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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어야 누가 사는지...(대한의사협회 기관지 의협신문 2월 19일자 1면)
누가 죽어야 누가 사는지...(대한의사협회 기관지 의협신문 2월 19일자 1면) ⓒ 의협신문 PDF
사보험 주장은 아직 이르다. 최근 신용불량자,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차상위 계층의 의료수혜는 의료보호 계층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사보험 도입은 계층간 위화감 조성과 함께 균등한 의료 혜택을 차별화 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의료 혜택은 균질하지는 못하더라도 균등해야 한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료 민주화는 의료시장에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 처방을 포함한 의료행위에 대해 정부가 심사평가를 통해 삭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다고 의료계는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의료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이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는 의료의 정보 비대칭성을 정부가 국민 편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리의료'라는 보장시스템을 통해 의료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이는 과거 의사의 재량권을 건강보험기관이 관리(심사)함으로써 의사 이외의 제3자에 의해 의료가 관리(managed care)되는 것을 말한다. 비록 의사협회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이러한 제도를 왜 미국이 도입하려고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타분야에 비해 정부 개입 강한 것은 필연

정부가 의료수가 인상을 억제하고 약가를 낮추는 한편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려는 이유가 정부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는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를 통해 보험혜택을 늘리고 수진자들의 비용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다. 물론 보험자 단체의 방만한 인력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보험공단을 해체하자는 의료계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직장과 지역이 통합된 보험조직을 다시 분리하자는 의료계 주장 역시 그렇다. 조합주의냐 통합주의냐의 논쟁은 여전히 잠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빌미를 제공한 보험자 단체의 '관리되지 않은 관리'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이 왜 '투쟁'인가에 물음표를 던진다.

의협 김재정 회장이 '투쟁'을 독려하면서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
의협 김재정 회장이 '투쟁'을 독려하면서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 ⓒ 대한의사협회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최선의 진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보험은 그러한 의사들의 자율성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갖가지 심사원칙을 만들어 원칙에서 털끝만큼만 벗어나도 모조리 가차없이 삭감하고 있다. 원칙이 소신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그러한 세부심사규정까지 모조리 숙지하고 진료에 임할 수 없다. 숙지하더라도 최선의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최우선으로 환자를 살리고 자신을 방어한다. 공격(적 진료)이 최선의 방어(적 진료)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돈이다. 보험재정이 넉넉지 못한 결과에서 나오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직장인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가는 보험재정이 왜 모자랄까. 그것은 국민의 잘못이 가장 크다. '의료쇼핑'이란 조어가 생길 정도로 경질환도 모조리 병원에 가야 직성이 풀린다. 게다가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으면 의사를 '돌팔이' 취급하는 게 현실이다.

흔히 감기라고 말하는 상기도 감염이 전체 보험재정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비춰볼 때 보험재정 부실의 주범은 분명히 국민이다. 거기에 의사, 약사는 공범이다. 문제는 '정보를 움켜쥐고 있는' 공범이 주범을 이용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경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 확대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

국민의 잘못된 의료이용행태도 원인제공

의료계는 이번 결의대회 목표를 의료민주화와 선택분업에 두고 있다. 의료민주화는 의료수요를 시장원리에 맡기자는 의미고 선택분업은 병원 내 약국에서도 외래환자가 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의료정보의 비대칭인 상황에서 의료민주화는 곧 '의사독재'를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적으로 셀프메디케이션(자가치료)과 대체의학을 의료계가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는 철저한 교과서적 진단과 치료에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의료독재'인 것이다. 건강식품 70%가 과대과장 광고를 하고 있다고 소비자단체와 함께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에게 권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건강기능식품으로 채 인정받지 못한 성분에 대해 항암, 심혈관 질환예방, 피부노화 방지 등의 효능이 있다고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의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선택분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입장에서 선택분업이 편할 수 있다. 일부 대형 병원의 경우 병원 근처에 약국이 없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처방약이 구비돼지 않아 다른 약국을 찾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의 원칙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처방감사, 복약지도를 통해 적정한 약을 사용함으로써 오남용의 피해를 줄이자는 데 있다. 약국의 복약지도 서비스며 임의 변경조제 등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빌미로 선택분업을 주장하는 것은 의약분업의 파트너며 약사를 믿지 못한다는 위험한 논리가 성립된다.

이익집단간 상호 신뢰가 부족

의사마저 약사를 못 믿으면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두 이익집단의 반목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국민은 과연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묻고 싶다. 선택분업이 최선책이라면 8만명의 의사가 나서기 전에 4692만명의 국민이 먼저 주장했을 것이다.

이번 의료계의 결의대회는 현재 국민 정서 상으로 역풍을 맞을 소지가 크다. 이승연 누드파문에서 확인했듯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 타인을 이용할 경우 쏟아지는 비난은 뒷감당이 어려울 지경이다. 결의대회 이후가 걱정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의 이번 결의대회는 국민의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한 상태다. 의사는 우리 사회의 위신적·경제적 상위계층이다. 이번 결의대회 목표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혜택이 아니다. 따라서 자칫 집단이기주의로 몰리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선택분업은 국민에게 이용 편리성을 제공할 뿐이지 비용효과는 아니다. 비용은 고스란히 병원의 수입으로 들어 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이번 궐기대회를 즐기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대책이 없으면 만들고 의료계를 설득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나온 자료를 성의 있게 검토하고 수렴할 사항이 있으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민은 요즘 대단히 피곤하다.

덧붙이는 글 | 정부는 의약분업재평가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 불신으로 얼룩진 현 상황을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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