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늦게 결혼을 했음에도 하느님께서 서둘러 딸을 주셨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 혹은 부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했던 때가 어제였던 것 같다. 이후 우리 부부는 4살 터울의 딸 하나를 더 두었다. 우리 나라 나이로 8살(일본 나이로 6살), 4살(2살)이다. 아이들의 이름은 찬진, 찬현이다.

일하는, 정확히 말해서 아직도 공부를 못 끝낸 나를 아내로 둔 남편은 결혼 이후 7년간 따뜻한 아침 한 번 제대로 먹어본 적 없다. 아이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보다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런 내가 또 한 번의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다. 정말 독하게(?) 말이다. 남편을 외기러기 마냥 혼자 두고, 두 딸과 함께 훌쩍 이곳 일본으로 와버린 것이다. 속으로는 무척 미안했지만 겉으로는 너무나 당당하게 큰 소리까지 치면서 일본으로 온 지 벌써 8개월이 흘렀다.

어린 딸들도 파란 바다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엄마의 감언이설에 속아 엉겹결에 생판 낯선 이곳 일본 후쿠오카에 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매일 파란 바다는커녕 아침 8시 30분에 어린이집에 갔다가 5시∼6시 경에 귀가하는 것이 아이들의 일상이 됐다.

그런 와중에 큰 아이가 소학교 입학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일본의 새학기는 우리보다 1달이 늦은 4월에 시작한다. 그래서 3월에 졸업을 하고, 4월에 입학을 한다. 우리 아이는 이틀전 졸업을 했다.

나야 한국에서 경험했던 졸업식 풍경만 기억하고 있어 동생인 찬현이가 언니를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 찬현이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멋을 한껏 내 주었다.

매일 바지만 입다가 예쁜 원피스를 입고 언니 졸업식에 참석하니, 기분이 좋았는지 찬현이는 유치원까지 가는 길에 계속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웬 걸! 원장 선생님께서 찬현이는 너무 어려서 입장이 안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졸업식 분위기를 생각했던 나에게 어린 아이의 입장을 막는 것은 의외였고, 한편으로 서운하기까지 했다.

아쉽지만 찬현이를 다른 선생님께 맡겨 놓고 졸업식에 참여했다. 앞 좌석은 아직 졸업이 아닌 호시구미(별반)와 이날 주인공인 쯔끼구미(달반)의 자리가, 뒤 좌석은 아이들 부모의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물론 단상 아래 옆 쪽에는 지역 인사들의 자리도 있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달반 친구들의 1년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됐다. 원장 선생님이 먼저 단상으로 올라오셨다. 사회자가 졸업하는 당사자들을 한 명씩 호명하면 그제야 아이들은 조그만 꽃다발을 들고 입장을 했다. 아이들은 먼저 담임 선생님에게로 가서 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가 원장 선생님께 꽃다발을 건네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내가 "졸업식 때 쓸 꽃다발을 준비해야 겠다"고 말하니까, "꽃은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했던 찬진이 말이 생각났다. 사실 카메라나 캠코더 등은 가져왔지만 일본 부모 중에 누구도 자기 아이를 위해서 꽃을 준비한 부모는 없었다.

이어 졸업증서를 받는 순서가 되었다. 선생님이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단상 앞으로 나갔고, 부모들은 통로 중간쯤에 서 있게 했다.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돌아선 아이들은 “저는 이 다음에 커서~~”라며 자신의 장래 희망을 부모들과 친구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빵가게 주인이 되겠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되겠다, 축구선수가 되겠다. 간호사가 되겠다 등 너무나 소박한 꿈을 당당하게 밝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다시 단상에서 내려와 통로에 서 있는 부모님에게 졸업증서를 주며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졸업식이면 으레 아이들에게 축하해 주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런 일본 유치원 졸업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본의 졸업식은 졸업자의 날이 아니라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과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원장 선생님과 지역 어른 대표의 인사말이 있고, 별반 친구들은 선배들을 위해 “이별의 말”을, 달반 친구들은 후배들에게 “감사의 말과 당부의 말”을 함께 큰 소리로 함께 나누었다.

아울러 후배들에게 1년 동안에 있었던 즐거웠던 일, 보람찼던 일을 전해주고, 유치원의 가장 큰 언니 오빠로서의 마음 자세 등을 자세히도 들려주었다.

이어 선생님들의 축가가 있었다. 축가 내용은 졸업생들의 이름과 특징들로 직접 노래로 만든 것이었다. 식을 마치고 기념품을 받고 식장 밖으로 나오니 별반 친구들과 그 부모들이 꽃을 들고 아치 터널을 만들어 졸업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시종 졸업식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왜 찬현이와 같은 어린 아이가 식장에 들어갈 수 없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축하객이 많이 와서 마치 시장 속 같은 졸업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졸업식이 있던 날 선물이 작다고 서운해 했던 나로서는 참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아이들 졸업식 선물로는 1년 동안의 추억이 깃든 추억의 문집과 아이들이 직접 짠 털목도리, 아이들이 씨앗을 심어 꽃을 피운 튤립 화분이 주어졌다. 이러한 일본의 졸업식 풍경은 저학년, 고학년을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라고 한다. 즉, 졸업생을 위한 날이 아닌 당사자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가 모두 주인공이 되는 날인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