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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인연이 아닌 것은 없다.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들은 인연의 가느다란 실타래를 잡고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그 연이 좋던지 나쁘던지 내 전생의 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불가(佛家)에서 말한다.

우주 삼라만상의 일체 존재는 모두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멸하고(因緣生滅),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결과가 있을 뿐이라는데.

나는 지금 미얀마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미얀마라는 나라와 어찌저찌 연이 닿아서 나와 내 가족들이 이국만리 미얀마라는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와 연을 맺으며 문득문득 내가 왜 내 조국을 떠나 이 자리에 있어야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럴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언제나 "인연"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게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와 맞는 땅이 있다고 한다. 어느 지역을 가보면 처음 와본 곳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고 푸근한 느낌을 갖게되는 그곳이, 전생론(前生論)을 떠나서 나와 맞는 지역이라고 하는데, 나도 4년 전 처음 배낭여행으로 이곳 미얀마 땅을 밟았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미얀마의 1000년 된 파고다들이 산재한 유적도시 버강(Bagan)을 갔을 때는 머리가 띵하리 만큼 정말 강한 이끌림을 받았다.

▲ 미얀마의 천년고도 버강의 일몰
ⓒ 정범래

그곳에서 우연히(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만난 미얀마 스님에게 나의 전생에 관한 말을 듣기 이전에 받았던 이런 느낌은 무엇인가로 나 자신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너무 혼란스러웠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족들과 미얀마의 삔따야(Pindaya)지역을 여행한 후 이것의 실체가 바로 '인연'이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삔따야는 석회암으로 된 동굴이 있는 해발 천미터의 지역인데 약 1000여년 동안 조성된 8000여기의 부처님과 파고다들이 모셔져 있는 삔따야 동굴(Pindaya Cave)이 유명한 곳이다.

▲ 삔따야 동굴의 부처상들
ⓒ 정범래

나의 가족들은 아웅반(Aungban)에서 삔따야로 가는 길의 완만한 구릉과 능선으로 인해 대관령 목장을 온 듯한 착각 속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를 설렘으로 이상하리 만큼 가슴이 뛰고 마음이 진정 되질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차창으로 보통 미얀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파고다 하나가 나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는데 같이 동행한 현지에 사는 미얀마인 운전기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기 파고다에 등신불(等身佛)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스님의 성함은 '우 아자야'.

이곳 지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스님이셨는데 위빠사나 명상수행을 하신 분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에 72세의 일기로 입적하셨으며 입적하시기 전에 본인이 며칠 후면 죽을텐데 화장하지 말고 그냥 그곳 파고다에 시신을 놓아두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꼭 봐야 할 것 같다는 이끌림에 끌려 나는 그곳을 가보자고 했다. 약 30분 후, 야트막한 산 위의 파고다에 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미얀마의 파고다 였지만 나에게는 숨막힐 것 같은 긴장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우 아자야 스님 앞에 섰다. 입적한 지 25년이 지났건만 방부처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일부 인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 미얀마 등신불 우 아자야 스님
ⓒ 정범래

현지인의 말로는 시신이 부패되는 냄새도 없이 살이 날아가듯 사라졌다고 하고 부처님과 고명하신 스님들의 특징인 뼈가 연결되는 부위가 갈고리 같이 얽혀있어서 지금도 시신을 여러 사람이 들면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들린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사진 속의 우 아자야 스님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닮아도 너무 닮았다. 설악산 백담사 스님이셨던 25년 전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아니 내 착각이었을까? 그러나 몇 번을 보아도 내 할아버지다. 아니다 닮았지만 내 할아버지가 아니다.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틀림없다. 내가 미얀마에 살게 된 것도, 내가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도 모두다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미얀마는 "인연의 땅"이다. 이 나라와 인연이 닿지 않으면 미얀마를 올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보게되는 직·간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도 나와의 인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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