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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 준 은빈이 책가방.
작년에 사 준 은빈이 책가방. ⓒ 느릿느릿 박철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2학년으로 올라갔으면 뭔가 달라진 게 있을 법한데 지금까진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늦잠을 잡니다. 오빠는 벌써 첫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는데 은빈이는 이부자리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내가 아무리 일어나라고 깨워도 못 들은 척 꿈쩍도 안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볼기짝을 몇 대 때리면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일어납니다.

“아빠는 왜 나를 못 살게 구는 거야.”
“야, 2학년이 되었으면 이젠 좀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지. 너는 만날 늦잠이냐?”
“아빠는 내가 어제 연필 깎다 손가락을 베어서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요? 만날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서 딸이 손가락을 다쳤는지도 모르면서 일어나라고 발로 걷어차기나 하고. 아빠는 지금 내가 자고 있었던 줄 알아요. 아까부터 잠에서 깨어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늘 늦게 일어나서 궁시렁 궁시렁 말이 많습니다. 늦게 일어났으면 빨리 밥 먹고 이 닦고 옷 입고 서둘러야 할텐데 도무지 급한 게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은빈이가 밥을 먹는데 딴청을 하고 있기에 한 숟가락 뺏어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안방으로 내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왜 애가 먹는 밥을 뺏어 먹어 애를 울리냐고 타박을 줍니다. 이래저래 나는 찬밥 신세입니다.

아내가 은빈이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은빈이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참입니다. 그런데 은빈이 가방이 배불뚝입니다. 아내가 은빈에게

“은빈아, 엄마가 가방에 필통만 넣어 갖고 다니라고 했잖아. 책하고 공책은 교실 사물함에 보관해 두고 책가방에 필통만 넣어 갖고 다니면 무겁지 않고 좋을 텐데, 왜 엄마 말을 안 듣니?”

“엄마,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필통만 책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려고 했더니 필통이 심심해 할 것 같아서 공책을 한 권 넣었어. 그런데 공책만 넣으면 이번에는 책이 외로울 것 같아서 책을 한 권 넣었어. 그리고 공책하고 책이 있어야 짝이 맞잖아. 그러다보니 책이랑 공책이랑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다 넣어갖고 다니는 거야. 엄만 내 마음을 모르지?”


어디서 그런 궁리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은빈이의 말처럼 어른들도 자기 잇속만 챙기지 말고 서로 잘 화합하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생각보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산다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이겠습니까?

모든 사물 자연과 사람을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물 자연과 사람을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인간의 삶은 누가 독점할 수 없지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저마다 잘살고 못사는 삶을 나름대로 따져 둡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을 닫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아침 나는 은빈이 말을 듣고 내가 아빠라서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돕는 일은 사랑함의 손길입니다. 그러한 손길은 허튼 짓이나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므로 올바름의 손길입니다.

은빈이가 사물을 대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나도 배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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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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