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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지기 친구 같은 차의 앞 모습
10년지기 친구 같은 차의 앞 모습 ⓒ 이양훈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는 95년식으로 만으로만 따져 봐도 꽉 차게 9년이 다 된 그야말로 '고물차'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기 저기 손을 봐 주어야 하기도 하고 소모품을 교환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솔찮게 돈이 들어간다. 결정적으로 심각하게 교체를 생각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빗물이 새는 것' 때문이었다.

빗물이 차량의 내부로 흘러 들어와 트렁크에 고이기도 하고 시트를 흠뻑 적셔 놓기도 한다. 그걸 말리느라 시트를 뜯어서 일주일 가량 햇볕에 말린 적도 있으나 그때뿐이다. 시트에서는 항상 장마철 때와 비슷한 꾸리꾸리한 냄새가 난다. "세상에 빗물이 새는 차가 다 있어?"하고 놀랄 수도 있겠으나 의외로 빗물이 새는 차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고치는 작업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도 이 차를 굴리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주 좋은 조건의 새 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할인이 많이 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유리해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고민 끝에 사자고 한다. 알게 모르게 빗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탓이리라.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견적을 뽑아봐도 지금 나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할부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차를 바꾸겠느냐며 "사고를 치자!"고 한다.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해 큰 맘을 먹고 신청서를 냈다. 할인되는 것 때문에 당장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고 일단 당첨이 되어야 본계약을 한단다. 그래서 일단 신청서를 먼저 냈다.

그리고는 일이 있어 바로 그 '고물차'를 타고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를 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 유리창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했다. 차 안이 조용한 데다 나 혼자뿐이라 그만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면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게 되었으니 이 차와 함께 보낸 지난 10년 세월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처음 새 차로 우리 집에 왔을 때 집 사람이 네 바퀴를 모두 두들겨주며 안전을 기원했던 것이며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 온 가족이 몰살할 뻔했던 일, 어렸을 때부터 "너보다 형!"이라고 가르친 덕에 큰 아이가 차를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이한 현상, 운전석 쪽 유리창이 한번 내리면 잘 올라가지 않아 겨울에 고생했던 기억 등등….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치 형편이 어려워 우리 집에 맡겨졌다가, 미운 털이 박혀 아무 잘못도 없는 친척 동생을 내치는 심정이 되었다. 마음이 심히 어지러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못할 짓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서둘러 새 차를 신청했던 신청서를 철회했다.

뒷모습. 아마추어 무선용 안테나와 콜싸인이 보인다.
뒷모습. 아마추어 무선용 안테나와 콜싸인이 보인다. ⓒ 이양훈
퇴근 후 집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하니 조용히 웃으며 나 없을 때 아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들려 준다.

"큰 애하고 어쩜 그리 똑같어!. 차 바꾼다고 했더니 당신 큰아들이 엄마는 우리 차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하데!"

말은 그리했지만 나는 집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만일 이번에 차를 바꿔 버렸다면 여성 특유의 섬세함까지 겹쳐 나보다도 훨씬 더 아쉽고 서운해 했을 것이다. 일단 빗물이 새는 이 차를 앞으로 몇 년 더 타기로 결정을 하고 나자 가슴은 왜 이리 뿌듯하고 개운한지, 마치 훌륭한 선행이라도 한 느낌이다.

우리 동네에는 서울 모 대학의 교수님이 한 분 계신다. 교수노조의 핵심 간부이기도 해 일반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하고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 활동을 같이 했던 인연으로 친숙하기도 하다.

그 분의 차는 우리 것보다 크기도 더 작거니와 나이도 훨씬 더 먹었다. 오며 가며, 주차되어 있는 그 '귀여운' 차를 볼 때마다 그 교수님 가족들이 그 작은 차가 자신들을 태우고 큰 고장 없이 잘 다녀준 것에 대해 더없이 고마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역시도 오래도록 이 차에 대해 고마워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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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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