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2.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역사 알아보련다

3.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꾹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의 <물방아 도는 내력>이라는 인기 가요이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 박재홍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낸 이 노래는 요즘도 사랑받고 있는 노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1절의 노랫말이 잘못 불려지고 있어서 문제이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가사가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의미를 모르는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1954년에 도미도 레코드사에서 발간해 낸 레코드판에는 분명히 1절의 가사가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로 잘 나와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로 잘못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이다.

가수는 물론이고 음악 방송의 전문 진행자나 작곡가 등도 “길쌈을 매고”로 잘못 알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밭에 나가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나, 밭이나 바깥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정이다.

“이상하다. 길쌈은 삼이나 무명을 잣는다는 말인데 잣는다는 것은 실의 재료로 실을 만들고 천을 만든다는 것 아닌가? 아마도 낮에는 밖에(남의 집)에 나가서 길쌈을 매고, 밤에는 안(집)에서 새끼 꼰다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안되는 해설도 하고 있는 지경이다. 길쌈 매는 것은 여자이고 사랑방에 새끼 꼬는 것은 남자인데 어떻게 같은가?

어떻게 해서 이런 엉뚱한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려면 먼저 제대로 된 박재홍이 부른 노래 1절의 가사인 "기심"을 살펴보아야 한다.

원래 가사인 “기심”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애석하게도 우리의 국어사전에는 기심이라는 낱말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김”이라는 말이 나와 있을 뿐이다. “김”은 “기음”의 줄임말이며,‘기음“은 ’논밭에 난 잡풀‘이라는 뜻이다. 논밭에 난 잡풀을 뽑거나 묻어버리거나 하여 없애는 것을 “기음 맨다”,“김 맨다”고 한다.

"프를 매야 두듥 가에 두놋다"(두시언해)는 “풀을 매어 언덕 가에 놓았다”는 뜻으로 “김”은 매어야 할 대상인 잡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김”은 “기슴”이라는 옛 말(古語)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슴”이 “기음”이 되고,“기음”이 “김”이 되어 요즘 말로 쓰고 있다.

<월인석보>에 “기스미 기서 나달하야 바리닷…”은 “김이 생겨서 곡식 생기듯…”이라는 말로 나타나며, “계집과 자식은 앞에서 기슴매더니…”라거나, “삼업(三業) 기슴을 매오며 백복(百福) 밭이 무성하나니라” 등의 쓰임새가 보인다.(일부만 고어로 쓰고 편의상 현대어로 바꿨음)

“기슴”은 “깃다”의 명사형이며,“깃다”는 “무성하다”는 뜻이다. 그 “기슴”이 “기심”으로도 쓰여서 “기심”이 되었으며, 남도 지방에서는 지금도 구개음화 된 현상인 “지심”으로도 발음한다. 그래서 요즘도 “지심 맨다” ,“나무를 안하니까 산이 지서서(짓어서) 산소에를 갈 수가 없어…” 등으로 쓰이는 것이다.

따라서, 노랫말의 원어는 “낮에는 밭에 나가 기심(=김)을 매고 밤에는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 길쌈은 국어사전에 “피륙을 짜는 일”을 말하며, 동사를 만들면 “길쌈한다”로 써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기심은 김으로서 매야 할 대상이 되므로 “기심을 매고…”가 되는 것이다.

전혀 엉뚱한 노랫말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아무 생각없이 엉터리 해설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 대중들의 생활과 의식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제대로 쓰고 부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민병도 기자의 법명은 법현(法顯)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