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우먼타임스 김희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두 아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발성장애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

인터넷 영화 사이트에는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그 역을 맡은 경희대 연극영화과 이영란(49) 교수는 시사회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랜 기간 어렵게 작업했던 기억이 나서 영화 상영 내내 울었어요. 스케일과 테크닉에 감동이 묻히지 않아 좋았어요. 형제애를 부각시켜 가족의 본질에 대한 메시지가 작아졌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태극기는 '산업'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 영화거든요. 어차피 더 깊은 가족애를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영화예요.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죠."

짧지만 진한 슬픔 표현한 빛나는 조연

이 교수는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배우가 아니다. 1977년부터 연극배우 활동을 하면서 모노드라마 <자기만의 방> 등에 출연했고, 1996년 영화 <꽃잎>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제4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연출가의 삶도 살았다. 서울국제연극제, 세계공연예술제, 안티미스코리아대회 등 수많은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27년간 연기와 연출을 병행한 그는 '준비된 대중배우'였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춤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이죠. 젊은 시절 좀 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예술을 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어요. 많은 관객들에게서 나오는 즉각적인 반응을 만끽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는 춤을 버린 것이 아니다. 춤은 그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환경연극, 설치공연, 퍼포먼스 등 언어보다 몸짓에 의미를 두는 공연 예술을 연출해 왔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발성장애 어머니가 길어 올린 감동도 말이 담을 수 없는 '몸짓의 힘'으로 빚어낸 게 아닐까.

연극·영화·연출 등 27년 연기 내공 발산

조만간 그는 또 한번 '몸짓의 연기'를 선보인다.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세라진>에서 주인공을 맡은 그는 사람들의 더러운 영혼을 보듬는다.

"여성 운동이나 반미 운동의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니에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한 여인의 고귀한 삶을 담은 영화예요. 정신적, 정치적, 윤리적 매춘을 일삼고 영혼까지 팔아먹는 세상에서 그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많은 관객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연기자이자 연출가인 그는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그는 "엄마처럼 푸근해서 다가서면 어느새 조폭처럼 돌변하는 선생"이라고 자평했다. 밤새 굴리고 몰아붙이기만 하던 그도 요즘은 변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연기와 연출이 나와주기까지 기다려주는 작업을 배우고 있다는 것.

ⓒ 우먼타임스 김희수
열정과 축제로 다가서는 여성 문화 운동으로

그의 '두툼한 이력'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문화세상 이프토피아 이사로 활동하면서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높여온 것.

"언어도 변했고 인식도 변했지만 남자는 변하지 않았어요. 요즘 보수적인 젊은 남자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들이 잘못인가요. 그들을 그렇게 교육시킨 어머니가 잘못이죠."

잘못했으니까, 꾸짖고 나무랄 건가. 그러면 그들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문화 예술의 힘으로 페미니즘의 숨결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가 보다 열정적이고 즐겁고 유쾌하고 환상적인 여성 문화 운동을 계속 이끌어가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분노와 이념뿐인 운동은 곤란해요. 열정과 축제로 다가서야죠. 여성 문화 운동뿐만이 아니라 공연 예술의 본질이 그거예요. '굿판'이죠. 아프다가 낫고, 한(恨)이 흥(興)으로 바뀌는 '판'이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