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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민주노동당은 비례대표 선출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이크 앞에 선 이가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된 심상정 후보.
15일 오전 민주노동당은 비례대표 선출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이크 앞에 선 이가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된 심상정 후보. ⓒ 오마이뉴스 권우성
탄핵정국이 한창인 3월 15일, 한국 정치사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 일이 일어났다. 바로 지난 50여 년 역사 그 어느 때보다 원내진출 가능성이 높은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선거 최종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당원 직선으로 비례대표를 선출하고, 여성후보에게 1, 3, 5, 7번을 할당하는 진보의 길을 앞장서 실천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제도 언론은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4·15 총선의 또 다른 태풍의 눈이 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들의 면면을 앞선 순위 당선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21세기 천연기념물

우선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 1번에는 전 금속노조 사무처장 심상정 후보가 뽑혔다. 서울대 78학번인 그녀는 1980년대 초반 구로공단 미싱사로 취직해 '85년 구로동맹파업을 비롯해 25년 동안 남성 중심의 전노협과 제조업 금속연맹 등 민주노조운동 일선에서 '인민무력부장'이니 '야전 사령관'이니 하는 별명이 붙을 만큼 치열하게 활동해왔다.

수천을 헤아릴 만큼 많은 대학출신 운동가들이 노동현장을 거쳐갔지만 그녀는 아직 노동운동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70년대 학번으로 가히 '21세기 천연기념물'이라 할 만하다. 명확한 판단력과 함께 입심이 세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녀는 몸에 밴 '대중을 움직이는 대중 조직가'답게 "당이라는 망치의 힘을 받아 보수정치란 얼음판을 부수는 대못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번은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남녀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당원들의 지지를 얻은 '단 위원장'은 87년 이후 8년5개월에 걸쳐 여섯 차례 구속과 다섯 차례 수배 등 고난의 이력만큼이나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출마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과연 의회진출을 통해 당 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루어낼 적임자인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어 오랫동안 망설여왔다"고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단 위원장은 자신이 걸어왔던 노동운동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된다고 판단했으며, 앞으로 "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노동자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는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요구들을 쟁점화시키고 이를 다시 대중투쟁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3번이다. 고려대 사학과 81학번인 그녀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지역운동, 여성운동을 거친 여걸이다. 더구나 1999년에는 남편인 김창현 당시 울산 동구청장(민주노동당)이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당히 당선돼 노동자, 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치는 소중한 경험을 쌓은 보기 드문 인재이다.

그녀는 자신이 쌓은 경험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것이며, 진정한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민중의 자산이라 여기고 정치를 살맛 나게 바꾸려 출마했다고 밝혔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고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민족농업을 지키는 일, 양성평등 실현과 자주·평등한 대외관계 확립에 역점을 둔 국회활동을 펼쳐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개척자라 불리는 천영세 후보는 4번 자리에 앉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66학번인 그는 7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기관의 압력으로 해직당하고, 다시 한국노총 정책위원 자리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뒤 줄곧 민주노조운동의 발판을 닦았다.

특히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지도위원을 맡아 민주노조운동을 지키는 한편으로 권영길 대표와 함께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 창당에 앞장서 대중운동을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안내해온 진보정치의 개척자라 부를 만한 인물이다. 대쪽같은 선비기질에 소탈한 성품으로 안팎의 신망이 높은 그는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며 평등과 자주의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자고 호령하고 있다.

70년대 말 박정희 유신독재를 강타한 YH노조 지부장 출신이자 당 부대표를 맡고 있는 최순영은 5번이다. 신민당사 YH농성 투쟁으로 구속됐다 박정희가 죽은 뒤에 풀려 나온 그녀는 '80년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활동, 한국연성노동자회 활동 등 꾸준하게 운동의 길을 걸었다.

'90년대에는 부천시의원을 연거푸 두 차례나 역임하면서 담배자판기 철거 조례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우리 사회의 등불이 되고 있는 70년대 운동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지칠 줄 모르고 활동하는 오늘의 활동가인 그녀는 "진보정당 없이는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단코 나아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입당한지 4년이 됐고, "우리 사회의 약자를 위해, 우리 자연의 약자들을 위해 평등과 평화를 위해" 여성·교육·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픈 일 욕심을 과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강기갑 전농 부의장, 현애자 남제주군 여성농민회장, 노회찬 당 사무총장, 이주희 서울대 학생, 이문옥 전 감사관 등이 차례로 6∼10번까지 뒤를 잇고 있다.

우스꽝스런 혼란에 종지부 찍어야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걸음이야말로 한국 정치와 사회를 뿌리부터 바꿀 소중한 싹이라는 점에서, 이 싹을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라 하겠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말이 안 되는 이유로 탄핵한 수구정치를 온 국민의 힘으로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하루빨리 탄핵 기각 판결을 내려 우스꽝스런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오늘의 사태를 진단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만 참으로 노동자 서민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뇌한다면, 참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소박한 결론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소박한 결론을 실천하길 유보해왔다. 아니 올해도 나름의 상황논리로 이 문제를 미뤄둬야 한다는 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은 실천해야 할 것이다. 1인2표제로 치를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지역구 후보를 제외하고 정당 지지율에서 7%를 얻으면 4명의 비례대표가 당선되고, 15%를 얻으면 9명이 당선된다.

노동자 농민 속에서 평생을 조직하고 투쟁하고 학습해왔던 소중한 진보일꾼들이 17대 국회에서 일당백의 힘으로 마음껏 진보의 나래를 펼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보게 될지는 한 달 뒤 결정될 것이다.

친미국 친재벌 정치판을 갈아엎으려 당당하게 나선 이들에게 평등과 자주의 나라를 소리 높여 외칠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 탄핵정국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화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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