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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맨 위로 오빠가 한 명 있고, 그 밑에 언니가 한 명 있다. 오빠와는 다섯 살 차이로 어려서도 별다른 친밀감은 못 느끼며 자랐던 것 같고, 결혼 이후에는 각자 사느라 바빠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아이들 졸업과 입학 같은 행사 때나 만나 잠시 이야기하는 정도이다. 의논할 일이 생겨도 오빠보다는 올케 언니를 통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세 살 위인 언니와는 같은 방을 쓰며 한 이불 속에서 자랐다. 언니가 결혼하던 날, 방에 들어서며 느꼈던 허전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니가 결혼한 다음에야 비로소 내 방이 생겼으니, 거꾸로 언니는 결혼하기 전에 단 한 번도 혼자 방을 써보지 못한 셈이다.

언니는 24년간의 결혼 생활 중 3분의 2를 외국에서 보냈다. 형부 직장 관계로 미국, 영국을 거쳐 지금 사는 호주 멜버른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그러니 나는 언니가 있다 해도 결혼식부터 시작해 두 아이 출산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언니가 옆에 있었던 기억이 없다.

그래도 그 당시는 섭섭한 줄도 몰랐고, 외로운 줄도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언니가 그립고, 가까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같이 쇼핑을 하거나 점심을 먹는 것을 보면 부러워서 한참 쳐다보고는 한다.

처음부터 언니 없이 혼자 자랐다면 혹시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친밀해지고 속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그 아쉬움과 그리움은 도를 더해 가는 중이다. 나는 국제전화를 걸 생각도 못하고 주로 언니가 전화를 걸어오는데, 아이들은 "호주 이모 전화다!"하면 아예 한참은 내 곁에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통화가 무한정 길어질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아메리칸 퀼트〉는 결혼을 앞둔 대학원생 핀이 논문을 쓰기 위해 할머니 댁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할머니 댁에서 열리는 퀼트 모임 구성원들의 꿈과 사랑과 기쁨과 절망과 고통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랑이 식었다며 일찌감치 갈라선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핀에게,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다양한 삶의 경험이 담긴 교과서가 된다.

책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역시 처음 볼 때와 달리 다시 보게 되면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그 즐거움은 첫 만남의 새로움과 신선한 자극을 넘어서기도 한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핀을 중심으로 퀼트 모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빴는데, 다시 보니 그 안에 얽히고 설켜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차분하면서도 명확하게 다가왔다.

친구이자 이웃으로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할머니 댁의 퀼트 모임. 조각천을 모아 이어 붙이고 속을 넣어서 누비고 박음질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 퀼트 모임에서, 이번에는 핀에게 결혼 선물로 줄 웨딩 퀼트를 만들고 있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 중인 핀은 웨딩 퀼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영 불편하기만 하다.

영화 속 퀼트는 단순한 그림이나 무늬를 새긴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퀼트'이다. 전체를 이루는 조각조각에 담긴 사연들은 퀼트 모임 개개인의 역사이기도 하고, 사랑의 추억이기도 하고, 아픈 고백이기도 하고, 오래 간직한 꿈이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히 핀의 할머니 하이와 이모할머니 글래디가 눈에 띄었다. 형부와 있어서는 안 될 관계를 맺은 하이, 남편은 그것을 일러 '사고 같은 것'이라고 했지만 평생 미움과 증오를 벗어버리지 못한 언니 글래디.

그 옛날 분노한 글래디는 집안의 물건들을 벽에다 던져 다 박살을 내고는 그것을 주워 모아, 마치 무슨 조형물처럼 벽에 박아 넣었다. 집에는 아직도 그 벽이 남아있다. 글래디는 하이를 집에서 같이 살게 해준 것이 용서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 그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수영을 잘하는 소피아와 바람둥이 화가와 결혼한 엠, 남편과 사별한 콘스탄스, 안나와 마리안나 모녀가 퀼트에 담은 사연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들의 사랑과 아픔과 추억의 조각들은 핀을 위한 웨딩 퀼트에 한 땀 한 땀 새겨지고, 진정한 사랑과 완벽한 만남을 찾아 고민하던 핀은 자신에게 이미 다가왔지만 망설이며 그 앞에서 멈칫거리던 사랑을 향해 새벽길을 걸어 나간다.

글래디 할머니가 자신이 박살낸 물건들로 만들어 놓은 두꺼운 벽을 깨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쌓았던 벽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자기 손으로 부숴 버리는 그 마음, 진정한 용서에 힘입어 터져 나온 용기이리라.

젊어 불타던 증오와 배신감을 식히고 가라앉혀 관계를 제 자리로 돌려놓은 것은 세월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나이 먹은 사람의 너그러움이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나'에서 '그럴 수도 있지'로 변하는 것이 나이듦의 가장 큰 변화이며 미덕이라고 했다. 글래디 할머니도 '어떻게 그럴 수 있니?'를 거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로 변한 것은 아니었을지.

사랑을 만나 결혼의 길로 들어서는 핀의 주위에 동년배의 친구들만 있었더라면, 아니 일찍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 핀을 아프게 하다가 이제 와서 다시 합한다고 알려온 젊은 엄마만 있었더라면 무언가 좀 부족할 뻔했다.

퀼트 모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인생을 이루는 더 큰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 이야기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들 삶과 그 안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삶과 사람과 사랑은 그 뿌리를 늘 한 곳에 두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언니가 생각난 것은 우선 호주로 떠나면서 퀼트로 만든 하얀 인형 하나를 내게 남겨주고 갔기 때문이고, 영화 속 하이 할머니와 글래디 할머니처럼 좋아하는 감정과 미워하는 감정 모두를 넘어서서 언니와 노년을 알콩달콩 같이 보내고 싶은 속내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메리칸 퀼트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 1995 / 감독 조셀린 무어하우스 / 출연  마야 안젤루, 앤 밴크로프트, 엘렌 버스틴, 사만다 마티스, 위노나 라이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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