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러니까 작년 가을 무렵부터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고 다녔다. 아이들과 더불어 채소 씨앗도 직접 뿌려보고 그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땅이 있다면 아주 훌륭한 생명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공부방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자폐아가 대부분인 아내가 운영하는 인지센터 애들에게 채소를 직접 키워보는 농사체험은 정서교육이나 환경교육을 위해서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적합한 땅을 구하기가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알아본 결과, 땅은 있어도 거리가 너무 멀거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값비싼 임대료에 걸려 아쉽게 한 해를 넘기고 말았다.

그러고 잊고 지내다가, 어제 담양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 댁에 다녀오면서 조금 힘들더라도 계속 밭을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왔다.

담양 부모님은 너른 텃밭이 딸린 집을 새로 짓고 사시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무공해 채소를 뜯어다 식사를 하실 수 있었다. 농약 한 번 안 치고 기르신 배추를 닭장에 있는 닭 모이로 줘야겠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요즘 도시민들은 시장에서 구한 채소가 과연 안전한 것인지 항상 마음 졸이면서 먹고사는 데, 이렇게 신선놀음을 하시는가 싶을 정도였다.

닭 모이로 주시려거든 우리 좀 가져가게 달라고 해서 무공해 배추를 두 부대나 얻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농사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보장하니 어서 농사지을 땅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 길을 안내해주신 오씨 할아버지
ⓒ 정병진
오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작년에 가보지 못했던 인근의 시골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밭에서 일하시던 한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통장님 댁을 찾아가다가 마침 그늘에서 쉬고 계시는 동네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그분들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적당한 밭이 없겠느냐고 여쭈었더니 묵은 밭들이 있긴 한데, 산 위에 온천이 들어선 뒤로 원체 물이 없어서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과연 메마른 묵정밭들이 거기 주변 만해도 몇 자락이나 눈에 띄었다. 동네 주민들이야 자기 집에서 물을 길어다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외지인이 농사짓기는 심히 어려운 조건 같이 보였다.

그래서 혹시 가까운데서 물을 구할 수 있는 묵은 밭은 전혀 없느냐고 여쭸더니 하나 있긴 한데 주인장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분들 중에서 오씨 할아버지라는 분에게 그 묵은 밭을 안내해 주시라고 부탁해서 온천 바로 밑에 있는 그 밭에 함께 가보았다.

불편한 몸으로 친절하게 안내 해주신 오씨 할아버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농사 체험장을 만들려고 한다는 취지에 크게 공감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산 교육을 하려면 농사짓는 법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으로 맞장구까지 쳐주셔서 힘이 저절로 났다.

둘러본 땅은 온천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고 삼 년 정도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땅이었다, 하지만, 도심과 가까운 데 위치해 있어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작은 도랑도 흐르고 있어서 농사짓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이 보였다.

다만 삼 년 동안이나 농사짓지 않고 방치해둔 묵은 땅이라, 땅이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마음잡고 개간하려면 여러 날이 필요할 것 같았다.

▲ 삼년동안 방치되었던 묵정밭
ⓒ 정병진
그 묵정밭의 주인인 김씨 할아버지는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마을의 일을 도맡아보시던 신망 있는 일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우리 취지를 잠깐 말씀드렸더니 두 말없이 밭으로 개간해 쓰라고 허락해 주신다.

김씨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의 농사체험 학습장으로 쓰려는 것이라면 자기가 현재 농사짓는 땅이라도 떼어줄 용의가 있다고도 하셨다. 하물며 묵은 땅이야 얼마든지 무상으로 사용하라고 선뜻 내주신 것이다. 이토록 쉽게 밭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이런 어르신을 만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다.

몸이 불편하고 바쁘신 와중에도 안내를 잘 해주신 오씨 할아버지나, 육십 평 이상이나 되는 땅을 무상으로 내주신 김씨 할아버지 두 분 모두 보기 드문 훌륭한 분들이셨다. 그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성실하게 농사를 잘 지어야할텐데 벌써부터 조바심이 인다.

그 길로 돌아와 삽, 괭이, 호미, 낫 같은 농기구부터 구입해 두었다. 그리고는 퇴근하자마자 득달같이 밭으로 달려가 진입로를 확보하고 괭이로 파는 데까지 땅을 파보았다. 그래봐야 한 시간 동안 불과 두세 평 남짓한 밭을 만들었을 뿐이다.

땅이 바위덩이마냥 단단하고 돌멩이들도 많아 파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쑥들만 무성히 자란 밭을 다시 일구면서 머지 않아 채소가 자라는 밭을 상상하니 힘든 줄 몰랐다. 이번 주 수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와서 땅도 파보고 풀도 베고 하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