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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친구들이 놀러왔습니다. 면소재지에서 부모가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의균과 아빠가 합기도 도장 관장인 김지훈이 놀러왔습니다. 학교에서 인상이하고 잘 어울려 논다는 녀석들입니다.

▲ 나머지 공부 삼총사 나무 아래에서 부터 김지훈, 유의균, 송인상.
ⓒ 송성영

그 날 아내는 인상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녀석이 전화한 지 3시간이 지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저기 확인 전화를 걸어 보다가 직접 찾아 나서려 하는데 그때서야 어기적어기적 들어왔습니다.

“너 이 이눔 자식!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애들 나머지 공부하는 거 기다렸다가 같이 걸어서 오느라구….”

하루 걸러 한번씩 나머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 그날따라 나머지 공부를 무사 통과하고 친구들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아이들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립니다. 헌데 1시간 30분 넘게 걸어왔던 것입니다.

인상이 성품으로 짐작컨대 집에 오는 길에 온갖 해찰을 다 부렸을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친구 녀석들 역시 별 수 있었겠습니까?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만나 놀고 길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카드 놀이도 했을 것입니다. 걸어왔으니 버스 삯으로 군것질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3시간이나 기다렸잖아!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 줄 알아?”
“엄마한테 전화루 얘기했잖아. 애덜 하고 같이 온다구, 근데 왜 그래?”

아내는 더 이상 인상이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인상이에게 이것저것 따져 봤자 본전도 못 찾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느려 빠진 녀석에게 시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분명히 친구들 데리고 온다고 말했고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왔을 뿐인데,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됐냐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암투병 중인 처형에게 가 있는 동안 도시락 대신 빵 두개에 우유 한병을 싸준 적이 있습니다(지난 폭설로 인상이네 학교의 급식실이 무너져 내려 요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닙니다). 헌데 인상이 녀석이 집에 돌아와 배가 고프다며 난리를 쳤습니다. 빵 한개만 먹고 나머지 빵과 우유를 친구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다면서 왜 친구들을 줬냐고 물으니까, 친구들이 달라고 해서 주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빵을 한개만 먹게 되어 배가 엄청 고프다는데 뭐가 잘못 됐냐고 그럽니다. 이런 막무가내 녀석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상이와 나머지 공부 동무인 두 녀석 역시 인상이 이상으로 노는 데 선수였습니다. 가재와 개구리를 잡겠다고 개울을 뒤적거리다가 긴 막대기를 들고 산에 올라가 칼 쌈을 했다가 집 앞 뽕나무에 올라가 폼 좀 잡고, 사나운 수탉에게 쫓겨다니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노는 녀석들을 잠시 붙잡아 놓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김지훈은 학원까지 땡땡이 치고 (엄마에게 허락을 맡았다고 합니다) 왔고 안경잡이 유의균은 인상이처럼 본래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희들도 인상이처럼 나머지 공부 선수지? 매일 같이 나머지 공부하지?”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녀, 임마. 얼굴에 매일 한다고 써 있구먼?”
“아녀유, 매일 안해유, 어떤 때는 안 할 때두 있어유.”
“받아쓰기 안 하는 날? 토요일이나 일요일?”
“예.”

“니들 나머지 공부 엄청 재밌지? 그래서 맨날 일부러 받아쓰기 틀리게 쓰지?”
“예? 아~니요, 안 했으믄 좋겠어유.”
“왜?”
“그냥 싫어유. 놀지두 못허구 계속 공부만 해야 하니께유."

“나머지 공부하면 창피허냐?”
“예.”
“인상이는 재밌다는데, 몰랐던 것을 다시 공부하니까 쉽구 재밌다는데.”
“인상이는 참 이상해요.”
“나머지 공부하는 거 별거 아냐, 재미잖아, 몰랐던 것을 다시 배우고, 다른 애들 학원에 가서 돈주고 공부하는데 너희들은 꽁짜로 하잖아.”
“그래두 나머지 공부는 싫어유. 나머지 공부 끝나면 청소도 해야 하구 싫어유.”

‘나머지 공부 삼총사' 녀석들이 이구동성으로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청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라고 봅니다. 아주 부당한 일이라고 봅니다.

청소는 공부 못한 벌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게 벌칙을 받아야 할 만큼 죄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앞으로 잘 하라는 의미로 벌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공부를 못한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앞으로 잘 하라는 의미로 나머지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청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청소까지 떠맡긴다면 그건 애정이 아니라고 봅니다. 공부 못하는 것을 잘못이라 여기고 내리는 무지한 벌칙입니다. 공부 못 하는 것은 못하는 것뿐이지 분명 잘못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청소까지 도맡아 하게 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벌칙을 모면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경쟁심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경쟁심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세상에 독소가 될 것입니다. 경쟁 세계에서는 내가 행복하면 누군가는 괴롭게 됩니다. 내가 괴로울 때 누군가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칭찬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를 죄인(?) 취급하며 벌을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도 무지한 일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인 차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머지 공부 삼총사들에게도 나름대로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일이든 빨리빨리 하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받아쓰기도 빨리 빨리 불러주신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불러주시는 바람에 제대로 받아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공부 삼총사를 가만히 보면 노는 데는 도가 튼 놈들이지만 머리 회전은 아주 느린 편입니다. 머리 회전은 느리지만 어떤 것이든 확실하게 알려고 하는 편입니다.

우리 집 인상이는 꼼꼼하게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데 선생님께서 그림 그리는 인상을 나무라셨다고 합니다. 그림을 늦게 그린다고 꾸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상이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리 빨리 서두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집 인상이가 워낙 느려터진 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선생님께서 빨리 빨리 서두르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인상이는 학교에 갈 때도 속 터질 만큼 느립니다. 형은 가방을 챙겨 메고 시동 걸린 자동차에 올라타고 있을 때 인상이는 그제야 신발을 신을 정도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느린 편입니다.

▲ 녀석들이 사람 수 대로 세번 찍어 달라고 하길래 "한장 찍어서 세장 뽑으면 돼잖아"라고 말해 놓고 생각했습니다.
ⓒ 송성영
느린 게 죄인가요? 느리다 하여 벌칙을 받아야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인상이 담임 선생님께서는 인상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걱정돼서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인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여서는 세상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건 다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걱정일 따름입니다. 인상이처럼 느리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은 그게 오히려 편하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일에 있어서 느린 것은 아닙니다. 인상이에게도 빠른 게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아주 빠릅니다. 노루 새끼처럼 빠릅니다. 집 앞에 있는 뽕나무도 아주 빠르게 잘 올라가고 잘 내려옵니다. 줄넘기도 아주 빠르게 잘합니다.

▲ 생각해 보니 녀석들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두번째 사진을 찍고.
ⓒ 송성영
“야 이놈들, 나머지 공부 삼총사! 사진 한장 찍어 줄게 이리 와서 쪼르륵 서 봐.”
“세번 찍어 줘야 해유, 우리 셋이니께 세번유.”
“한방 찍어서 세장 뽑으면 되지 이눔들아, 뭐 땜이 세번씩 찍냐?”
“아참, 그렇지! 세번 찍을 필요 없지.”

나머지 공부 삼총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녀석들은 아주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라는 식으로는 녀석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녀석들을 이해하려 해서는 어렵습니다. 녀석들의 단순한 말들을 되씹어 보면 오히려 지혜로운 면들이 더 많습니다.

▲ 세번째 사진도 찍었습니다. 녀석들이나 나나 사진 두장 더 찍는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또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송성영
사진 찍는 것도 그렇습니다. 녀석들 말대로 사람 수에 맞춰 세번 찍어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필름과는 달리 거의 무한정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였고 세번 찍게 되면 오히려 좋은 사진을 골라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급히 서둘러 한장만 찍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녀석들 요청대로 느릿느릿 세차례 찍기로 했습니다.

“아녀. 니들 말이 맞어. 세번 찍어 줄게, 뻣뻣하게 서 있지들 말고 웃어 봐봐, 이눔덜아.”

친구들따라 헤벌쭉 웃던 인상이 녀석이 갑자기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얼마 전 치아를 뽑아 아래위가 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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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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