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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 김미정
여성부는 3월 31일 국내 집창촌(일명 사창가)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07년부터 전국의 사창가는 단계적으로 폐쇄된다. 이에 앞서 3월 2일에는 성매매알선등범죄의처벌에관한법률과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성매매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성매매 방지법의 제정으로 그동안 윤락행위등방지법에 따라 성매매 구매자와 함께 처벌받던 성매매 여성은 앞으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며 성매매 업주나 알선 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강화됐다.

성매매방지법에 대해 여성계 일부에서는 자발적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의 범주에서 제외되거나, 피해자 규정에 선불금에 의한 강요 조항이 빠지는 등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번 관련법 제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성매매방지법을 통해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보호하겠다는 취지에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법안이나 종합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성매매 현장의 여성들을 과연 이 법이 지켜줄 수 있을까.

성매매방지법이나 성매매방지 종합 대책은 기본적으로 성매매를 반대한다. 성매매를 반대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성매매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이고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매매 방지법을 통과시켜도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매매와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우리 사회는 성매매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또 성매매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성매매를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은 보호받기 힘들다. 아무리 성매매 행위와 성매매 여성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려 해도 성매매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것이라면 성매매 여성도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존재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이성숙·책세상·2002)는 기존의 서구 페미니스트의 성매매 반대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이 글에서는 책에서 사용된 '매매춘'이라는 용어 대신 '성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성매매는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성매매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이론에 대한 비평서인 셈이다. 동시에 성매매에 대한 우리의 위선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을 분리해 이분법적인 논리를 펴왔다고 주장한다. 즉,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이므로 추방되고 폐지되어야 할 대상이라 규정하는 한편, 성매매 성립의 주체인 성매매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여성 혐오주의에 기초한 남성 위주의 전통적인 이중 규범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성매매 추방 이론은 결국 매춘 여성에 대한 규제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하며,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성매매 여성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낙인찍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페미니즘과 계몽주의 페미니즘

성매매에 대한 논의 중에서 저자의 첫번째 비판 대상은 도덕적 페미니즘이다. 도덕적 페미니즘의 관점은 성매매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 형성의 주요 구성 요소인 성매매 여성의 권리는 옹호하지만 성매매 자체는 악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매매는 인정하면서 성매매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기 거부하는' 남성 위주의 도덕주의자들의 견해가 비논리적이듯, '성매매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 존재로 인식해야 하지만 성매매는 추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비논리적이라도 비판한다.

저자는 성매매와 도덕성과의 관계 또한 성매매는 성 행위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중립의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성매매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도덕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의 도덕성을 따지려면 성매매 여성이 아닌 남성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매매를 찾는 남성들의 75%가 기혼남인 점을 볼 때, 도덕적 책임은 성매매 여성이 아닌 '결혼을 통한 성적 약속에서 일탈하는' 배우자에게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남성 위주의 도덕성에 매달리던 도덕적 페미니즘은 결국 성매매 여성들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존의 도덕 담론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두번째 비판 대상은 권위주의적 계몽주의(온정주의) 페미니즘이다. 이 논리의 핵심은 성매매 여성이 처해 있는 위험성 때문에 성매매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른 형태의 직업과 비교를 통해 이 주장의 비합리성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광산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은 늘 직업적인 위험을 안고 있지만 아무도 석탄 캐는 작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대신 그들이 안전하게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성매매에서 여성들을 제거하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제거하자고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정치학 이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성매매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매매는 계급 사회의 부산물이며, 사유 재산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몰락하면 성매매는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와 임금 노동을 동일하게 봄으로써 도덕주의 논리와 결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비평은 성매매 자체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비평이었으며, 성매매 여성은 일반 노동자와 달리 성과 계급에 의해 이중으로 착취당한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성매매는 자본주의 체제 이전에도 존재해 왔으며 사회주의 경제 질서를 따르는 국가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또 다른 관점으로, 페미니스트 정치학 이론은 성매매가 남녀 불평등의 권력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대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정치학자들은 '성매매는 남녀 불평등의 가장 극적인 예이며,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가장 노골적인 현장이고, 여성에 대한 남성 권력 행사의 극대화를 가져오는 정치적 조건'이라고 규정했다. (저자는 이 논리를 비판하기에 앞서, 물론 대부분의 성매매에서 성적 서비스 제공자는 여성이고 서비스 구매자는 남성이지만, 여성의 이성애를 위한 성매매 남성이나 레즈비언 성매매도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페미니스트 성매매 정치 이론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문화적·정치적 의미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성 노예'라고 암묵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모든 노동자는 그들의 특정한 능력이나 서비스를 상품화 하는데 성매매 여성이 성적 서비스를 상품화해 시장에 내놓으면 사람들은 그녀 자신을 파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런 논리의 가장 큰 오류로 당사자인 성매매 여성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섹스 노동자들을 가리켜 여성의 육체를 시장에 내다파는 성 노예라고 주장하는 반면,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성적인 서비스 또는 성 노동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결국 페미니스트 학자나 이론가들이 남성 주류 문화나 기득권에서 정해 놓은 개념과 논의들을 답습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를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성매매 여성을 옹호하고 있지만, 성매매가 잘못된 것이라면 성매매 여성들 역시 잘못된 존재로 각인되기 마련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로맨틱한 섹스와 상업적 섹스를 비교하며 성매매를 반대하는 감상주의적 페미니스트 이론이나 성매매가 고도의 상업화를 부른다는 금욕주의 페미니스트 이론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성매매의 근절, 성매매 여성의 근절?

그렇다면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성매매와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성매매가 과연 나쁜가'와 '성매매의 추방이 가능한가'가 그것이다.

성매매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성매매 여성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를 받는다는 측면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성 또는 사랑을 돈과 거래한다는 것 자체가 부도덕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과 술을 마시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고 저자는 묻고 있다.

과거 페미니스트 성매매 여성들도 "생계 수단의 매춘이 뭐가 잘못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성매매는 섹스에 경제적 대가가 오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금전적 대가'를 잘못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내와 성매매 여성 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시몬느 보봐르는 "아내가 한 남성에게 고용된 사람이라면, 매춘 여성은 일정액을 지불하는 여러 명에게 고용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앨리스 해밀턴은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한번의 거래로 전속 매춘부가 되거나 매번 거래를 해야 하는 프리랜서 매춘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아내들도 '합법적인' 성매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성매매가 섹스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받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논리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성매매 추방이 가능한가

'성매매의 추방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저자는 상업적인 섹스의 수요가 실질적으로 중단되지 않으면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 동안 성매매를 규제하는 엄격한 법령에도 성매매는 결코 근절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몰고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성매매가 사라진 사회는 '인간의 성적 욕구가 갑자기 사라졌거나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외부적인 수단을 이용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사회'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양쪽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론은 성매매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성매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성매매의 담론을 위해서는 성매매에 대한 이미지를 재창조하고 사회적인 가치와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성매매의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먼저 '건전한' 성매매를 위해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한다. 성매매를 범죄로 간주하는 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매매는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양성이 동시에 성매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매 여성들의 거주 공간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하며 어린이와 십대 매춘을 추방하는 정책과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성매매 담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리의 태도 변화를 꼽고 있다.

물론 매매춘의 합법화는 현실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 저자도 매매춘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가치와 태도를 바꾸는 것은 그 인식이 형성되어 온 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매춘 여성들이 겪는 고통도 그동안 계속될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매매춘의 추방은 더욱 현실감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아무리 엄격한 법으로 다스려도 매매춘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매매춘 여성들이 겪는 착취와 폭력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다.

유엔에서도 매춘 여성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성매매가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성매매 방지법이 성매매 여성들을 현실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성매매의 합법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이성숙 지음, 책세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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