑고양이가 뛰쳐나왔습니다. 새끼들을 노린 게 분명했습니다. 다행히 새끼들에게 아무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 전 날 저녁, 야옹이가 새끼를 물고 자꾸만 방안으로 들어온 것이 바로 도둑고양이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 도둑고양이가 이제 겨우 눈 뜨기 시작한 새끼 야옹이를 해치려고 합니다.
ⓒ 송성영
도둑고양이의 습격이 있던 날 야옹이는 새끼고양이를 입에 물고 도둑고양이에게서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결국 마루청 밑에 있던 야옹이의 임시 거처인 과일 박스를 옮겼습니다. 도둑고양이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루 옆 창고로 안전하게 옮겨 주었습니다.

야옹이는 도둑고양이가 어떤 놈인지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다른 고양이들 영역을 맘대로 점령해 들어온 것도 부족해 제 새끼조차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 패거리로 붙어다니긴 했지만 이제 야옹이는 도둑고양이의 추악한 실체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흉악무도한 놈인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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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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