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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힘들게 살고 있는 여성이 너무 많잖아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정말… 이왕에 홍보대사가 되었으니 제대로 한번 해볼 겁니다.”

한국여성재단에서 홍보대사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해도 장미화(54)씨는 '지금 벌여놓은 일도 많은데 또 무슨 활동인가' 싶어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안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자신도 밑바닥 삶까지 경험해본 '소외된 여성'이었기에,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잘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

그는 결혼 3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후,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친한 연예인 동료에게 거액을 사기 당해 모든 재산을 잃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다. 세상이 인정하는 ‘아픈 일’들을 연거푸 겪자,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남은 인생에 비상구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막막함은 그를 자주 죽음의 충동과 맞서게 했다.

“세상을 버리고 싶었죠. 그때 우연히 4명의 소년소녀가장들을 만났어요. 반신불수의 장애 부모를 가진 아이, 끼니 걱정에 허덕이는 아이, 거주지가 없는 아이 등 아이들의 힘든 삶을 보면서 ‘어린 저 아이들도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고 있구나, 나도 힘을 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4명의 아이들에게 월세방을 얻어주기 시작했다. 방을 얻어주고 나니 아이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소년소녀가장 돕기 바자회, 일일찻집은 물론 디너쇼도 크게 열었다.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한 아이당 1년에 1000만원씩 들기 때문에 부지런히 돈벌 수 있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활동때도 간간이 봉사 … "소외 여성 힘 돼줄 터"

과거 연예계 활동을 활발히 할 때도 간간이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남을 돕는 일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봉사활동을 권할 때마다 행사장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고, 성의 표시로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것은 진정한 봉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아야 도움을 받는 사람도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죠.”

식구가 되어 지속적인 사랑을 주고 싶은 욕심에, 입양기관에 입양에 관한 문의도 했지만 그 때마다 ‘결손가정은 그럴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입양에 실패하자, 그는 강아지 두 마리를 분양해 정성껏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소외된 여성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가슴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달래보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여성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베풀고 싶어요. ‘누구를 돕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돕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며 웃음 짓는 장미화씨.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그의 삶에서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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