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까나깔레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초등학생 정도의 차장
까나깔레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초등학생 정도의 차장 ⓒ 함정도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여 버스와 돌무쉬(미니버스)를 번갈아 타며 도착한 곳이 '까나깔레'였다.

오후 5시쯤 바닷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창밖에 잔잔한 지중해가 보인다. 바람이 제법 부는데도 파도는 전혀 없다. 이 동네 일기예보에는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고 파도가 3cm정도로 일겠습니다"하고 방송할게다. 바다에 바짝 붙은 공원에 꽃을 심고 의자를 갖다 놓은 걸 보니 바다의 풍광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바다를 무서워하며 연안에서 조개나 캘 때 저들은 돛달고 돌아다닌 것을 이해하겠다. 근데 이 호텔에서 저녁도 준다고 한다. 배낭여행자에게는 한끼 식사비도 어디냐며 횡재한 기분이다. 음식도 배낭여행자에겐 호화로울 정도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트로이는 이곳 발음으로 트루바(Truva)라고 한다. '트루바'라고 쓴 버스회사 이름도 보인다. 우리 일행을 본 택시 기사가 따라오며 트로이까지 왕복 80달러를 내라고 한다. 우린 처음부터 택시를 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고 우릴 계속 따라오며 흥정을 했다.

60달러 50달러 40달러까지 가격은 내려가고 있었다. 이 아저씨 왈 "트로이 가는 돌무시 정류장은 이곳에서 너무 멀어 걸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어디서 거짓말을? 후후. 론리플레닛 지도에는 이 부근이 확실한 것 같다. 우리의 태도가 택시를 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는지 그 아저씨는 돌아가 버렸다.

길에서 마주친 청년이 우리를 그 곳까지 직접 데려다 주겠단다. 고맙게도. 이렇게 허둥지둥 하다보면 용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덕분에 시내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작은 도시 구석구석 지리를 파악해 버렸다.

정류장에 다 왔다는 청년의 말에 아무리 둘러 보아도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돌무쉬 오트가르가 어디에 있냐고? 터어키 청년이 "다리 밑에" 하고 소리쳤다.

순간 머리가 혼란스럽다. 다리밑?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다리 밑은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 무슨 버스정류소란 말인가? 그러나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나타났다. 다리 밑에는 수십 대의 돌무쉬(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겨우 찾았다는 안도감에 다리 밑으로 내려가니 웬 일본 할아버지도 트로이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4달 계획으로 세계일주 중인데 겨우 한달 되었단다. 거의 노숙자 수준의 옷차림인데 유창한 영어로 6-7달러 정도의 도미토리(다인실)에서 자면서 1달러짜리 아침을 먹는다고 자랑이다. 대단하다. 드디어 돌무쉬가 출발했다.

트로이 가는 돌무쉬(TRUVA라는 글자가 보인다)
트로이 가는 돌무쉬(TRUVA라는 글자가 보인다) ⓒ 함정도

돌무쉬 정류장에서 만난 터키 여인
돌무쉬 정류장에서 만난 터키 여인 ⓒ 함정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어드>에서 묘사한 트로이 전쟁은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최근 할리우드에서 다시 영화로 개봉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트로이에 도착하니 바람이 무지 매섭다. 이럴 수가. 눈앞의 넓은 들판은 온통 파헤쳐 놓은 발굴 현장만 보인다. 트로이 1기에서 9기까지 각 시대별로 구분했는데 그 중 일부만이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트로이 성벽
트로이 성벽 ⓒ 함정도
오래된 돌들만 들판에 가득 뒹군다. 트로이의 영광은 이 곳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지중해에 연한 보잘것없는 이 곳 시골마을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발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호메로스의 힘이란 말인가? 신화의 힘이란 말인가? 트로이의 영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할 몫인것 같다.

트로이 목마
트로이 목마 ⓒ 함정도
바닷 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있는 이곳에 목마만 우뚝 서 있다. 목마로 인해 멸망한 트로이가 멸망의 원흉인 목마를 이곳에 세워 놓은 것이 아이러니하다. 어디에선가 들릴 듯 한 트로이 왕자 헥토르의 절규를 뒤로 하며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트로이 입구 카페에서 애플티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돌무시를 기다렸다. 카페 주인은 영어가 유창하고 행동이 자유로워 보였다. 일본 할아버지가 무슬림이 술 마시고 자유롭게 살아도 되냐고 물었다. 터키할아버지 왈 "조상이 무슬림인 걸 내가 어쩌냐"고 그런다. 그러면서 무스타파 카말의 개혁으로 문자를 로마자로 사용하면서 코란은 못 읽는단다. 또 여성의 스카프는 종교라기보다는 관습이고 바람이 많이 불어 편하니까 쓴단다. 이해가 가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터키 초등학생들과 줄을 서서 케밥을...
터키 초등학생들과 줄을 서서 케밥을... ⓒ 함정도
까나깔레로 돌아와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근처 학교에서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반쪽 짜리 케밥을 파는 가게 앞에 줄을 선다.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양도 적당할 거 같아서 (이 동네 한끼 양은 정말 많다) 나도 줄을 섰더니 아이들이 외국인이라며 소리지르고 난리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국적을 초월한다. 아이들은 생김새와 말이 다른 나를 신기한 듯 에워싸고 즐거운 표정들이다.

환호하는 터키 초등학생들
환호하는 터키 초등학생들 ⓒ 함정도
내가 카메라를 들자 모두 카메라 앞에 열광한다. 웃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딜 가나 아름답다. 이곳 초등학교 학생들은 영어를 배우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를 알아듣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언어가 무슨 소용이랴? 얼굴 표정만 보아도 바디랭귀지만으로도 통할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너 이스탄불로 돌아가고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