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태백하고 사오정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는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의 발언을 듣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광화문에 한번 와 보시면 알 수 있을 텐데요. 아직도 국민정서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3월 17일, 때 늦은 칼바람이 불던 광화문 거리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상생>의 회원 김상기(33·M게임)씨는 홍사덕 의원의 '백수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는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씨의 주변에는 이미 2000여개의 촛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김씨가 소속돼 있는 <상생>은 '상식적인 생활인의 사회참여 모임'의 준말이다. 1999년에 처음 모임이 결성됐으니 이제 5년째를 맞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직장인들로 구성된 회원수 130명의 상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육공동체'를 목표로 세워놓고 있었던 평범한 커뮤니티였다.

<상생>의 대표적인 활동이라면 '최선의 전쟁보단 최악의 평화'가 낫다는 믿음과, 북녘 어린이들도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믿음에서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북한 어린이 급식지원>이 있다.

상식적인 생활인을 고민하던 이들의 '고민'은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3월 12일을 기해 모두 사라졌다. 목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이 반대하는 탄핵을 국민을 들먹이며,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힘으로 가결한 야당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상생 회원들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광화문에 8만 인파가 참여했던 13, 14일 집회 때는 1만3000장의 유인물을 복사해서 시민들에게 일일이 나눠줬다. 찬 바람이 불던 이날의 집회에도 탄핵의 부당성을 담은 만화 피켓을 들고 나와 시민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이들의 작은 고민은 두 가지. 하나는 만만찮게 소요되는 인쇄, 복사비 등 '비용'에 관한 걱정이다. 이는 모금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크게 염려하지 않고 있다. 보다 신경쓰는 문제는 '선거법'이다. 특정 정당을 홍보할 생각은 없다. 단지 탄핵에 반대하는 생각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지만, 그래도 법은 어렵기만하다.

"능욕당한 공화국의 헌법질서를 되찾고 싶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개최되는 한 이들은 매일 저녁 교보빌딩 옆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름하여 '촛불집회에 가면 늘 상생이 있다!!' 프로젝트. 직장인들의 커뮤니티임에도 불구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촛불집회 담당자를 지정해 놓았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범국민대책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회원도 있다.

3월 12일 회사에서 TV를 통해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현장을 생생히 봤다는 게임업체 경영기획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상기씨는 "우선 눈물이 났습니다.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장면을 보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당시 감정을 전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정신을 차린 김씨는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회사를 조퇴한 뒤 그 길로 여의도로 달려갔다. 그 뒤, 김씨의 퇴근 후 일과는 정해졌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것이다. 김씨는 "그 이름이 촛불집회가 됐든, 문화마당이 됐든 계속 이 자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상생>의 회장 김모씨는 "(탄핵안 가결로) 삼권분립에 기초한 견제와 균형의 정신은 의회권력에 의해 처참히 유린되었다"며 "잠시 생활인의 이름을 미뤄두고 능욕당한 공화국의 헌법질서를 되찾을 때"라고 입장을 밝혔다.

"4월 15일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3월 13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4월 15일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피켓을 들고 있던 모습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소개된 상생 회원 김석영씨는 문구의 의미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야당의 행위를 유권자의 무기인 표로 심판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촛불집회를 일컬어 '노사모' 등이 중심이 된 친(親)노세력의 과격한 행동이라는 일부 언론의 왜곡에 대해 김상기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탄핵되던 장면을 함께 보던 직장 동료 중에는 지난 대선에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도 많았습니다"라며 "그들은 이번 4·15 총선에도 놀러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탄핵장면을 본 직후, 놀러갈 계획을 취소하고 투표하러 가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국민 여론입니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켓을 들고 있는 <상생> 회원들은 늘어났다. 직장 일을 마치고 합류하는 회원들이 제법 많았던 것이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향한 이들은 활기에 넘쳐 피켓을 든 채 노래와 율동을 따라 했다. '탄핵무효!' 구호도 연신 터져나왔다.

상식적인 생활인으로 살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커뮤니티 <상생>은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깎아내리며 '이태백, 사오정'을 언급했던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에게 저녁도 거른 채 광화문을 향해 달려온 상생 회원들은 행동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그들은 그렇게 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매일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그들은 오는 토요일(3월 20일)의 '1백만인 총궐기' 집회에도 여러 동료들과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