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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 ⓒ 한겨레 신문사
세상은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나이에 맞게, 때로는 지위에 맞게, 때로는 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라는 제각각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해 버리곤 한다. 특히 “여자는 이러해야, 이러하면 안 된다”라는 사회가 갈라놓은 경계선으로 인해 애꿎은 여자들만 곤욕을 치러야하니 왠지 불공평해 보인다.

이러한 여성들을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십이 아닌 본격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여 꼬치꼬치 논박을 펴는 책이 나와 관심을 끈다. <씨네21>의 전 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조선희의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한겨레 신문사)>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인터넷 여성 포털 사이트 <여자와 닷컴>에 연재했던 것을 바탕으로 그녀가 직접 직장생활하면서 들었던 말들 가운데 뽑은 것들 위주로 펴냈다. 특히‘여자들은 리더십이 부족해, 시키는 일은 잘하지’부터‘똑똑한 여자는 골치 아파, 튀는 여자는 못 봐 줘’ 등 까지 여자라면 평소 한번쯤, 아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전해 준다.

특히 기자, 소설가, 엄마, 아내로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그녀의 다양한 경험들이 이 책의 주된 원천이 돼 풍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이미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통해 많은 여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그녀는 이번에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게 대한 성차별적인 생각들을 꼬집어 여성들에게는 후련함을 선사하고, 남성들에게는‘뜨끔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여자들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녀는 평소 자주 듣는 말 중 “여자들은 리더십이 부족해, 시키는 일은 잘하지”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리더’라는 사람들은 죄다 남자였다. 이것은 2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남성권력사회’의 본질은 여전하다”고 꼬집는 조선희씨.

그녀는 한국 여자들은 남자들이 수 천년동안 길러온 리더십을 고작 수 십년동안 어깨너머로 학습해 왔고, 이로 인해 여자들은 리더십이 없는 게 아니라 억압돼 있을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건대 수 천년동안 남자는 리더와 가부장으로 길러졌고, 여자는 노예와 모성으로 길러져 왔다.

사내 아이는 자라면서 무수히 “사내대장부가 그만한 일에”,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번쯤은” 식으로 고무 격려되고, 계집 아이는 자라면서 무수히 “여자가 어디 감히”, “여자는 그저” 식으로 기죽여졌던 것이 지금의 이러한 편견들을 낳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여기서 여자들이 물러설 수는 없다.

조선희씨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여자들 스스로 리더십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어 여성 리더십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대가 물러가고 냉전체제가 해소되면서 조직문화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다"

덧붙여 그녀는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틈타 여성들 스스로가 리더십을 기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 하나 여자들을 둘러싼 거짓말 중의 하나는 “여자는 섬세한 게 장점, 여성다움은 최고의 무기다”라는 것이다. 그녀는 책임 있는 직책에 있는 사람의 입에서 여성의 섬세함을 칭송하는 발언이 나올 때 귀가 불편하다고 전한다. 그 섬세함의 속뜻이 혹시 ‘작은 것’, '덜 중요한 것’,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 때문.

여자는 “리더십이 없어”라는 말이 거칠고 폭력적이라면 “여자는 섬세해”는 부드럽고 완곡한 수사인 셈이다. 또한 여자하면 자동으로 섬세함이라는 단어를 연결짓는 태도는 구태의연한 관습이다.

남자들 가운데도 부드러운 사람과 터프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섬세한 여자가 있으면 대범한 여자도 있다. 이러한 섬세함을 여성적인 것으로 특화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는 섬세함이 필요한 부문에서 일할 수 있으며, 섬세함이 필요없는 부문에는 적절치 않다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남자들은 “여자에게 험한 일을 어떻게 시키냐”, “노가다처럼 힘이 드는 일을 여자가 어떻게 하겠어”라는 호의어린 배려처럼 보이는 이런 말들도 결국은 여자들의 행동영역을 제한하는 수사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약방의 감초’처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부터 일상 속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가 “똑똑한 여자는 골치 아파, 튀는 여자는 못 봐줘”라는 말이다. 여자는 얼빵한 맛이 있어야지라거나 똑똑한 여자는 골치 아파하는 말들은 모두 머리는 남자에게만 있고, 여자는 가슴만 있다는 식의 육체의 분업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던 시절의 유산이다. 지적인 능력은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와 관련해 조선희씨는 “손발뿐만 아니라 머리 속에 든 것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전문직에서라면 똑똑하지 않은 여자는 골치 아파”라며 “더구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직책에 있을 때 어떤 책임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여자가 만일 똑똑하게 일처리를 못할 경우 밀려나는 건 한순간이다”라고 반박한다.

이외에도 그녀는 영화 잡지기자답게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가하면,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잊지 않는다. 이 한 권의 책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다.

‘일하는 남성’이라는 말이 없듯이 더 이상 ‘일하는 여성’이라는 말도 없는 날이 오길 바라며, 조선희씨가 말하는‘여성들에 대한 거짓말’ 속에 숨겨진 진실을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깨달으며, 여성과 남성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함께 어깨를 겨누며 당당히 경쟁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

조선희 지음, 한겨레출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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