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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만 따라! 들킬라.
야, 그만 따라! 들킬라. ⓒ 김용철

마당 퇴비자리엔 김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늦은 봄 햇살 맘껏 내리쬐니 아이는 졸음을 참질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나른한 오후 마룻바닥에서 봄을 즐기고 있는 사이 둥우리에 마지막으로 넣어 갓 깨어난 병아리를 몰고 다니는 암탉 눈매가 무척 매섭다. 털도 쭈뼛 서 있다.

"쏙쏙쏙" "삐약 삐약"

별 걱정 없이 어미닭을 따라 다니는 병아리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하루살이나 깔따구 따르다가 지친 듯하다. 곧 그릇에 담긴 물을 조금 빨아 입에 물고 하늘보고 다시 물 한 모금 마신다.

벌써 날개에 털이 돋아난 언니들은 담장 밑에서 푸릇푸릇한 풀잎을 뜯어먹느라 여념이 없다. 아직 어미 옆을 떠나지 못하는 갓 태어난 노오란 병아리는 깃털 올 하나마다 솜보다 보드랍게 살랑이는 바람에 날린다. 세상에! 개나리꽃 마냥 이렇게 귀여운 짐승이 또 있을까.

소년은 눈을 한번 비비고 까만 고무신을 신고 어기적어기적 마당으로 걸어 내려갔다. 잔뜩 긴장한 어미 닭을 경계하며 '삥아리'를 들어 '뼝아리' 그 오밀조밀한 발을 어루만지며 손바닥 위에 병아리 한 마리를 올려서 갖고 놀고 있었다. 그마저 가능한 것은 평소 알을 품었을 때부터 모시(모이의 사투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된 강아지가 괜스레 암탉 옆으로 갔다. 그 때였다. 암탉이 풀쩍 날아 사정없이 쪼아대는 통에 "깨갱깨갱! 깨개갱! 깽!" 강한 모성 앞에 하룻강아지는 호되게 혼쭐나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처량하게 지어미를 찾는 젖먹이 강아지가 불쌍타. 이미 상황이 끝난지라 다른 강아지 새끼에게 젖을 뜯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힘든 어미 개는 별 도움이 되질 못한다. '뭔 일 있었냐'는 듯 나 몰라라 한다.

우리집은 강아지가 잘 자라지 않았다. 자랄 만 하면 병이 돌았다. 적당히 컸다하면 쥐약을 먹고 돌아와서는 게거품을 물고 사방을 쓸고 돌아다니다 내 어린 맘을 마구 뒤집어 놓고 집 나가서 죽게 되니 강아지와 친하게 지낼 사이가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난 수염 길게 늘어뜨린 산양처럼 생긴 흰 염소와 구정물 먹고 "꽥꽥" 소리질러대는 까만 돼지, "음머 음머" 울어대는 송아지와 더 친했다.

또한 그들을 돌보던 착한 아이는 닭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루가 멀다고 마당을 쓸어 말끔히 정돈을 해놓아도 자꾸 헤집어 놓았다. 마당 곳곳을 심란하게 만들어 놓는 닭이지만 그리 밉지는 않다. 그 맛나던 달걀로 닭고기로 보답하질 않았던가.

이른봄부터 싹이 변하는 색깔에 따라 어깨죽지가 도톰해지면서 형형색색 찬란한 색으로 바꿔 입는다. 멀리서 보아도 볏이 또렷해져 암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 놈들이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의 꿈도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세상에 대한 아무 걱정이 없는 꼬마였다. 들로 산으로 나가 놀다가 지치면 아무 때고 돌아와 잠을 자다 일어난다. 어른들이 없으면 울다가 또 잠이 들고 누나가 없으면 누나 찾으러 나갔다가 '찔구', '삐비' 먹고 돌아오곤 했다.

"아가 아침 밥 묵어라."
"응? 누나 지금 벌써 아침이여?"
"그려. 아침이랑께."
"참말이제?"
"하먼. 니가 봐라. 해가 뜨쟎냐?"

바깥은 발그스레한 햇살이 한껏 내리쬐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그걸로 분간하기 힘들었다. 으스름한 저녁 밥 먹으라고 깨우면 엄마 젖 여섯 살까지 빨았으니 뭘 알겠는가. 재차 어머니께 여쭙기로 했다. 매번 속았던지라 다시 확인을 하는 것이다.

"엄마 시방 아직(아침의 사투리) 맞제라우?"
"니기 누나가 거짓깔(거짓말) 틀었당게."
"이씨. 카만 안 둘 것이여."
"누나~"
"얼렁 밥 묵으라고 그런 것이랑께."

아름답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어른들과 형, 누나는 못자리에 피를 고르러 나갔다. 뒤따라갔다가 이내 돌아오고 말지만 소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신작로를 지나고 다시 고샅길로 접어들자 골목 어귀부터 담장이 죽 이어진다.

담 위에 올라 병용이네 집을 들여다보았다. 앞뒤로 마루가 있는 동무 집 뒷마루엔 막걸리만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갈 뿐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다.

"병용아~ 병용이 없냐?"

속으로 '씨벌롬들 다 어디로 내뺀 것이여? 그려 지기들끼리 놀라면 놀아보라지'하며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담 위에 줄줄이 덮어둔 '용마람'이 흘러내리는 걸 간신히 피하여 아래로 내려오던 그 때였다.

"야색꺄 뭣허냐?"
"엉? 아녀 아무 것도…."
"뭐가 아녀 색꺄?"
"아니랑께."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일단 같이 놀 수 있는 아이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니기 도롱테 있냐? 우리 성아가 도롱테 바퀴 한나 빼왔당께."
"어디서야?"
"나도 몰라."
"글면 같이 보러갈텨?"
"가보장께."
"자, 뛰어!"

도롱테는 굴렁쇠다. 아무 거나 쇳덩어리로 된 둥그런 것은 굴렸다. 쇠로 된 것이 없으면 대(竹)로 둥글게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철사를 오그려 채를 만들어 돌 사이사이를 피해가며 "돌돌돌" 굴리고 다닌다. 얼마나 재미가 대단했던가. 그 하나의 유혹으로 셋, 넷으로 나뉜 골목 대장 친구들에게 환심 정책은 빛을 발하곤 했다.

달음질도 잠시였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멀지 않다. 하지만 짧은 그 고샅에도 갖가지가 우릴 붙잡는다. 빨간 기왓장 콩콩 찧어 지렁이나물과 비름나물, 감나무잎도 훌륭한 나물 반찬재료다. 나물을 "쫑쫑" 썰어 고춧가루를 섞어 비벼서 깨진 접시에 반찬을 담아 놓는다. 밥은 모래 가루다. 물 한 그릇도 국으로 떠다 놓는다.

"애들아 밥 묵어라."
"알았어라우."
"냠냠냠"
"비벼 먹을 거냐?"
"아녀라우 국 말아먹을라요."
"거시기 엄마! 당신도 누룽지만 묵지 말고 밥 좀 떠요."
"예."
"난 싱겁구만. 소금 좀 더 줘보더라고."

여자아이들 없이도 소꿉놀이를 잘도 한다. 소꿉놀이 판을 지나 몇 걸음 더 가면 땅에 못을 박으며 땅 따먹기를 하던 반반한 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늘 주머니나 손엔 못 하나가 들려 있게 마련이다.

담장을 타고 올라 퍼져서 노오란 하늘수박을 대롱대롱 매답니다.
담장을 타고 올라 퍼져서 노오란 하늘수박을 대롱대롱 매답니다. ⓒ 김용철

약간 경사진 곳을 올라 10여 미터 더 오르면 병용이 담벼락 양달쪽으로 하늘수박이 기다리고 있다. 봄볕을 얼마나 쬐었던지 골목 양쪽 흙바닥엔 집집마다 떠내려온 거름 물을 먹고 파랗게 쑥쑥 자라 벌써 풀밭이 되었다. 지천인 '사위질빵'은 담벼락을 절반이나 타고 오르고 있다. 고샅길에 비오는 날 코스모스라도 옮겨 심으려면 호미질 된통 해야할 판이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우리 소관도 아니다.

오로지 담을 타고 "뽀루루" 올라가는 하늘수박 어린 넝쿨만이 우리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늘수박'! 이 얼마나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만드는 이름인가. 우리의 동경 대상은 하늘이었다. 더군다나 언제고 꼭 한번 서리를 해서라도 먹어보고 싶은 것이 수박 아니던가.

그런데 '하늘'에 '수박'까지 함께 합성된 이름이니 오죽하겠는가. 어린 우리들 생각엔 꿈만 같은 존재였다. '그래, 하늘로 수박이 올라가면 그 땐 반드시 우리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서어서 자라 알찬 열매를 맺기를 바라곤 했다.

동네 중앙에 있던 골목을 나중에 세상을 알고는 우린 명동(서울 明洞처럼 중앙이고 번화하다해서 붙임)이라 했다. 명동 골목엔 동무들보다 두 살 많은 육남이를 제외하고 일곱 명 중 다섯이나 몰려 살았으니 형근이와 병주도 함께 놀아보려면 그 고샅으로 원정을 오지 않고는 좀이 쑤셔 하루도 보내기 힘들었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던 아이들은 성호를 따르던 애들이 해섭, 형근, 병문이까지 넷이었다. 반면 병주, 병용이 사촌 형제는 늘 함께였다. 나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이 어떻게 하늘수박을 차지하는가를 객관적인 처지에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성호: "야 니기덜 돌부리에 치이지 않게 우리꺼 잘 간수해라."
해섭: "요롷게 타고 올라가게 나무대기 한 개 올리까?"
병문: "함믄. 글고 가상에다 독자갈을 주루룩 쌓아두자고."
성호: "올 가실에 하늘수박 열리면 한 개씩 줄텡께 내말 잘 들어야 헌다. 알았제?"
형근: "그려."

노랗던 하늘수박 하눌타리 싹은 부드러운 초록색으로 바뀌어 아이들 마음을 부풀게 한다.

성호: "인자 다 했응께 구슬치기나 하로 가자."
해섭: "알았어."

그 때였다. 평소대로 성호 의중을 가장 잘 알아차리던 해섭이가 바로 옆에 있던 병용이 형제들의 하늘수박 넝쿨에 손을 가져갔다. 손톱으로 무지막지하게 뜯는다. 곁에서 일어나려던 아이들도 돌을 들어 싹을 "콩콩콩" 찧고 있다.

한 발짝 사이로 나란히 더덕더덕 나있던 하늘 수박 싹 중 한 무더기는 그야말로 작살이 났다. '저러다 걸리면 서로 대판 싸울 것인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걸 나도 보았으니 나라고 온전하겠는가. 괜스레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성호: "야 얼렁 튀어새꺄."

달음질 쳐서 당산나무 아래에 다다르자 신신당부를 한다.

성호: "니기덜 우리편이 그랬다는 말 입 밖으로 내기만 해봐. 그 땐 콧물도 없어. 같이 안 놀아줄 것이여."
아이들: "알았어야."

그날은 그렇게 가는 줄 알았다. 염소를 데리러 냇가에 갔다오는 동안 나는 또 한번의 만행을 보았다. 병주가 큰댁에 갔다오면서 성호 편 하늘 수박을 쥐어뜯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걸 먼발치에서 걸음을 늦추며 지켜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데는 대장이 있다. 시골 명동 골목에도 골목대장이 있었으니 어떻게든 아이들을 꼬드겨 제 편으로 삼으려했다. 그런 아이들을 부리는 재미도 쏠쏠했거니와 반대로 그쪽에서 빼오는 것도 기가 막히다.

어떨 때는 막걸리 술독에서 몰래 거르지 않은 맑은 청주를 한 사발씩 돌리기도 한다. 특히 병주는 이장 아들이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보건소에서 나눠주던 길쭉한 하얀 풍선-콘돔으로 아이들 맘을 쉽게 되돌려 놓기도 했다.

그렇게 공고하던 찰떡 조직력도 선물공세엔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니 어느 날은 네 명이었다가 어쩔 때는 단 둘 또는 외톨이가 되기도 하니 어른들 세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대장 안 볼 때는 다른 패에 가서 골목을 쓸고 다니는 그런 패거리 말이다.

고개를 빼꼼 내밀면 다시 뜯기고, 다시 조금 자라면 또 뜯기기를 반복했다. 아이들뿐이었으면 다행이다. 일하러 오가던 소가 뜯어먹고 마실 나온 닭이 가만 놔두질 않으니 온전할 리 없었다.

그렇게 공을 들였다가도 오디, 산딸기, 버찌 익으면 아이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토록 시달리며 울타리와 담을 기어오르던 한울타리는 7월부터 하얗게 쫙쫙 갈라지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가을엔 노랗게 익어서 아버지 담을 녹이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어린 시절 골목길-고샅길은 우릴 키웠다. 집 앞 사립문을 나서면 바로 고샅이다. 고샅길 양옆으로 죽 늘어선 담벼락. 아래 부분은 돌만으로, 위 부분은 돌과 황토를 섞어 올렸다. 꼭대기엔 담을 따라 쭈욱 용마람을 올려 비가 들이치지 않게 단단히 묶어 세워둔 전형적인 초가 한옥(韓屋) 마을.

동무들의 악다구니 잦아들지 않던 그리운 놀이터 골목 고샅에서 추억과 꿈을 먹으며 자랐다. 겅중겅중 뛰기도 하고 담벼락 위에 올라 가시내들 무엇 하는가 훔쳐보기도 했던 놀이와 소통의 장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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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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